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통신사만의 문제가 아닌 화웨이

지난 2000년에 우리나라는 대중국 통상과 관련해 씁쓸한 경험을 했다. 정부가 농가 보호를 이유로 중국산 마늘에 관세율 315%를 책정, 세이프가드를 발동했다. 중국은 신속하고 강력하게 대응했다. 중국은 일주일 후 국산 휴대폰 수입을 전면 금지하며 주요 수출품 판매를 가로막았다. 이른바 '마늘 파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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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만에 우리 정부는 백기를 들었다. 3년 동안 3만㎏ 이상 중국산 마늘을 30~50% 관세율로 사기로 했다. 1500만달러 규모 중국산 마늘 때문에 5억달러 수준의 우리 수출이 피해를 봐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마늘 파동은 대중 통상을 한쪽 측면만 접근해선 '필패'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보호 무역 전략을 거시 관점에서 더욱 치밀하게 수립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했다. 중국에 대한 수출 의존도가 높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신중한 '대중 통상 전략'을 요구한다.

5세대(5G) 이동통신 시장도 마찬가지다. 5G에서 뜨거운 감자는 중국 화웨이다. 국내 이통사가 화웨이 장비를 도입하느냐가 초미의 관심이다. LG유플러스는 화웨이 장비 도입을 기정사실화했고, SK텔레콤과 KT는 신중함을 견지하고 있다.

일각에선 국가 기간산업인 통신을 화웨이에 내주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상당하다. 이통사가 화웨이 장비를 도입해서는 안 된다는 주문도 적지 않다.

물론 국산 통신 장비로 5G 망을 구축하는 게 바람직하다. 그러나 이는 현실상 불가능하다.

화웨이 장비를 무조건 거부하면 과거 마늘 파동 전철을 밟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화웨이는 국내에 통신장비를 공급하는 동시에 국내 정보통신기술(ICT) 부품을 사들이는 '고객'이다.

화웨이의 국산 부품 구매 규모는 지난해 기준 50억달러(약 5조5700억원)다. 2000년대 중국이 가로막은 수출 규모의 딱 10배다.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건 반도체다. 화웨이는 공공연하게 SK하이닉스 등 주요 반도체 구매처를 밝히고 있다. '우리가 이만큼 한국에 중요한 고객이다'라는 사실을 넌지시 암시하는 셈이다.

SK그룹 입장에서는 난처할 듯하다. 5G 시장에서 SK텔레콤은 화웨이 고객이 될 수 있지만 화웨이는 SK하이닉스 주요 고객이다.

중국산이란 이유로 화웨이 진입을 가로막는다면 화웨이의 반도체 구매처 변경 등 후폭풍도 배제할 수 없다. 이통사 5G 장비 구매 금액은 확정되지 않았지만 3사가 합쳐도 화웨이의 국산 부품 구매 금액을 넘진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화웨이 장비 도입은 이통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와 중국 간 통상 차원 접근이 요구된다. 마늘과 휴대폰처럼 우리가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을지 치밀한 계산이 필요하다. 통신이라는 국가 기간산업과 대중 수출 사이에서 줄다리기가 예고된다.

이러한 국가 및 산업 차원 문제에 정부 역할이 아쉽다. 세계 최초 5G 상용화를 주도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화웨이 장비를 배제한다는 입장은 전혀 없다고 손을 놓고 있다.

이통사 입장에선 저렴하고 기술이 앞선 화웨이 장비가 5G 상용화에는 제격이다. 물론 화웨이 장비 보안 이슈가 해소된 것도 아니다.

영국은 정부가 앞장서서 화웨이 장비 보안을 검증했다. 우리 정부도 강 건너 불구경하듯 수수방관할 게 아니라 보안 검증 등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해야 한다.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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