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야당 원내대표가 국회연설에서 정부 소득주도성장을 두고 '사람 잡는 성장' '세금중독성장'이라고 비판했다. 연설의 요지는 '정부 정책을 밀어붙이려면 최저임금을 급격하게 올려야 하고 그러면 일자리 불황이 자연스럽게 생길 수밖에 없으므로 국가가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나서면서 자연스럽게 세금 몰빵 경제의 늪에 빠졌다'는 것이다.
사실일까. 소득주도성장을 최저임금으로 등치시킨 후 최저임금의 고용감소효과를 무리하게 확대했다. 또 정부의 재정지출을 그에 대한 꼼수쯤으로 격하시켰다.
최저임금 인상 관련해 소득주도성장 논란이 거세다. 사실 최저임금 인상은 소득주도성장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
소득주도성장론은 다양한 방안이 있다. 물론 소득이 소득을 부른다. 소득이 소비를 통해 생산과 고용을 부르며 다시 투자를 통해 고용과 소득을 이끈다. 이 때 가처분소득이 중요하다. 국민의 가처분소득을 증가시키려면 소득이 늘거나 지출을 감소시켜야 한다. 저소득계층은 최저임금 외에도 아동수당이나 기초수당, 근로장려세제(EITC) 등 다양한 사회부조를 통해 소득을 증가시킬 방안이 있다. 악성 장기 가계부채를 청산하거나, 에너지·생필품 가격 등 생계비를 안정시키고 사회보험료를 인하하는 방안이 있다.
가계부채에 따른 가계소득 악화나 고령화에 따른 노인빈곤, 부동산시장의 불균형에 따른 주거비 폭등, 아울러 아직도 턱없이 부족한 사회보장 체계를 고려하면 최저임금의 인상만으로 가계소득을 증가시켜 내수부족을 해결하기엔 역부족이다.
따지고 보면 최저임금 인상률이나 속도는 가처분소득을 늘이고 사회보장을 강화하는 방법의 하나다. 최저임금을 위한 최저임금이 아니라 저소득층의 가처분소득을 다양한 방법으로 올려야 한다는 것이 '국민성장'의 핵심이다.
최저임금이 고용을 감소시킨 것은 아니지만 아쉬운 면은 있다. 우리나라 피용자는 약 2000만명인데 이 중 최저임금 대상자는 300만명이다. 이 가운데 일자리안정자금을 받는 사람을 빼면 70만명이 최저임금 대상이 된다. 고용감소는 최저임금 보다 경기 문제, 구조 문제, 마찰 문제가 훨씬 크다.
실제로 한국은행은 최저임금의 고용감소효과를 2만명 이하로 추계했다. 최저임금이 중위임금의 45~60%에서는 최저임금의 고용감소가 미미하다는 국제노동기구(ILO)의 평가도 이를 뒷받침한다.
다만 우리나라는 유난히 높은 자영업자비율(21.3%) 때문에 최저임금의 효과가 대기업이나 중견기업보다 영세한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에게 나타났다. 정책당국이 이를 사전적으로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점은 분명 아쉽다. 임금근로자에 우선해 자영업자에 관한 정책을 시행하는 것이 바람직했다.
아쉬움 때문에 큰 틀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한국경제는 IMF 시절 이래 거의 비슷한 정책을 폈다. 재벌을 중심으로 한 수출지향적 성장을 위해 사회안전망을 구축하지 않았다. 그 결과 중소기업의 절반이 재벌 대기업에 계열화됐다. 계열화 되지 못한 기업은 존립이 어렵다. 대기업 기업집단의 GDP 점유율은 계속 증가하는 반면 가계나 정부부문에선 계속 감소했다. 대기업, 중소기업, 가계(자영업)의 성장격차는 점점 벌어졌다. 노동시장도 고용의 안정성이나 임금 등 보상에서 격차가 확대됐다.
2000만 피용자의 25%는 공공부문이나 대기업의 정규직으로 편성돼 있는 반면 나머지는 저임금이나 실업의 위험에 상존해 있다. 이렇게 절단된 노동시장 사이를 연결하는 통로가 없는 것이 더 큰 문제다. 불평등을 넘어 양극화로 치닫는 것은 비단 노동시장뿐이 아니다. 남녀격차도 여전히 해소되지 않는다. 이차소득분배도 여전히 제 기능을 못한다. 정부가 재정정책을 통해 소득분배를 개선해야 하지만 아직도 그 노력은 OECD 최하위 그룹에 속한다. 잘 알려져 있듯 사회복지지출은 김대중 정부에서 획기적 전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럽 복지국가의 절반인 10%대에 머물고 있다. 일차분배 통계로보면 양극화지수가 거의 미국을 따라잡았다. 여기에 부동산 등 부의 편재문제를 고려하면 한국은 선진국에서 가장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하다.
희망이 있을까. 성장이 지속되면 국민의 삶은 나아진다. 고속성장시대 우리가 그랬고 지금의 중국이 그러하다. 우리 경제는 고도성장기를 마감한 IMF 시기 이래, 정권이 바뀔 때마다 1%씩 성장률이 떨어졌다. 단기 변동이 아니라 장기 추세다. 이런 환경에서 지금까지의 방식으로는 앞서 말한 양극화가 해소될 수 없다.
맏자식 공부를 위해 모든 형제가 희생하던 때가 지났듯 재벌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모두가 희생하는 때도 지났다.
최저임금, 정확히 말하면 소상공인 대책과 부동산 문제를 두고 문재인 정부의 정책이 시험대에 올라 있다. 이 시련은 역설적이게도 정책의 방향이 그동안의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말해주는 징표다. 재벌위주의 양극화전략을 그대로 유지했다면 나타나지 않았을 문제다. 소득주도성장을 위한 경제구조의 혁신이 혁신성장이다. 혁신을 이루기 위한 법적이고 문화적 질서가 공정경제다. 혁신성장을 규제개혁이나 기술개발이라는 협소한 틀에 가둘 수 없다. 하도급이나 가맹점 문제로 국한 할 수 없는 것이 공정경제다.
문재인 정부는 정책 전반을 아우르는 목표를 '국민의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으로 잡았다. 촛불의 구호 '이게 나라냐'는 질문에 대답으로 의미가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을 상징화해 제시하는 데에는 다소 소홀한 측면이 있다. 특히 경제문제에서 그렇다.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 공정경제를 대표하는 포괄적 정책비전이 확고하지 못했다. 그것은 '소득주도성장' '국민성장' 'J노믹스' '사람중심경제' 등 다양하게 불린다. 다 맞는 표현이지만 바꿔 쓰다보면 오해가 생긴다. 정부의 정체성에 맞도록 포괄하는 비전을 정해 일관되게 추진해야한다. '사람중심경제'에 자꾸 눈길이 간다.
이한주 가천대 부총장 jopelee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