유럽에서 전기차 배터리를 독자 생산하려는 움직임이 속속 가시화되고 있다. 유럽은 2025년 내연기관차 퇴출을 추진하고 있다. 커지는 전기차 시장에서 한국과 중국 배터리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자력 생산에 총력을 기울일 태세다.
출범 1주년을 맞은 유럽배터리연합(EBA)은 회원사가 260개로 늘었다. EBA 산하 4개 컨소시엄이 기가와트시(GWh) 규모 생산 라인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대표 업체인 노스볼트는 유럽 최대 리튬이온 배터리 공장을 2020년 가동 목표로 스웨덴에 짓고 있다. 2023년 완공 시 연간 32GWh 생산 능력이 목표다. 폴란드에 배터리 모듈 전문 생산 라인도 구축한다.
배터리 생산에 필요한 원재료 확보와 소재 관련 투자도 나선다. 독일 바스프는 핀란드에 새 양극재 공장을 세우기로 했다. 2020년에 생산을 시작하면 60㎾h 전기차 기준 연간 약 30만대에 공급할 수 있는 생산 능력을 갖춘다. 핀란드 공장을 시작으로 유럽 내 양극재 생산에 4억유로를 투자할 계획이다. 벨기에 유미코아도 폴란드에 2020년 말 생산을 목표로 신규 양극재 생산 공장을 짓고 있다. 노스볼트는 BMW, 유미코아와 함께 배터리 리사이클링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로 합의하는 등 원재료 수급 망도 넓혔다.
유럽연합(EU)은 지난해 10월 EBA를 결성하고 새 규제 체계와 리사이클링 기준을 마련하고 있다. 지역 간 파트너십을 독려하고 차세대 배터리 연구개발(R&D)에도 박차를 가하기로 했다. EU 내 '호라이즌 2020' 연구기금에서도 약 2억유로를 배터리 프로젝트에 할당했다.
전기차 원가 40%를 차지하는 핵심 부품인 배터리를 한국, 중국, 일본에 의존하고 있어 산업 경쟁력 종속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유럽은 강력한 이산화탄소 규제를 시행하면서 2025년부터 내연기관차를 퇴출할 예정이다. 폭스바겐은 2025년까지 전기차를 연간 300만대 생산한다는 목표를 세움으로써 연간 150GWh 규모 배터리가 필요한 실정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세계 배터리 생산 능력의 약 80%가 아시아에 몰려 있다. 유럽 점유율은 4%에 불과하다. 최근 아우디 최초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e-트론 생산이 배터리 수급문제로 지연되고 있다. LG화학과 배터리 단가 10% 인상 협상 중이라는 보도가 나오는 등 배터리 시장이 공급자 우위의 '셀러스 마켓'으로 재편되고 있기 때문이다. EU는 EBA 출범 1년 성과를 정리한 보도자료에서 “유럽이 자동차뿐만 아니라 친환경 에너지 분야 주도권을 유지하려면 배터리 개발과 생산 독자 역량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 배터리 업계는 단기간에 전기차 배터리 생산 경쟁력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은 만큼 당분간 큰 위협이 될 것으로는 판단하지 않고 있다. 강창범 LG화학 상무는 3분기 실적 발표 콘퍼런스 콜에서 “과거 유럽이나 일본 자동차 회사가 내재화를 시도했다가 경쟁력 부족으로 철수한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전기차 배터리 사업은 오랫동안 R&D에 투자하고 노하우를 쌓아야 경쟁력을 갖추고 손쉽게 접근할 수가 있다”면서 “당분간 큰 위협은 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장기 트렌드는 눈여겨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현정 배터리/부품 전문기자 ia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