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기업공개(IPO)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과거에는 코스닥에 상장해야 돈을 모을 수 있었지만 이제는 상장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당장에 필요한 자금을 얼마든지 조달할 수 있습니다.”

최근 만난 한 중소기업 대표의 말이다. 그는 2000년대 초반 벤처 거품을 겪고 벤처투자 시장으로 뛰어든 정보기술(IT) 업계 원로다.

정부는 올해 초 코스닥 시장을 활성화하겠다며 각종 대책을 쏟아냈다. 하반기부터 투입되기 시작한 코스닥벤처펀드는 신규 상장 기업 공모가를 끌어올렸다. 그러나 정작 코스닥 지수는 하염없는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시장을 관리해야 할 거래소는 보이지 않는다. 올해 초 설치한 코스닥시장위원회도 이렇다 할 대책이 없다. 코스닥 시장이 급등하던 2000년 초반 당시를 회상하며 과거로 회귀하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이 전부다. 상징 기업마저도 코스닥에서 보이지 않는다.

스타트업 관계자 사이에선 더 이상 IPO를 자금 조달 수단으로 여기지 않는다. 굳이 상장이란 길을 택하지 않더라도 정부의 각종 지원 대책으로 당장 망하지 않을 정도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시장에 유동성이 흘러넘친다. 6월 기준 시중 부동자금은 역대 최대 수준인 1100조원까지 치솟았다. 시중 부동자금과 함께 꾸준히 우상향 곡선을 그리며 상승하는 지표는 벤처투자가 거의 유일하다. 절대 금액 측면에서는 미미하지만 투자처를 찾지 못한 자금은 미래와 혁신을 위한 유망 기업으로 꾸준히 들어온다.

굳이 일반투자자에게 손을 벌리지 않더라도 굴릴 돈이 마땅치 않은 금융권과 대기업이 꾸준히 돈을 대고 있다. 비상장기업에 대한 자금 조달 기회를 늘리겠다는 최종구 금융위원장의 최근 발언 역시 이런 흐름을 반영해서다.

상장이라는 단어는 유가증권 거래를 공식 시장에 특정하는 행위를 뜻한다. 일반투자자에게 기업을 공개한다는 의미와 함께 정부 또는 공신력 있는 기관이 정한 시장에 이름을 올린다는 의미다.


코스닥 시장에 이름을 올리기 위해 짊어져야 하는 각종 규제가 과연 성장력을 담보하는 것인지 다시 생각할 때다.


유근일기자 ryu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