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CES 2018 감상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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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의 CES 2017은 충격이 컸다. 인공지능(AI), 자율 주행, 로봇 등 변화의 물결이 뚜렷했다. 4차 산업혁명이 눈앞에 다가왔음을 실감했다. 그래서인지 올해 CES 2018은 기술만 놓고 보면 좀 밋밋했다. AI와 미래형 자동차의 진화가 두드러졌지만 지난해와 같은 임팩트는 없었다. “또 AI냐”라는 혼잣말이 튀어 나올 정도였다.

그런데 다른 충격파가 있었다. 이른바 '차이나 임팩트'다. 올해 CES 키워드를 꼽으라고 하면 단연 '중국'이다. 중국이 해외 주요 박람회에서 두각을 내보였다는 뉴스 역시 식상하다. 그러나 이번엔 결이 달랐다. CES를 중국이 사실상 점령했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였다. 실제로 올해 CES에 참가한 중국 기업은 1379개에 달했다. 한국의 210개보다 7배, 일본 49개보다 무려 28배나 많았다.

놀라운 것은 양보다 질이었다. 중국 최대 인터넷 기업 바이두는 CES에서 개발자 대회 '바이두 월드'를 개최했다. 행사장에는 마이크로소프트(MS), 엔비디아, 퀄컴, 톰톰 등 글로벌 협력사 임원들이 총출동했다. 루치 바이두 부회장은 이 자리에서 “중국은 AI 산업의 핵심인 자본, 기술, 정책을 모두 갖춘 나라”라면서 “지금부터 세계 AI 혁신을 '차이나 스피드'(중국의 속도)로 이끌겠다”고 선언했다. 바이두는 자율주행차량 운용체계(OS) '아폴로 2.0'과 독자 개발한 AI '듀얼OS'를 적용한 스마트 스피커를 발표했다. 바이두가 이제 구글과 정면 충돌했다는 평가가 쏟아졌다.

미래 자동차에서도 중국 스타트업 '퓨처 모빌리티'가 가장 많이 주목 받았다. 이 회사가 발표한 전기차 '바이톤'은 20분만 충전하면 250㎞를 달릴 수 있는 빠른 충전 기능을 탑재했다. 운전자의 얼굴을 인식해서 시동을 걸고, 운전자의 건강 상태도 실시간으로 파악해 준다. 단번에 '중국판 테슬라'라는 별명이 붙었다.

TV와 스마트폰 같은 전통의 전자 기기 부문에서도 '중국 물결'이 거셌다. 리처드 유 화웨이 최고경영자(CEO)는 2년 연속 CES 기조연설자로 초대됐다. 화웨이는 미국 통신사와 손잡고 미국 스마트폰 시장 진출도 공식화했다. 과거 삼성전자와 LG전자가 CES를 주름잡던 모습이 떠오를 정도였다.

올해 CES를 보면서 새삼 실감한 것은 중국 정부의 탁월한 전략이다. 바이두나 화웨이는 이젠 글로벌 1위 기업과 맞붙을 수준이 됐다. 중국 정부의 뒷받침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중국 정부는 구글, 아마존 등 해외 기업이 초기에 중국에 들어오는 것을 틀어막았다. 그리고 '산자이'라 불리는 중국 특유의 모방 전략으로 자국 기업을 키웠다. 중국 기업의 실력이 해외 기업과 대등해지면 그때야 맞붙게 했다. 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 등 중국의 글로벌 기업들은 이제 미국 실리콘밸리 기업과 경쟁해도 밀리지 않는다. 이 같은 전략은 자동차, 휴대폰, 디스플레이, 반도체 등 다른 산업에도 변주되고 있다.

한국 기업은 올해 CES에서 신나지 않았다. 눈에 띄는 혁신을 보여 주지 못했다. 2000년대 초반 한국에 전자산업 헤게모니 자리를 내준 일본 기업의 그림자가 겹쳐 보였다. 그렇다고 우리 정부에 중국처럼 일사불란한 전략도 보이지 않는다.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출범했지만 존재감은 아직 미미하다. 노무현 정부 시절 'IT 839 전략'을 떠들썩하게 발표하던 때가 오히려 그립다.

1년 뒤 한국의 위상은 또 어떻게 변할까. 중국 기업의 파괴력은 어느 정도일까. 내년 CES를 가늠해볼수록 점점 불안해지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장지영 미래산업부 데스크 jyajan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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