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과이는 우리와 반대편에 있는 먼 나라다. 세계를 들썩거릴 정도의 큰 이슈가 없다 보니 언론에서 파라과이가 거론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런데 짝사랑하는 여인이 어느 날 갑자기 파라과이로 이민을 갔다고 해 보자. 그는 그녀에게 마음을 전할 기회조차 잡지 못했다. 그 후부터 파라과이는 그에게 평범한 나라가 아니었다. 자기가 사랑하는 그녀가 살고 있는 특별한 나라가 파라과이였다. 파라과이에 리히터 규모 7.4의 지진이 났다는 뉴스가 나오면 그녀가 안전한지 걱정됐고, 파라과이가 TV 화면에 나오는 날에는 혹시 그녀를 볼 수 있을까 싶어 화면 구석구석을 살폈다. 그녀에 대한 특별한 관심이 파라과이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 논리는 정치에도 얼마든지 적용될 수 있다. 예를 들어 A라는 사람이 B라는 정치인에게 10만원을 투자한다고 해 보자. 물론 A와 B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그럼에도 A가 B에게 후원금을 보낸 것은 B가 발의한 정책이 평소 A가 관심 있게 지켜보던 분야의 해결책을 제시했기 때문이었다. 일단 돈을 내고 나니 A에게 B는 특별한 정치인이 된다. 당연히 A는 B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기울인다. B가 자신의 기대에 어긋나게 행동하면 괜히 돈을 냈다 싶다가도 기대를 충족시켜 주면 자신이 그의 후원자라는 게 뿌듯해진다.
A는 이전까지 정치인을 욕하기만 했지 한 번도 좋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정치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졌다. 선거 날 투표소에 가 본 적도 오래 전이다. 그러나 이제는 결심한다. B가 혹시 선거에 나가면 무조건 그에게 투표하겠다고 마음에 새긴다. 우량 주식에 투자한 뒤 가격이 오르는 걸 보는 것처럼 괜찮은 정치인에게 투자하고, 그가 커 나가는 게 뿌듯하다. 그가 더 큰 정치인이 된다면 이 사회도 좀 더 살 만한 곳으로 바뀔지 모른다는 기대도 해 본다.
B는 자신이 이렇게 된 게 다 그 사람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3년 전의 일이었다. 선거는 다가오는데 돈은 없었다. 무소속이어서 정당의 지원을 바랄 수도 없었다. 그래도 B가 경쟁력이 있었기에 당에서는 다시 들어오라고 유혹했다. 그러기는 싫었다. 그때 평소 알고 지내던 기업가가 연락을 해 왔다. 고교 선배였다. 그는 아무런 조건 없이 돈을 후원하겠다고 했다. 한순간 마음이 흔들렸지만 겨우 거절했다.
왠지 그 돈을 받으면 그다음부터는 소신껏 정치를 할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 자신은 자동차 배기가스 규제를 해야 한다는 입장인데 그 선배는 Q라는 자동차 회사에 부품을 납품하는 회사를 운영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선거에 나가려면 최소한의 돈은 있어야 하는데 어쩌나?` 머리를 쥐어뜯을 무렵에 휴대폰 알람이 울렸다. 후원회 계좌로 `김○○정책나이스`라는 명의로 10만원이 입금됐다는 문자 메시지였다. 갑자기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많은 사람이 소액이지만 돈을 보내왔다. B는 그 돈으로 선거를 치르고, 결국 당선됐다.
그 뒤 B의 정치관은 변했다. 이전에는 당의 결정을 따르는 것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국민의 뜻을 반영하는 게 정치인의 할 일이라고 여긴다. 소신껏 일하다 보니 B의 팬클럽은 어느새 1만명이 넘었다. 그 안에서 정치에 대한 활발한 토론이 늘 벌어지고, 그 역시 틈나는 대로 거기에 참여한다. 물론 그를 비판하는 사람도 한둘이 아니지만 B는 그것 역시 자신에 대한 애정에서 나온 것임을 안다. 이제 B는 좀 더 큰 꿈을 꾼다. 그들이 바라는 세상을 만들어 주고 싶어서.
서민 단국대 기생충학과 교수bbbenj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