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 중소기업 논란, 중소기업간 경쟁품목 취소에 따른 소송전 등 판로지원법을 둘러싸고 계속 잡음이 발생하는 이유는 공공조달시장이 계속 커지기 때문이다.
정부가 창업·중소기업 지원 확대를 위해 공공조달시장 범위를 확대하고 있지만, 이에 걸맞는 제도 보완은 뒤따르지 않고 있다. 규모 확대에 앞서 민간 위탁에 따른 사업 부실을 보완하는 정책 마련이 필요하다.
14일 중소벤처기업부 등 관계부처에 따르면 국내 공공조달시장 규모는 2016년 기준 116조9000억원에 이를 정도로 커졌다. 2012년 106조3000억원에서 4년만에 10조원 이상이 증가했다.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7.1%에 이른다.
같은 기간 입찰 참가업체도 24만4000개에서 34만8000개로 10만여개 이상 늘었다. 공공조달시장에서 중소기업 구매가 차지하는 비중은 74%, 총 86조원 규모다.
공공조달시장 규모는 더 커질 전망이다. 정부는 지난해 말 '혁신성장을 위한 공공조달 혁신방안'을 발표하며 창업·벤처기업, 사회적경제기업에 대한 공공조달시장 진입 장벽을 낮췄다. 신생·혁신기업과 사회적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기업이 공공조달시장에서 판로를 개척해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서다.
공공조달시장 규모는 이처럼 꾸준히 커지고 있지만 정작 내실은 갖추지 못했다. 특히 공공조달시장 진입의 최종 관문인 직접생산확인증명은 각종 부실이 나타나고 있다.
직접생산확인증명은 중소기업이 대기업 제품이나 수입제품을 납품하거나, 하도급 업체의 생산제품 납품을 방지하는 제도다. 중기부는 총 12개 산업군, 800여개 제품을 중소기업간 경쟁품목으로 지정해 이에 대한 직접생산확인증명을 요구한다.
중기부는 직접생산확인과 사후 절차 등을 중소기업중앙회 산하 협동조합 등에 민간 위탁한다. 산업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한 정부를 보완하고 민간 스스로가 합리적 기준으로 직접 생산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문제는 직접생산확인 세부 기준 결정 과정에서 나타난다. 정부가 직접 800여개 품목에 대한 세부 기준을 마련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해당사자 목소리가 기준 수립부터 적용된다. 공공조달시장 주요 참여자인 중소기업이 스스로 기준을 만들고 확인과 사후관리까지 모두 수행하게 되는 셈이다.
이렇다 보니 계약을 체결한 중소기업이 중개 차익만 취하고 다른 중소기업을 하청업체로 쓰고, 직접생산확인을 위반한 기업에 대한 제재처분을 부당하게 면제하는 등 문제가 끊이지 않는다. 감사원이 2016년 일부 업종에 대한 직접생산확인증명을 대거 취소 처분한 이유도 이런 불합리한 확인 기준 때문이다.
정원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기준이 애매하다니 큰 업체는 빠져나가고 작은 업체는 걸려드는 등 제도상 허점이 발생하고 있다”며 “시장 규모가 커지는 만큼 앞으로도 문제점이 계속해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드론 등 신산업 분야에 대한 기준은 더욱 불분명하다. 중기부가 지난해 드론 분야를 중소기업간 경쟁품목으로 지정하는 과정에서도 관련 업계 불만이 쏟아졌다. 한 드론업계 관계자는 “아직 드론업종에 대한 제대로 된 생산기준이 업계에서도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생산공정과 인력까지 규정한다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치권 등 일각에서 민간 위탁으로 수행하는 직접생산확인 업무를 중기부가 직접 수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민간 위탁에 따른 부작용을 줄이고 정부가 직접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중소기업계 관계자는 “직접생산확인을 위해 또 하나의 공공기관을 설립하는 것은 민간 자율 생태계 조성에 역행하는 방향”이라면서도 “민간 위탁에 따른 부작용을 줄일 수 있도록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기부는 위장 중소기업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공공조달시장의 각종 문제점을 줄이기 위한 '중소기업제품 공공구매 혁신방안'을 상반기 중 발표할 계획이다. 기존 1개 과에서 수행하던 판로지원 업무를 공공과 민간분야로 나누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중기부 관계자는 “공공조달시장 규모와 참여 기업에 비해 정작 이를 지원하는 여건이 미흡하다는 지적에 동의한다”며 “판로확대와 사회가치 실현이라는 정책 목적을 달성하도록 면밀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유근일기자 ryu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