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과학기술 연구과제가 소규모, 단기, 추격형에서 대규모, 장기, 창조형으로 전환되는 추세다. 이에 따른 대형과제 맞춤형 경영방식이 요구된다. 핵심은 어떻게 하면 연구자들의 열정을 북돋우고 결집시켜 창조적인 대형 연구 성과를 창출하게 하는 방안을 찾을까 하는 것이다.
대형 시스템 과제일수록 신기술뿐만 아니라 범용기술, 각종 법규, 행정업무, 시험평가 등 다양한 분야를 포함한다. 예를 들어 자기부상열차는 핵심인 부상, 추진기술 이외에도 토목, 건축, 안전법, 신호, 통신, 시험평가, 기술기준, 전력, 운영 등을 포함한다. 신기술 과제일수록 전공자도 없다. 이런 과제 수행자 개인의 입장에서는 보유 전문분야에서 벗어나 새 분야를 개척해야만 한다. 또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신기술뿐 아니라 범용기술은 물론 행정업무도 해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타의성이 개입되기 쉽고, 타의성이 클수록 의욕은 상실된다.
연구자의 열정이 타오르게 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시대별 국가별로 열의를 불러오는 가치관에는 뚜렷한 차이가 있다. 철학자 헤겔은 동양세계의 원리는 공동정신이고 이는 내적으로 공감을 얻는다고 특징 지었다.
같은 맥락에서 한국FPSB 김일섭 회장은 “평상시에는 분열·대립하다가도 공유할 수 있는 가치 있는 목표가 생기면 똘똘 뭉치는 게 한국 사람의 두드러진 특징”이라고 언급했다.
그 사례로 누적인원 1500만명이 모인 촛불시위를 들었다. 필자도 주의 연구자들을 보면서 이런 한국인의 특징을 확인한 경험이 있다. 후배 연구자들은 인사고과나 금전적 인센티브보다도 의미 있는 일을 한다고 느낄 때 연구몰입도가 높다고 털어놓는다. 한국 연구자들은 공동의 가치 추구에 공감하여 그 가치에 일익을 담당할 때 보람을 느끼고 결집하는 것이다.
한국인 특징을 바탕으로 대형과제 연구자에 대한 경영방안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우선은 연구자 모두가 공동의 가치라고 공감하는 공동목표를 명확하게 세워야 한다. 과제가 상향식이던 하향식이던 그 목표는 산업, 국가, 인류에 중대한 가치가 있어야 하고 연구자가 공감할 수 있도록 공유해야 한다. 그러면 자연스레 연구자는 연구 동기를 갖게 될 것이다. 다음으로 가능한 한 개인과 팀의 전문성, 호기심과 일치하는 책임을 부여하고 더불어 책임 범위 안에서 충분한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
창조형 연구과제는 미지의 길을 찾아가기 때문에 처음으로 맞닥뜨리는 상황에서 집단 창의성을 발휘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면 연구자들의 열정이 불타고 협동, 융합이 일어나 큰 성과가 나는 것이다. 구글, 페이스북, 스페이스엑스 창업자들의 공통점은 경제적 이익을 넘어선 인류의 가치를 추구하는 원대한 목표를 항상 가슴에 품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애플 공동창업자 워즈니악도 혁신제품은 자기가 만들기 원하는 것을 자기가 통제할 수 있는 상태에 있는 혁신가로부터 나온다고 주장했다.
한국인 연구자들은 현실적 이득보다 공동 가치에 부합하는 일에 삶의 의미를 갖고 추동력을 얻는다. 더불어 창의적으로 일할 수 있는 자율성이 주어진다면 흥이 나서 결집해 기적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대형과제화가 될수록 수행하는 사람에 대한 깊은 고민을 주문하고 싶다.
한형석 한국기계연구원 자기부상연구실장 hshan@kimm.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