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자신들이 사용하는 컴퓨터에 '붉은별'이라는 자체 개발 운용체계(OS)를 사용한다. 2008년 처음 출시된 붉은별은 개방형 OS인 리눅스에 기반을 두고 북한 실정에 맞게 수정한 것으로 2013년 3.0 버전까지 공개됐다. 붉은별은 마이크로소프트 OS인 '윈도'처럼 그래픽 사용자 환경을 지원하고 있으며 전체적인 구성도 이와 유사하다. 그럼 북한은 왜 굳이 OS를 자체적으로 개발해 사용하고 있을까. 이는 윈도 프로그램 보안 문제를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마트폰, 태블릿PC, 스마트TV… 사생활 해킹 도구가 되다
북한이 우려하던 일이 최근에 실제로 벌어졌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에서 컴퓨터 OS와 스마트폰, 태블릿PC는 물론 심지어 스마트TV까지 동원해 개인 사생활을 해킹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폭로 전문 웹사이트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CIA 사이버 정보센터 문서에 따르면 마이크로소프트 OS, 애플 아이폰과 아이패드, 구글 안드로이드폰, 삼성 스마트TV 등이 CIA 도·감청 도구로 활용됐다.
미국 정보기관은 테러 방지라는 명목으로 광범위한 도청망을 가동하고 있다.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휴대전화까지 도청한 것은 이미 밝혀진 사실이다. 그런데 미국 정보기관의 도청은 일반 시민의 사적인 대화 내용에까지 뻗쳐 있다는 사실이 전직 보안 전문가 에드워드 스노든에 의해 폭로된 바 있다.
그에 의하면 팔레스타인 지역에 친척을 둔 아랍계 미국인의 대화 내용이나 이메일 감청 자료는 미국 정보기관을 통해 이스라엘로 넘겨지기도 했다. 꼭 테러리스트가 아니더라도 위험하고 급진적인 사람이라고 판단되면 포르노 웹사이트의 방문 기록이나 불륜 등 사적인 내용까지 모두 수집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자기기 이용한 도·감청, 그 원리는?
이처럼 누군가의 일상을 모두 감시할 수 있는 것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전자기기를 도·감청 도구로 활용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뉴스를 접하면 일반인 역시 언제 어떻게 감시당할지 몰라 불안할 수밖에 없다. 과연 전자기기를 이용한 도·감청은 어디까지 가능하며 그 원리는 무엇일까.
우선 컴퓨터 OS나 스마트폰이 도·감청을 위한 악성 프로그램에 감염되면 컴퓨터나 스마트폰에 장착된 카메라와 마이크가 주인도 모르게 활성화된다. 사용자 대화 내용이나 영상, 문자 메시지, 이메일 등을 비롯해 위치 정보까지 모두 유출될 수 있다.
스마트TV를 이용한 해킹도 원리는 똑같다. TV 속에 침투한 악성코드가 정상적인 TV 앱처럼 작동하면서 주변의 음성을 포착해 녹음한다. CIA에서 개발한 '우는 천사'란 악성코드는 '위장 전원 꺼짐' 기술을 이용해 TV가 꺼져 있을 때도 주변 소리를 도청해 CIA 비밀 서버로 보내는 것으로 밝혀졌다.
위키리크스 폭로 이후 미국 트럼프 대통령 수석 고문 켈리언 콘웨이는 '전자레인지도 감시 카메라로 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주장의 근거는 전자레인지가 사용하는 마이크로파에 있다. 마이크로파는 마치 레이더처럼 특정 유형의 이미지를 만드는 데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소리 에너지가 과자 봉지 같은 사물의 표면에 일으키는 미세한 떨림을 고속카메라로 촬영한 다음 어떤 소리인지를 재현할 수 있다. 미국 MIT 전기컴퓨터공학과 연구진은 5m가량 떨어진 거리에서 촬영된 감자칩 봉지의 떨림만으로도 그 과장 봉지에 전해진 미국 전래동요의 한 구절 가사를 또렷이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전자레인지는 콘웨이 수석 고문의 주장처럼 감시용으로 사용하기는 힘들다. 가정에서 사용하는 일반 전자레인지의 마이크로파로는 이미지화 작업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전자레인지는 기본적으로 문을 닫은 상태에서만 작동하므로 마이크로파의 외부 방출이 어렵다. 또 전자레인지에는 카메라나 마이크가 달려 있지 않을 뿐더러 스마트TV처럼 인터넷과 연결된 제품도 거의 없으므로 감시 장치로는 부적합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일상에서 사용하는 전자기기로부터의 해킹을 사전에 방지하고 싶다면 OS를 최신 버전으로 업데이트하는 것이 좋다. 구형 버전일수록 개발된 도·감청용 악성 프로그램이 많기 때문이다. 또 비밀번호 등의 보안 설정을 자주 바꾸고 백신을 이용한 악성코드 검사를 꾸준히 하는 것도 중요하다.
글 : 이성규 과학칼럼니스트 일러스트 : 이명헌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