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온뉴스 이예은 기자] 근래 들어, 연기 인생에 있어 공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유해진 덕에 그를 모르는 대중이 없다. 예능에서도 ‘참바다’로 등장해 언제나 사람 좋은 미소를 짓는 그는 모든 게 편안해 보인다. 하지만 계속해서 이어온 치열한 고민들과 연구를 듣게 되면, 그의 연기가 결코 뚝딱 나온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영화 ‘공조’에서 유해진은 거창한 포부나 명예보다는 가정의 행복을 바라는 소박한 꿈을 지닌 남한 형사 강진태로 분했다. 한 사건으로 정직 처분을 받은 강진태는 복직과 더불어 특진 제안에 북한 형사 임철령(현빈 분)과 공조 수사를 시작한다. 사실, 이미 충무로에는 남북 이야기를 소재로 한 영화가 즐비하기에 ‘공조’가 특별하다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유해진이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명확했다.
“영화를 언론시사회 때 처음 봤는데, 전체적으로 깔끔하다는 인상이 있었어요. 감독님이 만들고자 했던 오락영화답게 나온 것 같아요. 사실 이 영화가 전체적으로 큰 얘기를 하는 것 같지만 결국은 너와 나의 이야기 그리고 사람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서 결정했어요. 특히 마지막 엔딩을 보시면 아실 거예요. 제가 영화를 선택할 때 기준 중 하나가 사람 이야기가 잘 녹아져 있는 것들이에요.
그는 이제껏 스크린에서 여자 배우들보다는 주로 남자 배우들과의 ‘케미’를 선보였다. 이준, 유아인, 조승우, 탑, 장혁, 김윤석 등 그의 옆에만 서면 남자 배우들은 자유롭게 자신들의 역량을 펼쳐냈다. 이에 유해진은 “일부러 남자 배우들만 찾은 건 아니에요. 영화계에는 남자배우들 이야기를 그리는 것들이 대부분을 차지하잖아요. ‘남녀케미’나 ‘여여케미’ 작품이 많이 나와야 할 텐데요.”라고 전하기도 했다. 그런 그이기에 과연 ‘공조’ 속 현빈과는 어떤 새로운 호흡을 보여줄지 기대를 자아내는 건 당연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케미’는 스크린 밖에서도 드러났다. 특히, 현빈이 유해진의 집에 찾아가 술 한 잔을 기울였다는 이야기는 화제를 모았다.
“(현)빈이가 그러는 거 처음 봤다고 매니저가 그러더라고요. 허물없이 다가오는 게 너무 고마워요. 다가가려고 해도 삐뚤게 받아들이거나 어깨에 힘들어가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데 현빈이 먼저 다가와서 ‘한 잔 사주세요.’ 하면 선배로써 기분이 정말 좋죠. 그 다음날부터 바로 편해졌어요.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될까?’ 하는 고민들이 사라지고 편하게 할 수 있게 됐어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는데 걸림돌이 사라진 거니까 정말 고마워요.”
유해진은 인터뷰 내내 현빈과 동료 배우들에게 공을 돌렸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도 현빈이 등장한 장면, 기억에 남는 공간도 장영남과 윤아와 함께 작업한 ‘집’이었다. 자신에겐 한없이 겸손했고, 상대 배우들에겐 한없이 너그럽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번 작품에서는 현빈이 멋있는 역할을 했으니, 자신은 그것을 빛나도록 받쳐주는 역할이라고 말하며 다음 기회를 기다렸다.
“현빈은 진짜 열심히 해요. 남자다움이 몸에 밴 것 같고, 건강한 이미지답게 노력해요. 이번 작품도 저보다 훨씬 몇 달 전부터 준비했어요. 그걸 보고 ‘무섭게 덤비는구나’ 싶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조심하란 말을 계속해서 했어요. 빈이 뿐만 아니라 저도 그런 모습을 보면서 자극 받고, 서로 많이 받았죠. 장영남 씨와는 워낙 친해서 편했고, 윤아 씨도 열심히 하는 모습이 예뻐 보였어요.”
극사실주의에 가까운 그의 연기를 보고 있자면, 타고난 연기 천재라고 착각하게 만든다. 아무런 준비 없이 촬영장에 가고 즉석에서 힘을 발휘할 것 같지만, 그는 섬세하고 철저한 노력파다. 현빈은 앞선 인터뷰에서 유해진의 대본에 흰 공간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빼곡하게 글자로 차있다고 밝혔다. 유해진은 애드리브도 결코 순간의 결정으로 나온 것이 아니며 치열한 고민 끝에 ‘약속된 사항’임을 강조했다. 이어 인터뷰 도중에 마치 카메라가 있듯이 직접 몸소 연기를 재현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실제로 영화 현장에서 이야기를 많이 하고 상상을 해요. ‘진짜 갈까?’ ‘가긴 가야지’ ‘이 사람이 안 말리겠어?’ 이런 식으로 상황을 가정하고 상상해 나가면서 단계를 거치면 완성이 돼요 애드리브도 금방 결정되는 게 아니에요. 고민들을 서로 많이 해서 이뤄지는 거죠. 순간 웃겨서 내는 것이 아니고, 수도 없이 계속 싸매면서 고민해요. 물론, 순간 생각나서 하는 것도 있긴 해요. 하지만 애드리브도 약속과 매너가 필요하거든요. 미리 감독님께 여쭤보고 결정해요. 더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한 과정이에요. 머리로 기억하는 다른 배우 분들도 있는데, 저는 쫓아가지 못해서 다 적어놔요.”
많은 영화에서 조연으로 주인공들을 받쳐주던 그가 전면적으로 원톱으로 나서서 활약했던 ‘럭키’는 700만에 가까운 기록으로 그에게 큰 선물을 안겨주었다. 더불어, 영화계 속에서 주인공으로써의 그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여실히 보여주는 좋은 지표가 됐다. 예상치 못한 사랑으로 유해진은 마냥 행복해할 것 같지만 그는 도취에서 벗어나 ‘럭키’를 마음속에서 보내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솔직히 부담되죠. 예전보다 훨씬 더 커졌어요. 더 좋은 모습으로 더 좋은 영화를 보여드려야 하니까요. 그렇지만 또 거기에 눌려있어도 안되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럭키’도 이제 슬슬 머릿속에서 멀리 하고 다시 좋은 작품을 위해서 새롭게 출발하려고요. 코믹 캐릭터 이미지로 굳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긴 있어요. 두렵다기보다는 경계를 하죠. 그래서 작품 선정에 있어서 조금 더 신중해져요. 제 본 모습은 배우이기 때문에 작품이 크고 작음을 떠나서 더 다양한 색을 가져야하는 것 같아요.”
그에게 요즘 바라는 게 있냐고 묻자,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이 돌아왔다. 보통,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계획한 목표 혹은 변화하고자 하는 모습을 대답한다. 하지만 유해진의 답은 ‘신났으면 좋겠다.’로, 간결하고 단순했다. 그것을 말하는 표정과 몸짓에서 얼마나 진실 되게 그것을 원하는 지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그냥 정말 어렸을 때처럼 신났으면 좋겠어요. 다운됐다거나 그렇지는 않은데 자꾸 그냥 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요즘 주변을 보면 다 신나지 않는 것 같아 보여요. 매번 어두워요. ‘신나다’라는 말이 싱그럽고 새롭지 않나요? 새해 문자를 주고받을 때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보다 ‘신나게 보내’라는 말이 간결하고 너무 좋더라고요. 제가 잊었던 게 이런 건가? 싶었어요. 요 근래에 정말 신나는 일이 없네요. 공조를 보고 잠깐이라도 관객들이 신나면 좋겠다. 나와서 신라면도 드시고.(웃음)”
그에게는 여행이 일탈이고, 가장 행복한 순간은 겨울이(반려견)와 산책을 하고 산을 달릴 때다. 사람 자체가 꾸밈이 없고, 과장스럽지 않다. 인터뷰가 진행되는 짧은 시간 동안 보여준 소탈한 웃음과 자연스러움은 그를 처음 만난 사람도 마음의 벽을 허물게 하기에 충분했다. 대화를 하고 있자면, 이야기가 연기와 일상을 명확한 경계 없이 넘나든다. 그가 삶에서 추구하는 가치가 곧, 연기 인생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극중 장영남이 말하는 대로 유해진은 ‘치명적’이다.
“자연스러운 걸 쫓아가고 큰 그릇이 될 수 있는 넉넉한 사람이 되려고 하는데 잘 안되네요. 대중 분들이 저를 생각하시면 어떤 수식 없이 딱 ‘배우’라고 떠올리시면 좋겠어요. ‘그 사람? 배우잖아’ 이렇게요. 쉽지는 않은 것 같아요. 솔직히 대중 분들은 ‘걔가 무슨 배우야?’라고 할 수도 있잖아요. 저는 그건 싫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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