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이단아라는 말이 가슴에 와닿았다. 사무실 풍경부터 남달랐다. 녹색 카펫을 바닥에 깔고 행운목과 고무나무 같은 실내 공기 정화 식물, 공기 청정기를 배치했다. 직원 책상 위에는 캐노피를 설치, 마치 녹색 실내 정원에 들어선 느낌이었다. 직원들의 옷차림은 자유다. 은행권에서 흔히 보는 정장이나 유니폼 차림은 없다. 반바지에 슬리퍼 차림, 턱수염을 기른 직원 등 자유분방하다.
한국 최초의 인터넷 은행인 케이뱅크 사무실의 풍경이다. 정보통신기술(ICT)과 금융이 융합해 탄생한 금융권의 창조성 파괴자다. 기존 은행 입장에서 보면 케이뱅크는 이단아다. 일부는 케이뱅크를 '금융권의 메기'라고 부른다. 케이뱅크는 본점만 있다. 지점이 없다. 1년 365일 24시간 업무를 보며, 기존 은행보다 예금 및 대출 금리가 고객에게 유리하다. 업무는 비대면 처리를 한다. 이런 차별화 영업으로 출범 3개월여 만에 올해 목표를 달성, 이변을 낳았다.
심성훈 케이뱅크 행장을 지난 22일 오후 4시 서울 종로구 케이뱅크 행장실에서 만났다. 심 행장은 '정통 금융인' 출신이 아니다.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후 KAIST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88년 KT에 입사해 대외전략과 사업지원 담당, 회장 비서실장, 시너지경영실장, KT 이엔지코어 경영기획총괄(전무)을 거친 이른바 ICT 전문가다.
-사무실 분위기가 특이하다.
▲케이뱅크는 기존 은행과 다르다. ICT를 근간으로 창의 및 혁신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이다. 모든 직원의 복장은 자율이다. 반바지 차림에다 슬리퍼를 신거나 수염을 기른 직원도 있다. 나만 정장 차림을 했다.
-그동안 영업 실적은.
▲출범 3개월여 만에 올해 목표는 달성했다. 올해 수신은 5000억원, 여신은 4000억원이 목표였다. 6월 셋째 주에 목표를 달성했다. 가입자 수는 36만명이다. 이런 추세라면 국제결제은행(BIS) 비율이 급격히 낮아질 수 있어 추가 증자를 해야 한다. 지금은 BIS 비율에 문제가 없다.
-가입자 분포는.
▲가입자의 70% 이상이 30~40대다. 50대 이상은 한 자릿수다.
-증자는 언제 하는가.
▲케이뱅크는 자본금 2500억원으로 출범했다. 이미 시스템 구축과 인건비, 사무실 임대료 등으로 절반을 사용했다. 처음에는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 2500억~3000억원 증자를 해야 할 것으로 전망했지만 대출이 늘어나면서 올 3분기에 추가 증자를 해야 할 것 같다. 현재 주주 회사는 19개다. 그 가운데 KT, 우리은행, NH투자증권이 주요 주주 회사다. 지금은 증자를 하고 싶어도 은산 분리(산업 자본의 은행 지분 소유 제한)에 막혀 있다. 완화가 시급하다.
-국회에서 은산 분리 특별법을 발의하지 않았는가.
▲국회 정재호 의원(더불어민주당)과 김관영 의원(국민의당) 등이 인터넷 은행 특별법을 발의한 상태다.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지난 2월 20일 공청회를 열고 이 문제를 논의했다. 나도 그 자리에 토론자로 참석했다. 쟁점은 은산 분리 완화다. 현 은행법은 산업 자본의 은행 지분 보유를 의결권 기준 4%로 제한하고 있다. KT는 케이뱅크의 최대 주주가 아니다. 은산 분리 완화를 반대하는 입장은 재벌 기업의 사금고화를 걱정한다. KT 지배 구조를 보면 그건 기우에 불과하다. 케이뱅크의 경우 개인영업은 하지만 기업 대출 기능은 없다. KT는 49%가 해외 주주다. 나머지는 국민연금과 국민주다. KT가 대주주가 된다 해도 케이뱅크를 사금고할 수 없다. KT는 재벌이 아닌 ICT 혁신 기업이다. KT가 대주주로서 금융 혁신을 리드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 인터넷 은행에 특혜를 달라는 게 아니다. 현행 은행법을 그대로 두고 특례법으로 은산 분리를 완화해 달라는 것이다. 어떤 분이 농담으로 “아이를 낳으면 호적에 올려 줘야지”라는 말을 하던데 우리 입장에서 완화는 절실한 문제다. 문제가 있다면 사후 규제를 하면 된다.
-기존 금융권에 비해 어떤 점이 좋은가.
▲첫째는 편의성이다. 365일 24시간 이용할 수 있다. 지점이 없고 본점만 있다. 스마트폰에 애플리케이션(앱)을 설치하면 예금이나 대출을 실시간으로 할 수 있다. 앱을 다운로드 받으면 300만원까지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 수 있다. 둘째로 시간 제약이 없다. 오전 9시~오후 6시에 이용자가 가장 많지만 시간과 공간 제약 없이 은행을 이용할 수 있다. 밤중이나 새벽에도 이용하는 이가 있다. 셋째는 금리다. 예금과 대출이 시중 은행보다 유리하다. 예금 이자는 높고 대출 이자는 낮다. 금융 상품별로 금리는 다르다. 넷째는 비대면 업무 처리다. 대면 업무 처리를 불편하게 생각하는 계층이 있다. 과거 시중 은행에서 대출이나 금융 거래 때 보험 가입 같은 걸 권유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그렇다.
-대출 신청자의 신용 평가는 어떻게 하나.
▲개인 정보를 입력하면 금융 기관과 신용 정보사의 데이터, 통신 기록 등을 조회해서 신용 등급을 산출해 대출금을 정한다. 대출 신청을 하면 20~30분이면 통장에 입금된다.
-외국의 인터넷 은행 실태는 어떤가.
▲미국은 20여년 전, 일본은 2001년에 각각 인터넷 은행을 설립했다. 독일은 2009년, 중국은 2014년과 2015년에 잇달아 인터넷 은행을 출범했다. 영국은 2015년, 인도는 2016년에 영업을 시작했다. 한국은 ICT 강국이다. 스마트폰 보급률이 90%에 육박한다. 우리가 이들 나라에 비해 출발은 늦었지만 잘 구축한 인프라를 기반으로 이들보다 발전하도록 노력하겠다.
-카카오뱅크가 곧 출범한다. 어떤 전략인가.
▲반가운 일이다. 케이뱅크는 올해 업무를 시작했다. 전국은행연합회에도 가입했다. 금융권 아닌 분야에서는 아직도 인터넷 은행을 잘 모른다. 얼마 전에 만난 분에게 명함을 건넸더니 케이뱅크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 카카오톡은 이용자가 많다. 국민이 다 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카카오뱅크가 등장한다면 인터넷 은행의 관심도를 높일 수 있어서 서로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취급 업무 범위를 확대할 계획은.
▲현재 준비하고 있다. 보험과 펀드, 자산관리 상품을 준비하고 있다. 보험은 3분기께 선보일 계획이다. 주택담보 대출과 보험 등은 올해 안에 출시할 방침이다. 신용카드와 자산관리 상품은 내년에 내놓을 계획이다.
-해킹이나 개인 정보 유출에 대비한 보안책은.
▲해킹과 보안은 창과 방패 관계다. 최신 기법으로 해킹이나 개인 정보 유출 대비책을 강구했다. 서버를 이중으로 구축했다. 메인 서버는 우리금융 데이터센터에 있고, 다른 하나는 KT에 있다. 보안을 위해 직원들은 컴퓨터를 2대씩 사용한다. 내부 망과 외부용으로 구분한다. 내부 망은 외부와 단절했다. 회원 주민등록번호나 계좌번호는 전부 암호화했다. 이중으로 보안 시스템을 구축하고 트래픽도 점검하는 등 해킹이나 개인 정보 유출 방지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금융 사고 시 책임의 한계는.
▲이 문제를 담당하는 팀이 있다. 민원이 발생하면 이를 접수, 실제 피해 사례가 인정되면 보상해 준다. 이런 건 기본 사항이다.
-해외 진출 구상은 있는가.
▲지금은 사업 안전화가 시급하다. 성공 사례가 쌓이면 해외로 진출할 생각이다. 동남아로 진출하거나 컨설팅해서 협력 업체와 동반 진출도 할 수 있다. 우선은 성공 스토리를 만드는 일이 먼저다.
-해외 인터넷 은행의 국내 진출 관련 대책은.
▲한국 시장은 규모가 작다. 외국 인터넷 은행의 움직임은 잘 모른다. 중국계 카드업체나 간편 결제 수단은 이미 한국에 진출했다.
-아날로그 세대(노인층)에 대한 가입 전략은.
▲아날로그 세대는 모바일 사용에 서툴다. 인터넷 은행을 잘 이용하려면 ICT 활용 능력을 길러야 한다. 이런 이유로 ICT 서포터즈와 녹색소비자연대, 한국YMCA 같은 단체와 협조해서 고령층 대상으로 스마트폰과 앱 활용법 같은 정보화 교육을 실시할 계획이다. 청년층 대상으로는 신용등급 잘 지키는 법과 금융 교육을 실시할 방침이다.
-케이뱅크의 목표는.
▲10년 후 자산 규모 15조원 은행으로 발돋움하는 일이다.
-흑자 시기는 언제로 보는가.
▲2020년이면 최초 수익을 낼 것으로 전망한다.
-바라는 점은.
▲은산 분리 완화로 KT가 케이뱅크의 지분을 안정 보유, 회사가 혁신 기치 아래 금융 산업의 새로운 성장 산업으로 발전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주기 바란다. 우리는 특혜를 원하지 않는다. 현행 은행법의 근간을 유지하면서 재벌이 아닌 ICT 기업이 대주주가 되도록 국회가 이 문제를 풀어 줬으면 한다.
-좌우명과 취미는.
▲특별히 좌우명이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남에게 도움을 주면서 살자'를 늘 마음 속에 담아 놓고 있다. 취미는 등산과 음악 감상이다. 산행은 한 달에 한 번꼴로 한다. 보유한 CD만 5000여장에 이른다.
인터뷰를 끝내고 나오는데 회의실 명칭이 특이했다. 로마, 바르셀로나, 헬싱키, 런던, 홍콩 등 외국 유명 도시명이다. 비상문에는 '혹여나 문 뒤에 행장님이'라는 글귀가 붙어 있었다. 문을 살짝 열라는 경구였다. 기존 금융권과 차별을 둔 '금융업계 혁신 메기'가 확실하다는 생각을 하며 심 행장과 헤어졌다.
이현덕 대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