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10일 출범 1주년을 맞는다. 1년 동안 다양한 정책을 쏟아내며 첫걸음을 시작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킨 것은 외교 성과로 꼽히다.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문 대통령의 운전자론도 탄력을 받으면서 한반도 평화정착에 '청신호'가 켜졌다.
대한민국 경제는 적신호다. 일자리 대통령을 자처했지만 서민일자리는 얼어붙었고, 실업급여는 최대치를 기록했다. 혁신성장 정책은 존재감 자체가 없다.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근로시간 단축 등도 정책 의도에 부합하는 효과를 내지 못했다. 급하게 달려온 1년을 지나 2년차부터는 긴 호흡으로 시장을 바라보고 정책간 균형과 속도를 맞출 때다. <편집자주>
◇'공회전' 혁신성장…미래성장 동력이 없다
대한민국의 미래 먹거리가 보이질 않는다. 신성장동력산업 발굴을 위한 혁신성장 정책은 구호만 요란했을 뿐 가시적인 성과를 찾아보기 어렵다. 노동 정책과 포용적 분배 정책 등에 밀려 동력을 잃고 있다는 평가다.
대통령이 주재하는 올해 첫 혁신 성장 점검회의 일정도 밀려 있다. 3월 예정했으나 계속 미뤄지고 있는 실정이다.
문 대통령 역시 혁신성장과 관련한 사업의 구체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혁신성장 점검회의에서 “사업이 명확히 보이지 않으니 혁신 사업 속도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며 '속도감 있는 추진'을 주문했다.
여전히 혁신 성장 정책은 속도를 내지 못하고 공회전하고 있다. 혁신 성장 동력 세부 실행 계획조차 나오지 않았다.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 탈취 근절, 대·중소기업 간 하도급 거래 공정화 등 공정 경제 정책이 하루가 멀다 하고 발표된 것과 대조를 이뤘다.
혁신 성장을 외치면서도 기반이 되는 연구개발(R&D) 지원은 감소했다. 집권 5년 동안 연평균 R&D 예산 증가율로 0.7%를 제시했다. 복지 예산은 9.8%, 교육 예산은 7.0% 늘리는 것과 대조적이다. 기업이 R&D에 투자할 때 제공하는 조세 지원도 올해부터 줄인다.
혁신성장을 뒷받침할 규제완화는 1년 동안 제자리걸음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LG사이언스파크를 방문해 “대한민국 혁신성장의 미래”라며 “마음껏 연구하고 사업할 수 있도록 신기술·신제품을 가로막는 규제를 풀겠다”고 했다. 하지만 대통령이 약속한 '규제 샌드박스'는 공전하고 있다. 국회에서 발목이 잡혀 꼼짝도 못하고 있다.
◇민생경제, 1년 내 삐걱 삐걱
일자리 부분과 민생경제에선 연일 삐걱댔다. 일자리 부문에서는 취임 첫날부터 일자리위원회를 만드는 등 총력을 기울였지만 연일 최악의 성적표를 받았다. 실업률은 고공 행진하고 있고, 일자리를 잃어 실업급여를 받는 이들은 올 1분기 62만8433명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노동정책은 기업과 보조를 맞추지 않으면서 불협화음을 냈다. 문재인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추진 △주 52시간 상한제 등을 주요 국정과제를 빠르게 이행했다. 정책 취지와 현장 상황이 어긋나면서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속도 조절과 유연한 정책 적용이 필요하다는 주문이다.
'미세먼지' 대책은 문재인 정부 스스로도 미흡했다는 것을 인정했다. 문 대통령 취임 직후 노후석탄화력발전소 가동 중지 등 강력한 미세먼지 긴급대책을 내놨지만 국민은 미세먼지와 황사에 고통을 호소했다.
청와대는 “기상여건 등으로 단기간에 개선하기 쉽지 않다”며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미세먼지 문제 해결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 더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부동산 정책은 서민 주거복지 실현을 목표로 역대 가장 강력한 수요억제 정책을 취했으나, 양도세 중과 시행 직전 부동산 가격이 소폭 떨어졌을 뿐 이후 '거래절벽'을 낳았다.
다주택자들을 규제하기 위해 강도 높은 금융대책을 펼치다보니 실수요자 역시 집을 사기 힘든 현실이 됐다. 조정 대상에서 주택담보대출비율(LTV)와 총부채상환비율(DTI)를 10%씩 낮춰 주택담보대출을 어렵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교육 정책은 혼돈의 연속이었다. 국가 교육거버넌스 개편, 수능 절대평가 도입, 유초등 영어 선행학습 등에서 '유예'와 '재검토'를 반복했다.
문재인 정부는 국가가 책임지는 보육과 교육을 기치로 내세웠으나, 1년 동안 '유예', '재검토' 등 무수한 정책 실패만 거듭했다. 중장기 교육정책에 대해 국민참여와 공론화를 이끌기 위해 국가교육회의라는 자문기구를 설립하고 교육부는 국민참여 정책숙려제를 도입했으나, 정작 개별 정책에서 국민과의 소통 부족으로 혼란만 낳았다.
대입전형 간소화를 통해 공교육 혁신을 도모하면서 수능 절대평가를 도입하려 했다 여론의 반발에 부딪혀 대입제도개편을 1년 늦췄다. 유초등 영어 선행학습 관련해서도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학생의 재능을 다양하게 발현하도록 하기 위해 수시를 강조하다 여론 때문에 갑자기 정시 확대에 나서기도 했다.
유아교육(유치원)과 보육(어린이집)이 서로 주무부처가 달라 혼선을 빚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유보통합'은 부처간 갈등으로 여전히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다.
◇에너지 전환 정책…실효성 논란 거듭
문재인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탈원전·탈석탄'을 기조로 한 에너지전환 정책에 강수를 두었다. 첫 작업으로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을 추진해 원자력계 반발을 샀다. 공론화는 건설 계속으로 결론냈고, 정부는 이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신규원전을 짓지 않는다는 방침을 세웠다. '재생에너지 3020 계획'과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이를 확정하고, 재생에너지 중심의 로드맵을 정했다.
최근 원전 산업은 수출에 집중하고 국내에선 가스와 신재생에 집중하는 전략을 구상하고 있다. 에너지 업계는 내수 없는 원전 산업 지속가능성에 물음표를 던진다. 가스화력·신재생에 편중된 전원 시장의 요금 인상도 우려했다. 현재 원전은 10여기 가량이 멈춰섰다. 노후 석탄화력발전소도 미세먼지 저감조치에 따라 일시가동 정지와 함께 폐기를 앞두고 있다. 신재생과 가스화력 비중이 커지면서 전력시장가격은 상승했고, 한국전력은 적자전환했다.
한전의 적자가 이어지면 전기요금 인상 압박요인이 커진다. 에너지 업계는 정부가 에너지전환을 추진함에 있어 전력계통과 가격 부문의 안정성 확보를 최우선 과제로 삼을 것을 주문했다.
성현희 청와대/정책 전문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