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포럼]남과 북을 하나로 잇는 새로운 전력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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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이 한 핏줄이고 한반도가 하나이듯 우리 전력망도 처음에는 하나로 연결됐다. 그러다가 남과 북으로 전력망이 갈라진 것이 1948년 5월이니 지금부터 딱 70년 전 일이다. 남쪽과 북쪽에 따로 정부가 세워진 것도 바로 이 직후다. 전력망 단절이야 말로 남북 분단이라는 현실 시작점이었다. 동족 간에 총부리를 겨누고 피를 흘린 질곡의 역사를 넘어 이제 다시 하나가 되려고 몸부림치는 오늘날 다시는 둘로 나뉠 수 없는 새로운 전력망을 만들어 가는 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역사가 맡긴 소명이다.

서로 다른 전력망 두 개를 연결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철도나 도로망 연결하듯 끊어진 부분만 이으면 나머지 부분은 원래 있던 것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마치 서로 따로 돌아가던 톱니바퀴를 맞물려 돌아가게 하려는 것처럼 세밀하게 준비된 계획이 없는 연결은 큰 낭패를 초래할 수 있다.

지난 20여년 동안 북한에 전기를 공급하려는 시도가 세 차례 있었다. 첫 번째는 서울 북방 지역에서 직접 남북 전력망을 연결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전압과 주파수가 수시로 변하고 있는 북한 전력 사정을 고려하면 이뤄지기 어려운 기술이었다.

두 번째는 북한 신포시 일대에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하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공사는 우여곡절 끝에 2조원 가까운 비용을 투입하고도 중단됐다. 설령 이 사업이 성공리에 완수됐다 하더라도 열악한 북한 전력망을 고려할 때 발전소를 제대로 운영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세 번째는 개성공단에 전기를 공급하는 일이었다. 이때는 아예 이 지역을 남한 전력망으로 편입시켜서 운영하도록 했다.

남과 북을 잇는 전력망을 구축하는 일은 수십년이 걸리는 사업이다. 긴 안목으로 실행 가능한 단계별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첫 단계는 인도주의 차원에서 경제 득실을 따지지 말고 소규모 신재생에너지를 북한 주민에게 보급하는 일이다. 태양광 전지와 에너지저장장치(ESS)를 활용하면 전력망에 연결돼 있지 않은 고립된 지역에서도 연료 보급 없이 전력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북한 주민이 밤에 불을 밝히고 최소한의 문화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야만 남과 북 사람 사이에 마음이 통할 수 있다. 이러한 지원은 준비에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아 지체 없이 실행할 수 있다.

두 번째 단계는 지역별로 적절한 도시를 선정하고, 여기에 독립 운영이 가능한 마이크로그리드를 구축하는 등 전력망 연결을 위한 거점 도시로 만드는 일이다. 맨 먼저 이러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지역으로 원산을 추천한다. 원산은 남측과 가까운 항구도시로, 물류 운송이 편리하다. 인근에 금강산이 있어서 국제 휴양도시로 개발할 수 있는 지역이다. 전력을 군사용으로 악용한다는 우려를 최소화하면서 북한과 남한은 물론 세계가 함께 그 혜택을 나눌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지역이 바로 원산이 아닌가 한다.

마지막 단계는 북한 지역에 강건한 국가전력망을 구축하는 일이다. 여기에는 천문학 규모 투자는 물론 수십년에 걸친 시간이 필요하다. 그 기간에 사람이 바뀌고 정치·경제 환경이 바뀌더라도 이 사업이 변함없이 추진되도록 만들려면 전력망을 반드시 인근 국가와 연결되도록 해야 한다. 중국과 러시아는 물론 처음부터 바다 건너 일본까지 함께 연결되는 전력망으로 계획하고 설계해야 예상치 못한 모진 풍파를 견딜 수 있다.

문승일 서울대 공대 교수 moonsi@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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