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주행은 자동차와 정보기술(IT) 산업의 융·복합 추세와 파급 효과를 조망할 수 있는 4차 산업혁명의 바로미터다.
현대자동차는 올해 1월 CES가 열린 미국 라스베이거스 도심에서 야간 자율주행 시연에 성공하며 기술력을 입증했다. 아이오닉 자율주행차 기술 시연은 특정한 통제 조건 없이 일상 도로 주행과 같은 상황에서 이뤄졌다. 일반 교통 신호 체계는 물론 어린이나 동물이 도로에 갑자기 나타나는 돌발 상황에서의 완벽한 대처 능력을 필요로 한다.
시연에 나선 아이오닉 자율주행차는 미국자동차공학회가 규정한 자율주행 기술 분류 0~5단계 가운데 특정 조건에서 운전자가 주행에 전혀 개입하지 않는 4단계에 해당한다. 아이오닉 자율주행차의 핵심 기술인 레이저 센서는 GPS와 연동해 차량 위치를 정밀하게 파악하고, 레이더로 차량 이동 경로를 계산한다.
아이오닉 자율주행차가 운전자 없이 도로를 누빌 수 있는 것은 자율주행의 핵심인 인식, 판단, 제어 기술 덕분이다. 사람의 눈에 해당하는 인식은 자율주행차 상용화를 위한 첫걸음이자 가장 중요한 기술로 평가된다. 인식기술 향상을 위해서는 전기, 전자, 정보통신기술(ICT) 융합이 필수다.
자율주행차 인식기술은 크게 센서 기반 인식과 연결 기반 인식으로 구분된다. 센서 기반 인식 기술은 차량 외부 환경이나 지형을 인식, 운전자와 차량에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맡는다. 최근 신차에 탑재되는 첨단운전자보조장치(ADAS)도 센서 기반 인식 대표 기술이다.
센서는 자율주행에 꼭 필요한 요소지만 현재 기술력만으로는 인식 범위가 제한된다. 날씨가 좋지 않거나 사물, 지형에 따라 정확성이 떨어질 수 있다. 교차로에서 진입하는 차량과 주차된 차량 사이에서 갑자기 뛰어든 보행자를 인식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안전한 자율주행을 위해서는 센서 기반 인식기술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연결 기반 기술의 결합이 필요하다.
차량·사물 간 통신(V2X)과 정밀 측위 기술은 연결 기반 인식 대표 기술이다. V2X는 주행 중인 차량간(V2V), 차량·인프라간, 차량·보행자 간(V2P)을 무선 통신으로 각각 연결해 교통·도로 상황·차량·보행자 정보를 교환하고 공유하는 기술이다. V2X는 레이다, 센서, 카메라 기능을 보완해 360도 주변 인식 능력을 제공함으로써 완벽한 자율주행 기술을 구현한다.
미국과 유럽 국가 등은 이미 교통사고 감소를 위해 정부가 나서 V2X 시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도 컨소시엄을 구축해 기술 표준화와 보안 강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미국 교통부는 제너럴모터스(GM), 포드, 델파이 등 완성차 업체들과 함께 V2X를 개발하고 있다. 유럽은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주관으로 V2X 보안 강화를 위한 프로젝트를 시행하고 있다.
현대차도 올해 8월 경기 화성 약 14㎞ 구간에 V2X 인프라 구축을 완료하고 V2X 서비스 검증과 연구를 시작했다. 50여대의 시험 차량이 해당 구간을 운행하면서 V2V 서비스와 V2I 서비스를 집중 검증한다.
차량 위치를 정확히 측정해 운전자와 자동차에 제공하는 정밀 측위 기술도 중요하다. 기술 선점을 위한 고정밀 지도 확보 경쟁이 치열하다. 독일 BMW, 다임러, 아우디는 28억유로(약 3조8000억원)에 정밀 지도 기술력을 지닌 히어를 인수했다. 자동차 부품업체 보쉬, 콘티넨탈도 각각 지도업체인 탐탐 및 히어와 제휴해 고정밀 지도를 이용한 부품을 개발하고 있다. 중국 ICT 업체 알리바바 지도 애플리케이션(앱) 서비스업체 오토내비를 15억달러(약 1조6900억원)에 인수했다.
연결을 기반으로 차량 인식 범위가 확대되면 자율주행차의 안전과 효율성도 크게 향상될 전망이다. 자율주행차는 차량 간격이나 차로 변경 차량의 진입 각도, 속도 등을 인식해 사고 위험을 줄인다. 도로 위에서 차량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추적해 가장 빠른 길을 찾는다. 도로 위험 상황을 감지해 주위 차량에 주의 신호를 보내거나 우회 도로 사용을 유도한다.
연결 기반 인식기술 활성화를 위해서는 정부와 업체 간 높은 수준의 협력이 요구된다. 인프라는 물론 표준화, 보안에 대한 정부 투자와 법규 제정, 관련 업체 간 긴밀한 협력이 필수다. 자율주행차가 완성차 업계 영역이 아닌 국가 산업으로 불리는 이유다.
김범준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상호 연동이 필수인 연결 기반 인식 기술 표준이 달라 정보를 주고받지 못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면서 “인식기술 표준화는 자율주행차 상용화를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이슈”라고 말했다.
정치연 자동차 전문기자 chiye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