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온고지신]작은 가능성을 도전으로 완성하는 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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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석재 국가핵융합연구소 소장

혁신은 한 번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보잘 것 없어 보이는 미미한 가능성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지금은 흔한 교통수단인 비행기도 불과 100여년 전 만해도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이 상상을 현실로 만든 것은 라이트 형제였다. 하지만 그들의 첫 번째 비행시간은 단 12초, 비행거리는 36.5m에 불과했다. 자유로운 비행이 가능한 지금 기술 수준으로 본다면 터무니없는 기록이지만, 이 짧은 비행은 새로운 혁신이 시작된 순간이었다.

이후 끊임없는 노력과 도전으로 비행시간을 점차 늘려가자 세계 관심이 높아졌다. 덕분에 본격적인 비행기 개발이 이뤄지고 지금 우리 생활 중요한 교통수단으로 자리 잡을 수 있게 됐다. 불가능해 보였던 일이 작은 가능성에서 출발해, 끊임없는 노력과 도전으로 이어져 우리 삶에 혁신을 가져온 것이다.

우리나라 핵융합 연구에서도 이런 사례가 있다. 라이트형제 첫 번째 비행처럼 보잘 것 없어 보일 수 있지만 새로운 혁신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 10년 전에 있었다. 핵융합에너지 연구를 위해 국내에서 개발한 초전도핵융합장치 'KSTAR'가 2008년 7월 첫 번째 불을 밝히는데 성공한 것이다. 최초 플라즈마 발생 시간은 0.24초에 불과 했다. 찰나에 가까운 시간이었지만, 의미하는 것은 그 이상이었다.

KSTAR는 건설 과정 자체가 무모한 도전처럼 여겨졌다. 장치가 무사히 완공 된 후에도 가동 성공을 예견하는 이는 적었다. 세계 최초로 신소재 초전도 자석을 사용했는데, 전 세계에서 초전도를 사용한 핵융합장치가 드물었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어떤 초전도 사용 장치도 플라즈마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하지만 KSTAR는 이런 우려를 딛고 단 한번 만에 최초 플라즈마 발생에 성공했다. 단숨에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라이트 형제가 첫 번째 비행 성공 후 점차 비행거리와 시간을 늘려가며 비행기의 실용화 가능성을 보여준 것처럼, KSTAR 역시 10년 간 플라즈마 운전 시간과 성능을 높이고 있다. 핵융합에너지 실용화라는 목표에 점점 더 다가가고 있다.

KSTAR는 현재 72초 이상운전 시간을 보이고 있다. 단순 플라즈마 운전시간만 비교해도 최초 플라즈마에 비해 300배 이상 성과를 달성했다. 또 플라즈마 불안정성 완벽제어 기술과 같은 핵융합 난제를 세계 최초로 해결하는 등 핵융합 연구의 새로운 장을 열어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관련 국내 연구자들은 이제 세계에서 손꼽히는 핵융합 전문가가 돼 국제핵융합실험로(ITER)공동개발 사업의 주역으로 활동하고 있다.

물론 핵융합에너지가 진정한 우리 생활 혁신으로 완성되기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KSTAR 최초 플라즈마 달성 후 10년 동안 국내 핵융합 연구 역량이 빠르게 성장해 온 것처럼, 앞으로도 핵융합 실용화를 향한 발걸음도 멈추지 않고 발전해 나갈 것이라는 점이다. 당시 불가능해 보이는 꿈도 결국 작은 발전들이 이어져 완성됐듯이, 핵융합에너지 역시 그 가능성을 믿고 끊임없이 도전한다면 진정한 에너지 혁신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도전을 이어갈 연구자들의 열정과, 도전이 지속될 수 있도록 지켜봐 주는 관심·투자다.

앞으로도 20~30년 추가 연구가 필요한 만큼 핵융합 연구에 도전할 수 있는 우수한 인력을 확보하는 것이 최우선과제다. 거대 장기 과학 프로젝트 특성을 이해하고 연구자 도전을 지속적으로 지원해 주는 정책이 뒷받침된다면, 핵융합이 만드는 혁신을 성공적으로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혁신 시작이었던 라이트형제의 첫 번째 비행을 되돌아보듯, 후대가 10년 전 KSTAR의 최초 플라즈마를 기념하는 날이 오길 바란다.

유석재 국가핵융합연구소 소장 sjyoo@nfr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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