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4차 산업혁명 영상싸움 치열해진다

네덜란드 인류사학자 요한 하위징어는 놀이가 인간의 기본적 특징 중 하나라고 강조한다. 놀이가 인간 욕구에서 비합리적 부문을 드러내 창의성을 만든다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 파고가 높아지면서 놀이하는 인간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을 이끄는 기술이 인간에게 놀 시간을 더 늘려줄 것이기 때문이다. 인공지능(AI)이 비서 역할을 하고 기계를 AI가 조정해 제품을 생산하고 자율자동차가 운전을 대신하면 인간 여가시간이 자연스럽게 늘어날 수 밖에 없다. 여가가 늘면서 콘텐츠 소비도 늘어나는 구조가 된다. 3차 산업혁명까지 노동 효율성에 변화가 컸다면 4차 산업혁명은 놀이에 변화를 가져오는 셈이다.

◇4차 산업혁명이 인간에게 안겨줄 여가

4차 산업혁명 기술 가운데 우리의 여가 시간과 가장 밀접한 것이 자율주행차다. 자율주행차는 벤츠·아우디·현대기아차 등 제조사는 물론 구글·애플 등 정보기술(IT) 기업까지 뛰어들었다.

2021년이면 도로 곳곳에 자율차 운행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연말이면 우리나라에서도 시범운행이 이뤄진다. 나아가 무인차가 도로를 질주하게 된다. 자율차가 이끄는 가장 큰 변화는 운전자와 탑승자의 시간 여유가 생긴다는 점이다.

운전자가 운전에 집중하지 않고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다. 탑승자도 도로 상황에 주시하지 않는다. 시선과 뇌에 여유가 생긴다.

호드 립슨 미 컬럼비아대 기계공학과 교수는 “2021년이면 자율차가 '스스로' 데이터를 수집하고 운전 능력을 체득하며 거리를 활보하게 된다”고 말한다. 덕분에 인류는 운전대를 쥘 필요 없이 여가, 일 등에 시간을 할애할 수 있다. 운전대로부터 해방, 그것은 바로 '완전 자율주행' 세계다. 그의 저서 '넥스트 모바일:자율주행혁명'에서 이같이 밝혔다.

립슨 교수는 “컴퓨터 칩 성능이 기하급수적 속도로 발전하는 무어의 법칙을 반영하듯 무인차 하드웨어를 제어하는 소프트웨어는 신뢰성 있고 강력하고, 경제적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자율주행이 이끄는 가장 근본적 변화는 거리에 대한 사람들 인식을 대대적으로 바꾸는 데서 시작한다. 일정하고 신속한 차량 패턴에 의해 시공간에 대한 인류 개념이 바뀌면서 장거리 출퇴근, 주거 문제가 해결된다.

교통 사고 감소, 체증 해소로 인한 환경오염 해결, 주차 시설을 친화적 공간으로 만드는 건축 혁신 등도 자율차에 거는 기대요소다. 또 지하철이나 버스를 대신할 무인택시 대중화, 여기에 설치될 이동식 사무실과 엔터테이너 시스템은 인류의 업무, 여가 시간 증대에 막대한 기여를 할 것으로 예측했다.

자율차 외에도 AI와 빅데이터가 스마트홈과 스마트 제조에 적용되면 가정과 직장에서 업무 시간은 획기적으로 줄어든다. 그러면 여가 시간은 늘어난다.

늘어나는 인간의 여가는 콘텐츠 산업에 큰 기회다. 최근 국내외 콘텐츠 시장이 빠르게 성장한 것도 이러한 여가시간 증가와 무관하지 않다.

PWC에 따르면 세계 콘텐츠 시장 규모는 2015년 이후 5년간 연평균 4.4% 성장이 점쳐진다. 이는 같은기간 경제개발협력기구(OECD)의 경제성장률 전망치 2.9%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콘텐츠 플랫폼이 바뀐다

미래에 가장 큰 변화를 겪을 부문은 영상콘텐츠다. 그렇다고 현재 콘텐츠가 미래에도 승승장구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콘텐츠를 즐기는 전통적 플랫폼이 변화 기로에 있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 변화를 겪는 것이 영화와 극장이다. 최근 미국 영화산업을 대표하던 극장의 성장은 하락세다.

리서치 회사인 컴스코어에 따르면 올해 5월 첫주부터 9월 첫째 주말까지 미국과 캐나다에서 거둔 영화의 극장 흥행 실적은 지난해보다 16%가 줄어든 38억달러에 그쳤다. 여름 시즌 성적이 40억달러를 밑돈 것은 2006년 이후 처음이다. 할리우드 영화계는 연중 최대 성수기인 8월에도 6억2510만달러라는 저조한 실적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5%가 줄어든 것이다.

전문가들은 극장 시장이 부진한 원인으로 케이블 채널과 OTT 성장을 꼽았다.

영화 전문 케이블 채널인 HBO가 왕좌의 게임 등을 상영하고 아마존과 넷플릭스, 훌루 등 OTT가 제공하는 주문형 스트리밍 서비스가 팬들 관심을 빼앗아갔다는 것이다.

전통적 영상 플랫폼인 극장과 지상파TV가 내리막길을 걷는 반면 유료 가입자 기반 OTT 성장은 무섭다. 미국 영상 시장 40%를 넷플릭스, 훌루 등 OTT가 차지할 정도다. 최근 5년간 평균 성장률은 31%였다. 글로벌 성장 전망치도 15.1%에 이른다.

국내에서도 기존 드라마 시장을 이끌던 지상파 채널이 드라마 편성 예산 삭감으로 경쟁력있는 드라마 유치에 실패하면서 시청률은 하락했다. 시청자 눈길은 '볼만한 드라마'를 쫓아 유료 케이블 채널과 OTT로 이동했다.

국내 드라마 제작사에도 OTT는 기회다. 특히 동남아 시장은 한국 드라마에 대한 수요가 일찌감치 확인된 시장이다. 소득 수준으로 인해 개별 판매 단가가 낮아 한국 업체들이 소홀히 대해왔다. 그러나 최근 동남아 시장에 넷플릭스, 유튜브 등을 비롯하여 글로벌 OTT가 진입하면서 한국 콘텐츠 구애가 이어지고 있다.

자율차 시장 등장은 차량내 디스플레이 기기 활용이 높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모바일과 차량내 설치될 대형 디스플레이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른바 카 인포테인먼트 시장이다.

◇우리나라 콘텐츠 산업 현실은

우리나라 올해 1분기 콘텐츠산업은 매출 성장에도 불구하고 수출이 뒷걸음을 쳤다. 1분기 수출은 12억6527만달러다. 직전 분기인 2016년 4분기와 비교하면 31.1% 줄었다. 작년 동기인 1분기와 비교해도 4.5% 줄었다. 2분기 이후 역시 장담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는 국내 수출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던 중국 영향이 컸다.

다만 국내 콘텐츠 경쟁력이 여전히 아시아에서 우위를 보이는 데다 가치가 제조업을 능가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허지영 한국콘텐츠진흥원 산업분석팀 연구원은 “우리 콘텐츠 산업은 최근 5년간 연평균 5%씩 성장하며 100조원 시대에 진입했고, 콘텐츠 산업은 타산업 성장을 위한 '뿌리산업'으로 여러 분야에 융합하면서 국가경제 전반에 파급효과가 크다”면서 “적극적 산업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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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넷플릭스와 주요 케이블 가입자 미국 추이

[박스]세계는 지금 융합과 합종연횡이 대세

오스트리아 린츠에서는 매년 9월이면 세계에서 온 공학자와 예술가들로 가득하다. 세계적 테크놀로지 축제 '아르스 일렉트로니카(Ars Electronica)'가 열리기 때문이다. 아르스 일렉트로니카는 기술과 예술의 결합을 만드는 장이자 이를 지원하는 기관이다. 축제는 테크놀로지를 도구로 사용함으로써 기존 축제에 대한 고정관념을 뒤바꾸어 놓는다.

2015년에는 아르스 일렉트로니카와 자동차 회사 메르세데스 벤츠의 만남이 이뤄졌다. 'F015 럭셔리 인 모션'으로 통하는 컨셉카를 소개하는 것이다. 센서 기술을 응용한 자율주행 무인자동차다. 승객은 스마트폰과 손끝 하나 만으로 목적지에 갈 수 있고 실내 좌석배치는 승객들이 서로 마주보게끔 설계, 마치 비엔나풍 마차를 타고 가는듯 세련된 인테리어다.

전문가들은 벤츠가 자율차를 예술축제에 내놓은 것은 콘텐츠와의 결합 중요성을 내다본 것으로 해석한다. 실제 벤츠는 구글·바이두 등과 손잡고 무인차용 차량 인포테인먼트 플랫폼을 개발 중이다. 토요타·GM·BMW·아우디 등도 각각 구글·마이크로소프트·애플·바이두 등 IT 기업과 플랫폼 기술 개발에 한창이다.

자율주행차 대중화는 오는 2020년에 맞춰져 있다. 고도의 자율주행으로 분리되는 레벨4부터 상용화가 가능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 관측이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ISH에 따르면 향후 자율차량 시장 전망을 오는 2035년쯤 2100만대에 달할 것 전망했다. 업계는 2020년까지 자율주행차 판매가 서서히 늘어나다 2030년부터 2035년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국내 IT기업도 자율차 플랫폼 개발 경쟁에 나섰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네이버 등이 대표적이다. 삼성전자는 세계 최대 전장차 업체 하만을 인수했고 LG전자 역시 조직을 바꾸고 카인포테인먼트 업체로 변신을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차량에서 이뤄지는 콘텐츠 소비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에 대비한 움직임이다.

콘텐츠 업계 역시 플랫폼 기업간 미래 성장을 위한 합종연횡이 한창이다.

구글과 넷플릭스 등 글로벌 IT공룡은 OTT 시장 선점에 일찌감치 뛰어든 상황이다. 구글은 AI 스피커 '구글홈'과 OTT 기기 '크롬 캐스트'를 연동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넷플릭스는 콘텐츠 발굴에 적극적이다. 한국에서는 봉준호 감독의 '옥자'를 사들여 '넷플릭스'에 먼저 풀었다.

이 외에도 통신사 AT&T가 지난해 타임워너를 인수하면서 콘텐츠 시장에 뛰어들었다.

미래 콘텐츠시장을 이끌려는 움직임이 가속화된 것이다. 임성희 SM엔터테인먼트 본부장은 최근 열린 세미나에서 “글로벌 플랫폼 강자간 합종연횡이 잇따르고 있다”면서 “우리 정부와 기업도 4차 산업혁명발 변화에 대응해 콘텐츠 산업 전략을 재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창간특집] 4차 산업혁명 영상싸움 치열해진다

이경민 성장기업부(판교)기자 km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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