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환경에 흔들리지 않는 강인함은 리더가 갖춰야 할 중요한 덕목이다. 하고자 했던 바를 향해 추진력을 갖고 나아가는 모습은 구성원에게 신뢰감을 준다. 류재선 한국전기공사협회 회장은 '강인함'이 유독 돋보이는 리더다. 지난해 4월 취임 이후 1년여 간 협회를 이끌어 온 이야기를 주고받는 동안에도 그의 '뚝심'이 느껴졌다.
“지난 1년이 너무 빨리 지나갈 정도로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취임 당시 내걸었던 법제도 개선·공사업 경쟁력 강화·회원 권리제고·미래 성장 동력 발굴의 공약을 지키는데 주력했습니다. 많은 회원사가 함께 도와줬고, 약속했던 공약 대부분을 이뤄내는 성과를 냈습니다. 무엇보다 행복한 협회 구현을 위해 회원사에 실익이 돌아가도록 힘썼습니다.”
한국전기공사협회의 지난 1년은 역동적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많은 일이 있었다. 처음으로 전기공사공제조합과 공동 순회간담회를 개최, 20개 시·도회 회원사를 직접 만났다.
류 회장은 “현장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현안 해결을 모색했다”고 강조했다. 가장 역점을 두고 챙겼던 일은 전기공사 업계 분리발주 사수였다. 전기공사협회는 전담 부서 '동반성장지원팀'을 구성, 실시간으로 주요 공사 발주 상황을 살폈다. 분리발주 위반 사례가 있으면 즉각 대응해 전기공사업계 시장을 보호했다. 그 결과 지난해 전기공사 실적은 28조3000억원을 기록, 역대 전기공사 실적 접수 가운데 최고치를 기록했다. 회원사 이익을 위해 뛰겠다던 류 회장의 공약이 실적으로 나타났다.
◇분리발주 등 업계 현안 해결 총력
올해도 분리발주 공사 확보 노력을 계속한다. 지난해는 모니터링을 통해 위반 사례를 찾아냈다면, 올해는 사업발주 이전부터 지자체, 공공기관과 협약을 체결하는 등 분리발주 정착문화를 만든다. 이미 175억원가량 공사 물량을 확보했다.
류 회장은 “전기 분야는 공사업체가 하청을 통해 작업한다”며 “전기공사 현장의 비효율성과 불합리를 해소하기 위해 분리발주 모니터링은 물론 사전 홍보 활동 등도 활발히 벌일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와 협력해 법·제도 장치도 마련한다. 무등록 시공자와 거짓 등록자 처벌 규정 상향을 골자로 하는 법률안과 도급 계약자에게 불공정한 계약을 무효화하고, 신의를 지켜 계약을 이행할 수 있는 법안 발의를 뒷받침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한 기대감도 크다. 류 회장은 4차 산업혁명에서 전기의 역할이 절대적일 것으로 봤다.
그는 “과거에는 누구도 자동차가 전기 동력으로 움직이고, 태양으로 전기를 만들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며 “지금 일어나고 있는 4차 산업혁명 움직임 모두가 전기에서 시작됐고, 그 시장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전기공사협회에 신에너지사업팀을 신설하고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4차 산업혁명 자문위원회도 발족했다.
◇젊은 인재가 전기공사업계 미래
전기공사 분리발주 확보로 회원사 살림을 챙긴 다음 류 회장이 주목하는 숙제는 젊은 인재 양성이다. 과거와 달리 전기공사 작업 안전여건이 개선됐다. 급여나 근속 연수도 다른 직업에 비해 좋다.
하지만 업계는 신규인력 채용에 어려움을 겪는다. 청년층의 구직난이 심하지만 전기공사 분야는 구인난이 벌어진다. 전기공사 업계 노령화 문제를 바라보는 류 회장의 심경은 답답하고 안타깝다.
“좋지 않았던 이미지가 아직까지 계속되는 것 같습니다. 과거 전기공사가 효율성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기술과 공법 모두가 안전에 초점이 맞춰졌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청년이 전기공사에 두려움을 갖고 있습니다. 현장과 사회의 인식 차이를 줄여 전기공사업을 희망일자리를 바꾸고 싶습니다.”
류 회장은 전기공사에 대한 사회 인식을 개선해 많은 청년이 평생직업으로 도전하길 바랐다. 지난해 9월 '전기공사 기능경기대회'를 '2017 전기공사엑스포'로 개최, 행사를 축제 분위기로 바꾼 것도 같은 이유다. 이달 말 예정된 올해 엑스포는 1박 2일 일정으로 전기인 최대 축제가 될 수 있도록 준비 중이다.
업계의 100년 미래를 책임질 '전기공사연수원' 건립도 류 회장의 애정을 담은 사업이다. 류 회장은 “연수원이 마련되면 그동안 업계 숙원이었던 전기공사기술자 부족 문제를 해소할 것”이라며 “신기술 개발, 기술자 재교육 등 전기공사 기술인력 양성의 요람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남북경협 한발 앞서 대비
류 회장은 해외 사업에도 노력을 기울였다. 올해 초 베트남 전력청을 방문해 양국 간 전기공사부문 협력을 이끌어냈다. 지난 3월에는 문재인 대통령 베트남 국빈 방문 계기 베트남 경제사절단 일원으로 참여했다.
전기공사협회는 베트남 전력청과 전기시공 분야 인력 인프라 구축, 베트남 우수 인력 양성, 국내 기능인력 부족 해소에서 협력하기로 했다. 국내 기업의 베트남 진출을 위한 협력을 촉진 하는 내용도 담았다. 우리나라의 주요 교역국으로 성장한 베트남에서 전기공사업 기반을 다졌다.
지난해에는 KOTRA와 전기공사 해외진출에서 힘을 모았다. 류 회장은 아태전기공사협회연합회(FAPECA) 의장으로 선임돼 활동 중이다. 아태 시장 진출을 위한 교두보를 마련했다. 중국 정부 설립기관인 국제무역투자진흥회와는 양국 간 얼어붙은 관계를 풀기위해 양해각서(MOU)를 교환했다.
4·27 남북정상회담 이후 관심이 높아진 남북경협도 류 회장의 관심 사안이다. 남북전기협력추진위원회를 구성해 전기 용어 정리·일원화, 전기설비 기술 기준과 시공 기준 표준화 등을 추진한다. 실무 관점에서 남북 전기협력 사업을 준비한다. 북한 현지 전력 계통 구축 방안, 전기 공사 방법, 남북 공동 공사 요건 등 협력 방안을 도출할 계획이다.
◇허례허식 버리고 회원사 실리 챙기기
류 회장 취임 후 1년 동안 협회 내부적으로는 허례허식을 버리고 소통을 늘리는 분위기가 정착됐다. 지난해 취임식과 창립기념식을 동시에 열어 예산을 절약한 이후, 소모적 행사는 지양했다.
지난해 11월에는 전국 21개 지역에서 동시에 '전기공사기업인 사회공헌의 날' 봉사활동을 대규모로 펼쳤다. 그동안 아낀 예산으로 회원사와 함께 이웃사랑을 실천했다. 회원사만 모이는 행사가 아닌 지역사회와의 소통을 통해 전기공사 이미지 제고와 회원사 홍보효과를 거뒀다.
'회원사의 실리'는 류 회장이 입버릇처럼 강조하는 주제다. 지난 1년 행보와 앞으로의 구상도 회원사가 직접 느낄 수 있는 이익과 연결돼 있다고 말했다.
때로는 다른 기관과의 갈등도 피하지 않는다. 최근 한국전력공사와 논쟁을 벌이고 있는 간접활선공법 스마트스틱 문제도 회원사 의견을 대변하고 있다.
류 회장은 “스마트스틱 공법은 언젠가는 사용해야 할 공법이지만, 시기와 기술 숙련도는 문제”라며 “일본에서 쓰던 공법을 우리나라에서 사용하기 위해서는 준비 시간이 충분히 필요하다는 점을 한전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류 회장은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한 힘을 '뚝심'으로 요약했다. 전기공사가 원칙을 지켜야 하듯이 흔들림 없이 초심을 잃지 않고 협회의 미래를 열어가는 데 최선을 다한다는 각오다. 그는 “4차 산업혁명, 남북통일시대 등 앞으로 닥쳐올 수많은 도전을 미리 대응해야 한다”며 “전기기능 인력 역량 강화와 전문성을 키우는데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류재선 회장은…
류재선 회장과 전기의 인연은 우연한 기회로 이어졌다. 공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제대를 한 이후 별다른 계획이 없었던 그다. 지금의 청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적성에 맞는 일이 무엇인지 몰랐고, 미래에 대한 계획도 없었다. 류 회장의 첫 선택은 '소'였다. 투자 목적으로 소를 한번 키워보자고 마음먹었다. 200만~300만원을 투자했지만 시세가 20만~30만원으로 폭락했다.
주식시장으로 치면 투자한 종목이 상장폐지된 셈이다. 어려운 형편에 소파동까지 겪다보니 한동안 의기소침했던 그는 친척의 권유로 전기공사 현장에 뛰어들었다.
처음엔 생소했지만 전신주 외선작업 흥미를 느꼈고, 류 회장과 전기의 인연이 시작됐다. 류 회장은 협회장직을 수행하는데 수십년 간 쌓아온 현장 경험이 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원칙을 중시하는 성격도 현장에서 다졌다.
사고는 느닷없이 찾아온다. 류 회장도 과거 감전사고의 아찔한 경험이 있다. 당시를 회상하며 “왜 그때 내가 그렇게 행동했는지 지금도 이해하지 못한다”고 했다. 매번 하던 작업이었고 며칠째 출근하던 현장이었지만, 그날만큼은 달랐다. 끊어져 있어야 할 전기가 연결돼 있었고, 이를 확인하지 않았던 그는 감전사고를 겪었다.
류 회장은 전기공사 현장에서는 자만심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좋은 공구가 있음에도 사용하지 않고 숙련된 작업이라는 생각에 속도를 내면 사고가 나기 마련이다.
“자동차는 옆 차 때문에 사고가 나기도 하지만, 전기공사는 규칙만 잘 지키면 사고가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안전불감증이 심했고, 절차와 규칙의 중요성을 가르치는 곳도 없었습니다. 이 정도 작업은 쉽다고 생각했던 자만심이 사고로 이어졌습니다.”
전기공사연수원에 남다른 애정을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과거 본인이 받지 못했던 전기공사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과 실습, 안전우선 교육 등을 후배 전기인에게 물려주고 싶은 마음이다. 앞으로 나올 새로운 기술과 공법이 안전사고 없이 현장에 적용되려면 숙련된 인력과 안전문화 정착이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류 회장은 금강전력 대표이사로 한국전기공사협회 전라남도회장, 한국전기신문사 사장 등을 거쳐 지난해 4월 전기공사협회장으로 취임했다.
조정형 산업정책부(세종) 기자 jeni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