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을 둘러싼 관심이 뜨겁다.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로봇, 무인자동차 등으로 상징되는 4차 산업혁명은 새로운 산업의 패러다임이다. 정부 부처에서는 4차 산업혁명을 대비해 정보통신기술(ICT) 거버넌스 개편 논의가 활발하다. 4차 산업혁명을 철저하게 준비해서 경쟁력을 갖춘 기업과 국가는 성장할 것이지만 그렇지 못하면 도태될 것이 자명하다.
정부의 ICT 정책을 둘러싼 주요 쟁점 가운데 하나는 4차 산업혁명 선도와 함께 선순환 생태계 구조를 만들어 가기 위해서 ICT 관련 기금을 어떻게 운용하고 활용할지에 대한 것이다.
최근 제주도에서 있은 한국언론학회 정기학술대회에서도 주요 ICT기금 가운데 하나인 방송통신발전기금의 제도 개선 논의가 있었다. '방발기금'으로 통칭되는 이 기금은 방송통신발전기본법에 근거해 방송통신 진흥을 지원하는 목적으로 설립·운용되는 공공 자금이다. 매년 1조원이 넘는 기금이 징수되고 있지만 기금 조성과 운용에 대한 투명성·효율성 논란이 있으며, 방발기금을 납부하는 사업자의 저항이 반복되는 양상이다.
독점지대론에 근거해 방송사업자가 공공재인 전파 자원을 이용하거나 독점 사업권을 토대로 얻은 수익의 일부를 회수해서 이를 방송통신 진흥을 위해 투입한다는 것이 방발기금 제도 도입의 배경이다.
그러나 미래창조과학부, 방송통신위원회로 나뉘어 기금을 관리하면서 사업자마다 분담금 부과 기준 및 징수율이 서로 상이하다는 점에서 형평성 문제가 지적된다. 나아가 기금 설치 목적과 다소 거리가 있는 분야에도 기금을 집행한다는 비판이 있다. 기금을 부담하는 사업자들이 기금 지원 사업 대상에서는 소외된다는 문제 제기도 반복된다. 기금 운용 심의를 담당하는 '방송통신발전기금운용심의회' 역시 정부 관계자가 절반 이상 포함되는 등 공정성 논란도 있다.
이에 따라서 새 정부 출범을 계기로 4차 산업혁명을 대비하기 위해 '방발기금'을 포함한 ICT 관련 기금 제도 전반의 정비가 요구된다.
먼저 정부가 거대한 기금을 조성, 산업 진흥의 모든 부문을 주도해야 한다는 생각은 바꿀 필요가 있다. 정부 주도로 사업자에게 기금을 징수하고 그 재원을 재투자해서 산업을 성장시키는 방식은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 정부가 4차 산업혁명 발달 촉진을 위한 미래 지향 정책을 마련하고 수행하기 위해서는 해당 분야 사업자 주도로 연구개발(R&D) 투자를 확대할 수 있도록 불필요한 규제를 과감히 풀어 주는 게 우선이다.
각종 지원 사업에서 기금 의존성을 낮추고 펀딩 활성화 등 민간 자율 확대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기금 조성 시에도 투명성·효율성 제고를 위해 현실 기반의 기금 운용 및 관리 방안 도출과 이에 대한 사회 공감대 형성 과정도 필요하다. 특히 기금 수혜 대상으로 공익 사업을 우선함으로써 기금의 공공 역할을 제고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방송과 통신 영역 기금 조성과 운용의 정당성이 확보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대비 R&D 예산 비중은 2013년 기준 1.05%로 세계 1위지만 신기술 사업화 성공률은 절반 이하로 매우 낮다. 기술과 사업을 연계하는 4차 산업혁명에 잘 대비하기 위해서는 기금이나 R&D 예산 규모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미래 지향 정책 마련과 효율 수행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옛말이 있다. 자신의 배가 부를 때 주위를 돌아보는 여유가 생긴다는 뜻이다. 특히 방송 산업의 곳간 사정은 녹록지 않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으로 예상된다. 기금을 둘러싸고 반복되는 문제 제기는 이러한 현실 반영이기도 하다. 새 정부의 출범은 이런 문제를 근본부터 검토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이와 더불어 그동안 정책 당국이 기금에 의존해서 과도한 인심을 쓴 것은 아닌지도 되짚어 봐야 한다.
김동규 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장 kdg810@kk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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