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하기 위해 지분 매각을 포함한 지배구조 개편을 시작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제시한 일정보다 앞서 지분을 매각하며 순환출자 해소에 대한 경영진 의지를 내비쳤다. 남아 있는 순환출자 고리도 조만간 해소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순환출자 고리 해소 이후에도 금산분리 문제가 남는다. 순환출자 해소보다 사안이 더 복잡하다.
18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은 계열사 보유 지분 매각 등으로 순환출자 해소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순환출자란 'A→B→C→D→A'처럼 계열사가 순환 구조를 이루면서 지분을 보유하는 지배 구조를 말한다. 이 고리가 많으면 오너가가 소수 지분과 계열사 지분을 통해 전체 그룹을 불투명하게 지배할 수 있는 문제가 있다. 이 때문에 정부는 순환출자 해소에 역점을 두고 있다.
지난 10일 삼성SDI는 순환출자 해소를 위해 삼성물산 주식 404만여주 전량을 매각했다. 공정위가 8월 26일까지 매각하라고 지침을 내렸지만 마감 시한을 네 달이나 앞서 선제 매각했다. 매각으로 순환출자 고리 3개가 해소됐다.
2013년 80여개에 달하던 삼성 순환출자 고리는 이제 4개 남았다. 남은 고리는 △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화재→삼성물산 △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전기→삼성물산 △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화재→삼성전자→삼성전기→삼성물산 △삼성물산→삼성전자→삼성전기→삼성물산이다. 삼성전기와 삼성화재에서 삼성물산으로 이어지는 고리만 끊으면 모든 순환출자 고리가 해소된다. 삼성전기와 삼성화재는 각각 삼성물산 지분 2.61%, 1.37%를 보유하고 있다. 이것만 매각하면 된다.
삼성 관계자는 “시기와 방법은 구체화하지 않았지만 남아 있는 4개 순환출자 고리도 가능한 한 이른 시일 내에 해소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순환출자 해소 후에도 금산분리라는 큰 과제가 남는다. '금융산업 구조 개선에 대한 법률(금산법)'에 따르면 대기업 계열 금융사는 비금융 회사 지분 10%를 넘게 소유할 수 없다.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는 삼성전자 지분을 각각 8.19%, 1.43% 보유했다. 두 금융사 삼성전자 지분을 합해도 10%는 안 된다. 그러나 올해 삼성전자가 자사주를 소각하면 10.43%로 높아진다. 보험업법 개정과 정부의 금융그룹 통합감독 모범규준 도입 등이 이뤄지면 보유 기준은 더 엄격해진다.
박혜진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보험업법 변경으로 보유한 자회사 지분 가치를 공정 가치로 평가하거나 금융그룹 통합감독 모범규준이 비금융사 지분을 동반 부실 위험으로 평가해 자본을 추가 적립하도록 시행한다면 (삼성전자) 지분 매각에 적극 대응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가치는 30조원이 넘는다. 워낙 규모가 커서 일시에 매각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삼성물산이 삼성전자 지분을 인수할 수도 있다고 전망한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물산이 삼성그룹 실질 지주회사로서 삼성전자 등을 매입하는 명분은 충분히 있다”면서 “삼성전자 시가총액이 크기 때문에 매입자금을 어떻게 확보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시나리오로는 삼성물산이 삼성바이오로직스 43.4%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이 삼성바이오로직스 주식을 삼성전자에 팔고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을 매입하는 것”이라면서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을 매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봉착해 있어 조만간 어떤 식으로든 가시화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권건호 전자산업 전문기자 wingh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