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이 만난 생각의 리더]<110>“EMP 방호, 발등의 불” 이춘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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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근 박사는 “현재 한국의 공습경보체계는 항공기 방호체계여서 탄도미사일 공격에는 대응할 시간 여유가 없다”면서“ 민군 협력으로 공습경보체계를 자동전파시스템으로 바꾸고 민방위훈련 체계 개선과 정부 내 콘트롤타워를 설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전용 별장으로 휴가를 떠난 대통령이 갑자기 사라진다. 대통령을 찾기 위한 청와대 경호실의 경호관 활약상이 시청자 시선을 사로잡는다. 2014년 3월 SBS에서 16부작으로 방영해 인기를 끈 드라마 '쓰리데이즈'의 줄거리다. 드라마 초반에 별장 인근의 통신망과 전자기기 사용을 막고 자동차를 멈추게 하는 전자기파(EMP)탄이 등장한다. 이 드라마는 당시 생소한 EMP탄의 가공할 위력을 국민에게 알리는 계기가 됐다.

최근 남북 안보 상황이 긴박해지면서 핵 공격과 EMP탄에 쏠린 국민들의 관심이 높다. 지난달 초 북한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장착할 수소탄을 개발했다면서 EMP 공격까지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만약 북한이 핵EMP 공격을 할 경우 우리는 어떤 방호 대책이 있는가.

이 분야를 오랫동안 연구한 이춘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글로벌정책연구센터 선임연구위원(박사)을 추석 연휴 직전에 만났다.

이 박사는 지난해 5월 '고고도 핵폭발에 의한 피해 유형과 방호 대책', 지난 8월에는 '북한의 핵 위협 증가에 대응하는 핵 방호 및 민방위 체제 개선 방안'이란 제목의 연구보고서를 각각 냈다. 그는 중국과 북한 문제 전문가로 불린다. 실제 그는 북한을 열다섯번이나 다녀왔다.

이 박사는 “현재 한국 공습경보체계는 항공기 방호체계이기 때문에 탄도미사일 공격에는 대응할 시간 여유가 없다”면서“ 민·군 협력으로 공습경보체계를 자동전파시스템으로 바꾸고 민방위 훈련 체계 개선과 정부 내 컨트롤타워를 설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빠른 때라는 평범한 진리를 되새겨 이제부터라도 서둘러서 제대로 된 방호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면서 “정보통신기술(ICT) 강국인 한국은 EMP탄으로 인한 피해가 크겠지만 사전에 충분히 대비하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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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P탄 종류는.

▲크게 두 가지다. 핵EMP와 일반EMP다. 핵EMP는 고고도 핵무기 폭발 때 발생하는 대규모 전자기파를 말한다. 전자통신장비와 전산망, 전력망, 교통망을 마비시킨다. 일반EMP는 저공 순항미사일이나 EMP 장비를 통해 전자기파를 발생시킨다. 적은 전력을 이용해 원하는 특정 지역으로 공격 범위를 제한하고, 인명 피해 없이 전자통신 설비만 피괴시킨다는 점에서 현대전(戰) 핵심 전술로 불린다. 북한이 말하는 EMP탄은 핵EMP탄에 속한다.

-EMP탄으로 인한 피해 유형은 어떤 것이 있는가.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우주, 대기, 지상 피해다. 우주 피해는 인공위성이 피해 대상이다. 수소탄을 터뜨리면 X선이 발생, 우주선 표면을 태우거나 회로를 망가뜨려서 수명을 단축시킨다. 대기권에서는 고도 80㎞에 이온층 교란층이 생겨 레이저나 통신을 교란시킨다. 중파·장파·방송파가 길게는 며칠, 짧게는 몇 시간 동안 장애를 받는다. 지상에서는 거의 모든 전자기기를 마비시킨다. 통신망, 전력망, 교통망, 금융망 같은 분야가 피해를 본다. 수돗물과 전기가 끊기고, 자동차도 항공기도 움직이지 못한다. 모든 입출력 장치도 망가지거나 오류가 생긴다.

-예상 피해 규모는.

▲고도와 크기에 따라 EMP탄 피해 규모와 범위가 다르다. 핵EMP탄 위력은 고도가 높을수록 피해 범위가 넓어진다. 또 핵이 클수록 피해 강도는 심하다. 핵 크기는 피해 강도, 고도는 피해 범위와 각각 비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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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P 방호 대책은.

▲우주와 대기에서 EMP 방호는 사실상 어렵다. 그러나 지상에서는 EMP에 대비하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우선 과전류 전원을 차단하고, 중요한 자료를 백업한 뒤 차폐 시설을 갖춘 지하실로 옮기면 피해를 막을 수 있다.

-ICT 강국일수록 피해는 큰가.

▲그렇다. 우리나라 같은 ICT 강국은 EMP 공격에 취약하다. 우리는 대도시 인구 밀집도가 높고, 지상 전자통신기기 노출도가 높다. 초집적회로처럼 저전력으로 운용하는 기기가 많다. 이에 따라 만약 북한이 핵EMP탄을 터뜨리게 되면 우리가 보는 피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정전에다 휴대폰이나 컴퓨터·TV까지 작동을 멈추고 자동차도 움직일 수 없으면 그 혼란과 피해가 얼마나 크겠는가. 더 이상 EMP 대책을 놓고 머뭇거릴 시간 여유가 없다.

-전자기기는 재사용이 불가능한가.

▲회로가 탄 것은 피해 정도에 따라 교체하면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자료는 복구가 불가능하다. 자료는 백업해서 차폐 시설이 완벽한 곳에 보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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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기관의 금융 자료는 모두 사라지는가.

▲일부에서 금융 자료가 다 사라지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지만 주요 자료를 백업해서 차폐 시설이 완벽한 지하실에 보관하면 피해는 없다. 각종 ICT 장비는 전원을 차단하거나 코드분리식으로 유도 전류를 방지해야 한다.

-산업별 방호책은.

▲우선 통신 분야에선 지상에 있는 전자통신기기는 피해 대상이다. 중계장치 부품이 손상되면 교체 작업을 해야 한다. 이 때문에 예비 부품을 확보해야 한다. 이온층 교란은 단·초단파의 경우 중·장파와 달리 영향을 덜 받는다. 금융기관의 금융 자료 백업은 필수다. 전력은 변전소와 변압기, 케이블선이 다 피해를 본다. 무기물 소재로 된 것은 영향을 많이 받고 유기물 소재는 영향을 덜 받는다. 차폐 장치를 반드시 해야 하고, 케이블 선은 지하에 묻는 게 좋지만 아직까지 어려움이 많은 현실이다.

-인체 피해는.

▲인체 피해는 지금까지 학계에 보고된 게 없다. 다만 섬광 때문에 안구가 손상한다. 시력이 나빠지거나 아예 시력을 상실할 수 있다. 섬광을 보면 안 된다. 눈을 가리고 반대편으로 엎드려야 한다. 또 열기를 들이마시면 기도 기관이 화상을 입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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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EMP 기술은 어느 정도로 평가하는가.

▲핵 보유국은 핵EMP 기술 보유국이라고 봐야 한다. 핵EMP는 비인도 기술이다.

-EMP탄 기술 보유 국가와 세계 최강국은.

▲미국과 옛 소련이다. 미국은 열 차례 이상, 옛 소련은 여덟차례 이상 실험했다는 기록이 있다.

핵 보유국은 핵EMP 실험은 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일반 EMP탄이나 이론 연구는 한다.

-범정부 차원에서 어떤 방호 정책을 마련해야 하는가.

▲우리나라는 ICT 강국으로서 북한의 핵 위협에 노출돼 있다. 그러나 조기 경보, 주민 대피, 대피 시설 구축 같은 대비를 하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우선 민·군 협력으로 조기경보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지금은 항공기 방호 체계다. 적이 공격하면 공습 경보를 발령한다. 그러나 핵을 사용하면 기존의 방호 체계로는 대응할 수 없다. 우리가 탄도미사일에 대응할 여유는 2~5분에 불과하다. 미국이나 일본은 북한에서 핵미사일을 발사해도 대응할 시간 여유가 있다. 군의 조기 경보 역량을 강화하고 민·군 경보 체계를 연동,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를 징후 단계부터 실시간 경보하는 자동 전파 시스템으로 개선해야 한다. 다음은 민방위 훈련이다. 민간인은 핵 방호라는 개념이 별로 없다. 핵전쟁은 국가 위기 상황이다. 치밀한 종합 훈련을 해야 한다. 또 핵 방어 과학 분야 연구를 강화해야 한다. 한국에 우수한 연구 인력은 많다. 자원 동원 계획을 수립하고, 기관 간 협업과 정기 학습이 필요하다. 정부는 대국민 행동 요령을 제작·배포하고, 홍보도 강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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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시급히 해야 할 일은.

▲정부는 핵 방어 업무를 전담하는 강력한 컨트롤타워를 설치해야 한다. 국가 차원에서 핵 방호를 상정한 종합 계획을 수립하고 총괄해야 한다. 그리고 법규와 조직도 정비해야 한다. 핵 방호는 1~2시간이 생존을 결정한다. 우리 지형에 맞는 EMP 방호 능력을 갖춰야 한다.

-국민이 해야 할 일은.

▲국민은 유사시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스스로 알고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 국민들은 핵전쟁이 발발하면 다 죽는다는 결정론 사고에 젖어 있다. 조기 경보에 따라 주민이 대피하고 방어 조치를 취하면 피해를 5% 이내로 줄일 수 있다. 독일은 곳곳에 대피 시설이 있다. 지하주차장, 지하상가, 지하철역이 대피 시설이다. 준비하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정부가 모든 걸 해 주길 기다리지 말고 국민 스스로 대비책을 강구해야 한다. 지난 추석에 모 기업이 직원들에게 생존 배낭을 선물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대비를 잘하면 상대가 함부로 공격을 못한다. 국민도 핵 방어 지식을 쌓아야 한다.

-좌우명과 취미는.

▲좌우명은 '끝도 처음같이, 남도 나와 같이, 속도 겉과 같이'다. 취미는 바다낚시다.

이춘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박사)은 서울대 섬유공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와 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 옌볜과학기술대 교수, 교무처장, 학사부총장을 역임했다. 중국 베이징사범대에서 교육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박사 학위가 두 개다. 2000년에 과학기술정책연구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2000년 6·15 정상회담에 전문가 자격으로 참여했으며, 통일IT포럼에서 남북 정보기술(IT) 교류의 물꼬를 트는 활동도 했다. 지금까지 북한을 열다섯 번 다녀와 누구보다 북한에 관해 잘 안다. 한중과학기술협력센터 수석대표, 통일준비위원회 전문위원, 남북교류협력추진위원회 민간위원, 통일부 장관 정책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현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과 군비통제검증단 자문위원이다. 저서로 '과학기술로 읽는 북한 핵' '북학의 과학기술'이 있다. 공저는 10여권에 이른다.


이현덕 대기자 hd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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