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에서 오래 근무한 필자 경험으로는 지난 한 해만큼 공정위가 인구에 회자되고 존재감이 부각된 시기가 또 있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공정위가 일반인에게 그리 알려진 기관이 아니었고 10여년 전만 해도 알 만한 사람임에도 필자가 명함을 건네면 “공정위가 정부기관이냐”고 묻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지난해와 올해 들어 이러한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중소기업, 소상공인 등 사회 약자를 위한 대책의 지속된 발표는 이른바 불공정 '갑질' 근절이라는 시대 화두와 맞물리면서 언론 등의 집중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됐다.
공정위는 매우 중요한 시대 사명을 띤 기관으로 인식되고 있다. 한국소비자원과 함께 공정위 산하기관의 하나인 한국공정거래조정원은 사정이 어떠한가. 2007년에 설립된 이래 발전을 거듭해 왔고, 최근 들어 조정 신청 건수가 지난해 대비 50% 이상 급증하는 등 분쟁 조정에 대한 사회 관심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 공정거래조정원이 무엇을 하는 기관인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자세하게 설명하면 “참 중요한 기관이네” 하는 반응이 돌아오는 것을 보면 앞으로 많은 홍보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원래 공정위는 이른바 '경쟁 정책'이라는, 일반인에게는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정책을 수행하는 곳이다. 즉 기업이 자유롭고 공정하게 경쟁하도록 촉진하는 제도 장치를 두고 있고, 시장경제 아래에서는 필수불가결한 기능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런데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갑을 문제의 본질은 그런 전통 의미에서의 경쟁 정책과 약간 차이가 있다. 을의 위치에서 피해를 본 기업이 갑의 위치에 있는 우월한 대기업에 정당한 보상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 핵심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결하는 것이 효율이 가장 높은 것일까. 그 대안은 조정 등 대체 분쟁해결제도(ADR)가 아닐까 싶다. 불필요한 행정비용이나 사회 낭비를 줄이고, 불공정한 상황을 신속하게 정상화하는 가장 효율 높은 수단이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공정거래조정원 역할과 위상을 크게 강화하는 것이 갑을 문제를 해결하는 효율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공정위는 경쟁질서 확립이라는 본연의 업무에 좀 더 집중할 수 있고, 결국 그 혜택은 국민이 보는 것이다. 이는 불공정거래 행위에 대처하기 위한 새로운 모델이 될 수 있다.
한편 공정위에 크게 부족한 기능이 하나 있다. 연구 기능이다. 경제 환경은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고 정보기술(IT), 인공지능(AI), 알고리즘, 플랫폼 등으로 상징되는 디지털 경제가 가속되면서 시장과 산업 분석이 매우 중요해지고 있다. 과거와는 경제의 판이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공정 거래는 정부 부처 업무 가운데 연구와 리서치 기능이 가장 절실하게 요구되는 분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법 집행을 통해 국민에게 직접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신뢰가 그만큼 중요하다. 그러나 현재 공정위 산하에는 연구기관이 부재하고, 공정거래조정원이 열악한 환경에서나마 일부 연구 기능을 수행하고 있지만 이런 일을 종합화하고 체계를 갖춰서 추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현실에서 독립된 연구기관을 설립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본다면 우선 그 대안으로 현재의 공정거래조정원 연구 기능을 대폭 보강해 경제 분석, 시장 분석 등 공정위의 법 집행을 신속하고 적시에 지원함으로써 공정 거래 관련 연구 허브 역할을 갖추는 것이 절실하다.
공정 거래 관련 업무는 외형으로 크게 팽창해 왔고, 국민의 관심 대상이 되고 있다. 이제 법 집행 수준을 대폭 높이고 정교하게 할 시기가 됐다. 연구 기능을 뿌리째 강화하지 않고서 이를 달성하기는 매우 어렵다고 본다. 공정거래 법 집행이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받기 위해서는 그 기초 작업을 튼튼히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신동권 한국공정거래조정원장 sdkftc@kofair.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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