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일자리 맹목 프레임에서 벗어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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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졸수(卒壽)에 이른 가친(家親)께서 동맥경화로 크게 고생하셨다. 발가락에 생긴 염증이 발단이었다. 동네 병원에서 몇 개월을 치료해도 낫지 않았다. 급기야 까맣게 썩는 괴사가 진행되기 시작했다. 동네 병원에서는 절단까지 언급했다.

부랴부랴 큰 대학병원을 찾았다. 상태를 본 의사는 이런저런 검사를 하더니 곧바로 수술 일정을 잡았다. 혈전이 다리 혈관을 막고 있어 피가 통하지 않으니 혈관에 스텐스를 시술해야 한다는 진단이었다.

상태는 심각했다. 시술 후 혈관에 막고 있던 혈전이 다른 혈관을 막을 가능성이 있었다. 자칫 심장 혈관을 막으면 심근경색을 일으킨다. 스텐스 시술은 심장 혈관부터 시작해야 했다. 다리 스텐스는 그다음이었다.

다리에 스텐스를 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발가락까지 피가 돌면서 따뜻해지자 염증은 자연 치유됐다. 괴사도 사라졌다.

중소·벤처기업들이 경영이 어렵다고 토로한다. 시중에 돈이 돌지 않아 사업을 지속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현상 유지만 해도 잘하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일상화됐다. 경제가 되살아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한국은행은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2.5%로 하향 조정했다. 실업자도 계속 늘고 있다. 통계청은 최근 실업자가 100만명을 넘어섰다고 발표했다. 특히 청년 실업률은 10%에 육박한다. 국제노동기구(ILO) 기준에 따른 체감실업률은 무려 22%에 이른다. 청년 5명 가운데 1명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원인이 뭘까. 국내 상장 기업 사내유보금이 832조원(2015년 기준)에 이른다는 전국경제인연합회 자료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이 가운데 30대 그룹 사내 유보금은 약 760조원, 10대 기업 사내 유보금은 550조원을 넘어선다고 한다. 정치 불확실성이 장기화되면서 대기업들이 투자를 꺼리고 있는 것이다.

돈이 제대로 돌지 않으면 국가 경제에 심각한 동맥경화 현상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 영향은 혈관의 말단에 해당하는 중소기업과 골목 상권에서부터 나타난다.

그런데 정부는 경제 살리기 처방으로 `일자리 창출`에 힘을 쏟고 있다. 창업 장려와 스타트업 지원에 집중했다. 전국 곳곳에 창업지원센터가 넘쳐날 정도로 들어섰다. 그러나 받아든 성적표는 `청년 체감실업률 20% 돌파`였다.

진단도 없이 엉뚱한 처방을 내린 결과다. 피가 통하지 않는 환부에는 아무리 강한 약을 투여해도 듣지 않는다. 피가 통하지 않아 전신에 괴사가 진행되고 있는데 염증이 생긴 곳에 연고만 바르고 있은 것이었다.

그럼에도 최근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주재로 열린 경제 현안 부처 회의의 주제는 여전히 `일자리 창출`이었다. 중소기업청도 올해 중소기업지원정책 예산의 85%를 스타트업에 집중한다. 그나마 중기청장이 성장 도약기에 있는 기업의 지원 비중을 30%까지 늘리기로 했다는 것은 다행한 소식이다.

일자리 창출은 민생과 직결된 중요 과제다. 일자리를 늘리는 것은 언제나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일자리는 정부가 나서서 만들어 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일자리는 피가 돌면 자연히 해결될 문제다. 산업 현장 곳곳에, 골목 상권 구석구석에 돈이 돌 수 있도록 스텐스 시술을 해야 한다. 시중에 자금이 돌고 기업하기 좋은 환경이 만들어지면 일자리는 늘기 마련이다. 이제는 일자리 창출 맹목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전=김순기기자 soonkkim@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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