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유지훈의 힙합읽기] ‘Gentleman’s Quality: 건배’-마이노스 인 뉴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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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정소정

힙합은 오로지 스웩만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사랑과 이별, 사회 부조리, 자기고백 등 무엇이라도 주제가 될 수 있죠. 여기에 스토리텔링 기법이 더해지면 힙합은 새로운 차원의 음악이 됩니다. 한 편의 소설 같은 이야기를 랩퍼의 목소리로 들어보는 건 어떠세요? [ON+힙합읽기]가 스토리텔링의 묘미를 전해드립니다.<편집자 주>

[엔터온뉴스 유지훈 기자] 수많은 뮤지션들이 지금도 서울로 상경해 자신만의 음악을 만들고 인정받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이 과정에서 마음이 맞는 음악 동료를 만들고, 함께 성장해나갑니다. 하지만 그 동료는 어느 순간 현실에 부딪혀 음악을 그만두기도 하죠. 홀로 작업실에 남은 A, 꿈을 접고 현실로 돌아온 B. 두 사람이 오랜만에 술자리에서 만난다면 어떤 이야기가 오갈까요? 그 술자리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젠틀맨스 퀄리티(Gentleman’s Quality): 건배’(이하 ‘건배’)는 2010년 1월 발매된 마이노스와 뉴올리언스의 프로젝트 앨범인 ‘휴머노이드/힙노티카(Humanoid/Hypnotica)’의 열여덟 번째 트랙입니다. 이 앨범은 최근 대중으로부터 크게 주목을 받은 바 있습니다. 바로 마이노스가 JTBC 예능프로그램 ‘힙합의 민족’에서 선보였던 ‘랩인간형 파트2(RAP人間形 PT.2)’가 수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마이노스를 오랫동안 사랑했던 팬은 ‘랩인간형’이 아닌, ‘건배’에 더 큰 애착을 가질 것입니다.

‘건배’는 설명이 필요한 노래입니다. 마이노스는 중학교 친구인 메카와 함께 1999년 바이러스(Virus)라는 팀을 결성해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대구 클럽을 전전하던 두 사람은 힙합 레이블인 신의의지와 계약을 맺고 주 무대를 서울로 옮겼습니다. 당시 언더그라운드에는 철학적인 내용의 가사가 주류를 이뤘지만, 두 사람은 편하게 들을 수 있는 스토리텔링 랩을 주 무기로 내세웠고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2006년 두 사람의 군복무 문제가 맞물리며 활동을 중단했고, 결국 바이러스는 해체했습니다. 이후 마이노스는 독자적 활동을, 메카는 “자리를 잡은 후 다시 음악을 하겠다”는 말과 함께 힙합신을 떠납니다. 그리고 4년이 지난 후 ‘건배’라는 노래로 가상의 술자리를 만들어, 그동안 꺼내지 못했던 바이러스의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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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노스는 오랜만의 메카와 술자리에 기분이 좋은 듯 “코가 삐뚤어지도록” 마시자고 말합니다. 그리고 추억을 하나씩 꺼냅니다. ‘팔돈 미?’는 바이러스의 처음이자 마지막 앨범 제목입니다. 대구 출생인 두 사람은 따뜻한 이야기를 선보이면서도 ‘대구 남자’라는 마초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밑잔’을 까는 메카에게 이를 언급하며 ‘원샷’을 강요하는 모습, 어딘지 모르게 친근합니다.

대구 남자인 두 사람은 감정표현에 서툽니다. 마이노스는 메카가 진지한 이야기를 꺼내려고 하자 “못한 얘기 다 아니까 담아둬”라고 말하죠. 메카가 떠난 빈자리를 자신이 참여한 노래에 “바이러스”라고 외치는 것으로 대신하겠다고 다짐합니다. 실제로 마이노스가 참여한 노래에서는 ‘바이러스’라는 팀명을 심심찮게 들을 수 있습니다. 음악밖에 모르고 살았던 마이노스이기에 메카와 함께했던 바이러스라는 팀에 대한 애착은 남다르겠죠?

지금의 마이노스는 산이, 버벌진트 등이 소속된 유명 힙합 레이블 브랜뉴뮤직에 몸을 담고 있습니다 있습니다. 이 노래 발매 당시 마이노스는 실력은 인정 받았지만, 든든한 지원군이 없는 언더그라운드 래퍼였을 뿐이죠. 때문에 그의 눈으로 바라본 메카는 조금은 다른 모습이었을 겁니다. 안정적인 직장을 가진, 현실로 돌아간 메카를 뿌듯해합니다. “기특하고 멋져 보이기도 하다”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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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웠던 추억 공유도 잠시, 마이노스는 이제부터 씁쓸한 과거를 회상합니다. 메카는 마이노스와 헤어지며 “랩을 그만 두고 싶어서 그만 둔 건 아니란 거 알잖아”라는 말을 뱉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가장 든든한 친구를 잃어버린 마이노스는 ‘이젠 혼자’라는 생각에 사로잡혔습니다.

이제 마이노스는 메카의 입장을 이해합니다. 메카 역시 청춘을 바친 힙합에 등 돌리긴 쉽지 않았을 겁니다. 그리고 이 슬픈 노래를 ‘축가’라고 표현합니다. 2차로 향하며 마이노스는 허물없이 메카에게 애정을 보입니다. 2차 술자리를 계산하라는 메카에게 “나한테 덮어씌우려고”라며 투덜거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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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카의 벌스는 구수한 사투리의 향연입니다. 메카는 두 번째 술자리를 권유하고 단골 포장마차로 향합니다. 어엿한 사회인이 된 메카였기에 자신이 한턱 쏜다며 으스대죠. 바이러스 시절 두 사람은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노래로 만들곤 했습니다. ‘나도 여자를 업어 본 적이 있죠’에서 마이노스는 홀로 자신을 키운 어머니와 함께 포장마차에 갔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건배’에 등장하는 포장마차는 마치 그 노래의 은유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근황 토크를 시작합니다. 노래에 등장하는 봉갑이 기석이는 이센스와 싸이먼도미닉을 말하는 겁니다. 발매 당시 두 사람은 슈프림팀으로 큰 인기를 누리고 있었거든요. 비슷한 시기에 음악을 시작했던 마이노스는 대중적으로는 유명하지 않았죠. 메카는 이를 비교하며 “좀 잘해라”라고 애정 어린 조언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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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카는 마이노스에게 음악을 그만 둔 이유에 대해 다시 한 번 말합니다. 그는 뮤지션으로서의 성공이 텔레비전에 나오는 가수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는 커다란 무게로 다가왔을 겁니다. 대중의 관심을 받는 것은 힘들뿐더러 성공한 후 인기를 유지하는 것 역시 어려운 일입니다. 메카는 뮤지션으로서의 메카가 아닌, 평범한 사람으로서의 메카로 살아가는 것을 택합니다.

“이해해줘”라는 말과 함께 두 사람은 술자리를 정리합니다. 예전이라면 함께 작업실로 갔겠지만 메카는 출근 준비를 위해 집으로 향하죠. 벌써 자리를 끝내는 게 아쉬운지 메카는 함께 담배를 피우자고 말합니다. 그리고 담배가 다 떨어진 마이노스에게 “내가 한 갑 사줄게”라며 웃습니다. 마이노스의 웃음소리도 작게나마 들려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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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배’라는 노래를 끝으로 바이러스가 한 노래에서 뭉친 적은 없습니다. 대신 각자의 길을 걸으며 서로를 응원합니다. 마이노스는 여전히 메카에 대해 “음악을 하고 있다. 띄엄띄엄 할 뿐”이라며 그의 컴백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습니다. 팬들은 두 사람이 함께 무대에 서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메카와 마이노스가 마이크를 들고 “친구야 네 앞길에 건배”라고 외치는 순간을 말이죠.

전자신문 엔터온뉴스 유지훈 기자 tissue@enter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