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하는 데 관여한 혐의를 확인하기 위해 황창규 KT 회장을 소환했다. KT 'CEO 리스크'가 재현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경찰이 위법 혐의를 입증할 경우 지난해 연임에 성공한 황 회장 거취 문제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이와 반대로 무혐의로 결론 날 경우 황 회장 체제가 안정될 것이라는 전망이 교차한다.
◇배경은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KT 정치자금법 위반 조사가 제보로 시작됐다고 밝혔다.
경찰은 KT 전·현직 임원이 2014년부터 2017년까지 국회의원 90여명 후원회에 KT 법인자금으로 4억3000여만원을 불법 후원했다는 혐의를 포착했다. 경찰은 KT 임원이 법인카드로 상품권을 구매한 후 현금화해 '쪼개기' 방식으로 정치자금을 기부한 것으로 파악했다.
경찰은 앞서 KT 본사와 계열사를 압수 수색하고 임원을 소환·조사했다. 경찰은 황 회장이 불법 정치자금 기부행위에 어느 수준까지 관여했는지를 집중 조사한 이후 검찰 송치 여부 등을 결정할 방침이다.
경찰은 KT 수사가 본연의 임무라는 입장이지만 석연치 않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남중수 전 KT사장, 이석채 전 회장 등 KT CEO는 정권 교체 이후 검찰조사가 시작되면서 자진사퇴했다. 황 회장 역시 정권 교체 이후 현 정부에 친화적인 CEO로 교체를 염두에 두고 무리한 수사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제기됐다.
◇쟁점은
경찰 조사 결과에 따라 황 회장 거취에 영향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KT 정관에 따르면 금고형 이상의 형을 받은 자는 이사직을 수행할 수 없다. 정치자금법 위반은 5년 이하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최대 쟁점은 황 회장이 정치자금 기부 대가성과 불법성을 알았느냐 여부다.
법조계에 따르면 황 회장이 인터넷전문은행 인허가, 청문회 불출석 등 청탁 의도를 가지고 정치자금 기부를 지시했거나 사실을 인지했을 경우 정치자금법 위반에 해당한다.
불법 비자금 조성을 인지했는지 여부도 관건이다. 경찰은 KT 임원이 상품권을 구매해 현금화하는 방식으로 비자금을 조성, 국회의원에게 전달했다고 봤다. 횡령 혐의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한 변호사는 “황 회장이 정치자금 대가성과 불법성을 인지 또는 지시했다면 불법 정치자금 기부를 실행한 임원과 공동정범 또는 방조죄가 성립한다”면서 “경찰 조사 단계에서 무혐의가 나지 않고 법정으로 간다 해도 향후 치열한 다툼이 예상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KT는 무혐의를 자신하는 분위기다. 황 회장은 경찰 소환에 앞서 “경찰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밝혔다.
황 회장이 정치자금 기부 대가성 또는 청탁성 여부를 알지 못했다는 사실을 입증한다면 경찰 수사 단계에서 논란을 종식할 수 있다. 조사에 성실히 임해 무혐의를 입증, 경영권을 안정화하고 명예를 회복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이는 발언이다.
경찰이 무혐의로 사건을 종결하지 않고 기소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송치한다면 황 회장은 향후 재판과 논란에 대응하느라 CEO로서 일정부분 제약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전망은
KT는 곤혹스럽다는 입장이다. 황 회장 수사도 악재이지만 5세대(5G) 이동통신 대응전략 마련과 정부의 통신비 인하 정책 등 현안이 산적한 시점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6월 5G 주파수 경매를 시행하고 보편요금제 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할 방침이다. CEO 차원 확고한 의사결정이 필요한 굵직한 이슈다.
황 회장 거취를 둘러싼 논쟁도 본격화되며 내부 갈등으로 비화하고 있다.
KT 새 노조와 본사지방본부 일부 조합원은 이날 황 회장 퇴진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반면에 KT 내부에는 노조원 시각은 일부일 뿐이며 정치권과 시민단체의 'KT 흔들기' 시도가 과도하다는 비판 여론도 만만치 않다.
황 회장은 경찰 조사에 연연하지 않고 임무를 수행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황 회장은 경찰수사가 이미 예고된 지난달에도 “평창 올림픽 성과를 바탕으로 5G에서 반드시 1등을 실현하자”면서 임직원을 독려했다.
KT 핵심 고위 관계자는 “황 회장은 사퇴 의사를 한 번도 밝힌 적이 없다”면서 “경찰수사를 지켜보고 있으며 초기 단계에서 예단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경찰 수사가 국회로 향해 정치권 뇌관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경찰은 KT 정치자금을 수수한 일부 국회의원에 대해서도 사실 확인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KT 사업과 관련한 청탁이 있었는지 여부가 국회의원 처벌 수위 등을 가를 전망이다.
박지성기자 jisu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