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규제가 금융업권 혁신의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는 이유는 금융당국의 불명확한 태도 때문이다. 그림자규제를 근절해 금융산업 혁신을 지원하겠다는 입장은 소비자 보호라는 감독 명분에 번번히 제자리로 회귀한다.
보험업계를 중심으로 불거진 그림자규제 논란은 최근 열린 정무위원회 업무보고가 발단이 됐다. 삼성생명 즉시연금 일괄구제가 아무런 법률 근거가 없다는 야당 의원의 지적에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은 “법 근거가 없는 경우에도 금융 안정이나 소비자 보호, 건전성 등을 위해서라면 필요하다면 조치할 수 있다”며 금감원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림자 규제 관행을 없애겠다고 발표한 지 1년도 지나지 않아 감독당국의 방침이 180도로 뒤바뀐 셈이다. 금감원은 지난해 12월 그림자 규제 관행을 폐지하고 행정지도 근거를 명확히 하도록 한 '금융감독·검사제재 프로세스 혁신 TF 권고안'을 발표했다.
당시 권고안에는 금융회사와각종 질의·답변 내용을 '감독업무질의시스템'에 축적·공유하고, 대외발송 공문의 행정지도 해당 여부를 정기 점검하는 등 그림자규제 관행 개선 방침이 담겼다.
금융권 관계자는 “지난해 권고안 발표 이후 연이어 감독당국 수장이 교체되면서 사실상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다”며 “오히려 새로운 사람이 담당자로 승진하면서 과거에 없앴던 규제까지도 이름만 바꿔 다시 등장하는 형국”이라고 전했다.
실제 금융당국은 지난해 권고안 발표 이전에도 꾸준히 그림자 규제 근절 방안을 내놓았다. 금융당국은 2015년 금리, 수수료 등에 대한 금융당국 개입과 행정지도 미준수에 따른 포괄 제재를 금지하도록 명문화했지만 수장이 연이어 교체되면서 이내 제자리로 돌아갔다. 금감원은 최근 저축은행 금리구조를 공개하는 등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금융회사를 압박하는 분위기다.
이렇다보니 업계에서는 그림자규제 근절에 기대하기 보다는 언제 다시 감독이 강화될 지를 더 우려하는 분위기다. 실제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초대형 투자은행(IB) 제도 도입에도 불구하고 종합투자계좌(IMA)에 대한 논의는 제대로 개시 조차하지 못하고 있다. 이미 IMA 발행을 위한 자기자본 요건을 갖춘 증권사가 등장했지만 당장 감독당국의 승인도 받기 어려운 상황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소비자보호라는 이유로 그간 법률에 포함되지 않았던 금융기법까지도 나중에는 모두 문제가 있는 행위로 재단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개별 행위에 대한 규제에 일일히 나설 것이 아니라 핵심 원칙 중심의 규제 체제로의 전환이 아니라면 금융권 그림자규제 우려는 계속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근일기자 ryu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