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현희 기자의 날]`경로 이탈` 대통령

“최순실씨는 과거 제가 어려움을 겪을 때 도와준 인연으로, 지난 대선 때 저의 선거운동이 국민들에게 어떻게 전달됐는지에 대해 개인적 의견이나 소감을 전달해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지난달 25일 박근혜 대통령은 `최순실 사태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처음으로 국민들 앞에 사과했다. 최 씨와 개인적 인연을 인정했고, 스스로 연설문 유출을 시인했다. 경로 이탈 1단계다.

2일 박 대통령은 야권의 거국내각 구성 요구를 일축하고, 일방적으로 신임 총리로 김병준 국민대 교수를 내정해 발표했다. 경로 이탈 2단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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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박근혜 대통령은 최순실 사태와 관련해 대국민 담화문을 읽고 있다.<청와대 제공>

“국가 경제와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바람에서 추진된 일이었는데 그 과정에서 특정 개인이 이권을 챙기고 여러 위법 행위까지 저질렀다고 하니 너무나 안타깝고 참담한 심정입니다.” 4일 또 한 번 대국민 사과에 나서 해명했다. 오직 나라를 위한 일이었다는 명분을 강조했고, 그 책임을 최 씨에게로 넘겼다. 체면 유지에 애썼다. 경로 이탈 3단계다.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총리에 좋은 분을 추천해 주신다면 그분을 총리로 임명해서 실질적으로 내각을 통할해 나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김병준 총리 지명을 철회하는 소동을 한바탕 겪은 뒤 박 대통령은 국회로 찾아갔다. 이 자리에서 경제의 어려움을 강조하며 국회가 나서달라고 했다. 국회로 넘겼다. 경로 이탈 4단계다.

11일 청와대는 박 대통령이 세월호 정국 당시 `7시간`이 새로운 뇌관으로 부상하자 “15차례나 보고 받으며 정상 업무를 했다”고 해명했다. 당시 비서실장도 모른다고 증언했던 것을 뒤집어 발표했다. 하지만 전화 보고 받은 것 외엔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세월호 사고 후 2년 반이 흘렀지만 연내 인양은 안 된다고 한다. 진상 규명에서 또 멀어진다. 경로 이탈 5단계다.

민심은 폭발했다. 지난 주말 주최 측 추산 100만명 이상이 거리로 나왔다. 대통령으로서 수차례 경로를 이탈한 것을 질타했고, 대한민국 국정을 파탄낸 데 대한 책임을 요구했다.

지금 대한민국호는 길을 잃었다. 100만 민심은 지금의 어긋난 경로에 동행하지 못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경로 수정`을 외쳤다.

대통령은 국민을 이기려고 해서도 안 되고, 이겨서도 안 된다. 국민이 원하는 길로 대한민국이 나아갈 수 있도록 경로를 바꿔야 한다. 그래야 더 갈 곳 없는 벼랑 끝 외길에서 시간 낭비했다는 비난이라도 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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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현희 청와대/정책 전문기자 sunghh@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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