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이 만난 생각의 리더]<77>“국정 공백 없어야”, 이각범 한국미래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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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각범 원장은 “냉철한 자세로 지금의 국가 대혼란을 극복하기 위해 국민이 지혜를 모야야 한다”고 말했다.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최순실 사태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이각범 한국미래연구원장(전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을 지난 3일 서울 여의도의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이 원장의 표정은 침통했다. 그는 서울대 교수를 거쳐 김영삼 정부에서 정책기획수석으로 국가 정보화를 총괄했고, 이명박 정부에서는 국가정보화전략위원장을 지냈다.

`새로운 한국을 위한 국민운동` 공동대표이기도 한 그는 이보다 앞선 1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시민사회 원로 70여명이 동참한 가운데 최순실 사태 관련 시국성명서를 발표했다.

이 원장은 “냉철한 자세로 지금의 대혼란을 극복하기 위해 국민이 지혜를 모아야 한다”면서 “우리가 이성과 감성의 공백을 채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원장은 “김 대통령은 `정보화에 대한 저항은 개혁에 대한 저항`이라며 정보화를 국정지표로 제시한 정보화 대통령”이라면서 “정보화는 세상을 바꾸는 일”이라고 역설했다.

-최순실 사태는 어떻게 극복해야 하나.

▲권력은 존재하지만 지배하지는 않는다. 이 사태와 관련한 모든 수사는 성역 없이 해야 한다. 또 최순실과 연계된 인사는 바로잡고 청와대 비서진뿐만 아니라 무소신·무능 장관은 교체해야 한다. 정부 개혁은 개헌까지 포함하고, 대통령은 국민의 뜻에 따라야 한다. 국민은 경제 위기와 안보 위기가 겹쳐 국정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대통령 하야 요구를 자제해야 한다. 여야는 합의해서 거국중립 내각에 국정을 맡기고 정쟁을 중단해야 한다.

-청와대 수석 시절에 대통령은 자주 만났는가.

▲청와대 정무수석이 11개월 동안 대통령과 독대 한 번 못했다고 하던데 상상도 못할 일이다. 이게 말이 되는가. 김영삼 정부 때 정무수석은 하루에 대통령을 몇 번 만났는지 셀 수 없을 정도였다. 경제수석만 해도 하루 평균 다섯 번 대통령과 독대했다. 환율, 금리, 주식 같은 현안이 있으면 대통령 집무실로 올라갔다. 외교안보수석은 하루 평균 세 번, 정책기획수석인 나도 평균 이틀에 한 번 대통령을 만나 정보화 업무를 보고했다. 현안이 있으면 언제든지 대통령을 만났다. 청와대 수석들이 센 것은 대통령과 수시로 만나기 때문이다. 민정수석은 매주 대통령 주재 회의에서 20분 동안 모든 것을 보고했다. 사실 그대로 보고해서 “너무 심하지 않으냐”고 하자 김 대통령이 “오히려 그런 일 하는 게 민정수석 아니냐”며 민정수석 편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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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정부 당시 대통령 연설문은 어떻게 작성했나.

▲연두기자 회견문의 경우 정책기획수석실에서 초안을 잡아 공보수석한테 넘긴다. 공보수석실에서는 내용을 수정하고 대통령 앞에서 독회(讀會)를 했다. 김 대통령은 구어체를 선호했다. 초안을 길게 잡았더니 문장을 짧게 수정했다. 국민과의 소통 수단은 `말`이다. 김 대통령은 국민이 이해하기 쉽도록 가장 정확한 단어 구사에 고심을 많이 했다.

-정보화시대 대통령의 조건은.

▲국민에게 비전을 제시하고 청렴해야 한다. 모든 일은 투명하게 처리해야 한다. 적재적소에 인사(人事)를 해야 한다. 인사는 만사다. 박근혜 정부의 인사를 보고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을 했다. 김 대통령은 인재(人才) 욕심이 컸다. 노무현·이명박 전 대통령과 김문수·손학규씨 등은 김 대통령이 발탁한 인물이다.

-청와대 정책수석으로는 어떻게 발탁됐는가.

▲김 대통령과는 인연이 전혀 없었다. 서울대 교수 시절 호헌 반대 교수 선언에 앞장섰다. 그 후 학생운동을 하던 선배의 추천으로 민주화추진협의회 의장실에서 처음 만났다. 첫말이 “반드시 민주화한다”였다. 그러고선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정책 준비가 안됐다. 도와 달라”고 했다. 그래서 대통령 후보 시절에 정책 조언을 했다. 문민정부 출범 이후 나는 미국 조지워싱턴대에 교환교수로 가 있었다. 두 번이나 정책기획수석 제안이 왔는데 거절했다. 김 대통령이 전화로 “정책을 제안해 놓고 그 일 하라는데 왜 안 오느냐. 비겁하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비겁한 사람은 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서 귀국해 정책기획수석으로 일했다.

-공직자의 자세는.

▲공직자는 소신이 있어야 한다. 국민을 보고 공직을 수행해야지 대통령만 쳐다보면 안 된다. 장관의 힘은 인사권에서 나온다. 인사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장관은 물러나야 한다. 서상목 당시 보건복지부장관은 대통령이 임명하는 대한적십자사 총재까지 인사권을 행사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정보화를 국정지표로 제시한 첫 대통령이다.

▲정보화는 세상을 바꾸는 일이다. 김 대통령은 체신부를 정보통신부로 확대 개편한 `정보화` 대통령이다. 한국이 정보통신기술(ICT) 강국, 인터넷 강국이 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초고속 정보통신망 구축과 세계 최초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상용화, 정보화촉진기본법 제정 등 정보화에 큰 업적을 남겼다. 김 대통령은 `정보화에 대한 저항은 개혁에 대한 저항`이라며 정보화를 적극 추진했다.

-어떻게 정보화를 국정지표로 제시했나.

▲김 대통령이 1996년 2월 싱가포르를 국빈 방문했다. 당시 싱가포르 항만청과 도시재개발청 두 곳을 시찰할 것을 건의했다. 항만은 정보화의 힘을 보여 줬다. 소프트웨어(SW)로 이룩한 항만 정보화를 통해 화물을 별도의 검사 없이 하역했다. 정보화의 위력을 봤다. 개발청 시찰은 계획도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개발청에는 대통령이 가지 않았다. 정보화 현장을 본 김 대통령은 국가 개혁을 위해 세계화, 정보화를 국정지표로 제시했다. 김 대통령은 결단하면 즉시 실행했다. 김 대통령은 “정보화는 정책기획수석이 전담하라”고 지시했다. “청와대에 정보화기획단을 설치하겠다”고 했더니 이석채 당시 정보통신부 장관이 “정보화 기획을 청와대에서 하면 정통부는 과거 체신부가 된다”고 해서 논쟁이 벌어졌다. 이 문제를 놓고 과학기술정책자문회의 소위원회(위원장 양승택)에서 논의한 결과 “부처는 계속 존속하지만 청와대 기획단은 수석이 그만두면 우선순위가 바뀐다”며 정통부에 정보화기획실을 설치하기로 정리했다. 그 대신 정책기획수석실에 정보화 담당 비서관을 신설했다.

-종이 없는 회의를 처음 개최했다.

▲내가 제안한 제1차 정보화추진확대보고회의를 국정 사상 최초로 종이 없는 회의로 열었다. 김 대통령은 새로운 기술은 늘 적극 수용했다. 금융실명제 실시와 공직자 재산 공개 등을 시행한 김 대통령은 개혁이라고 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났다. 종이 없는 회의는 종이 값을 아끼려고 한 게 아니다. 네트워크를 통해 일할 수 있다는 점을 알려 주기 위해서였다. 전자정부도 이때 시작했다. 전자정부는 행정시스템을 새로운 시대에 맞춰 바꾸자는 것이었다. 일하는 형태를 바꾸자는 것이다. 시범사업으로 조달과 관세정보화에 착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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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도시계획은 어떻게 됐나.

▲이 계획은 마구잡이개발을 막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추진하지 못했다. 대통령에게 처음에는 1시간 10분 동안 설득했고, 그다음에 1시간을 보고했다. 대통령은 먼 곳만 쳐다봤다. 나중에 김 대통령이 “이 수석이 다양한 정책 어젠다를 의욕적으로 추진하려는데 사유재산권 행사를 못하게 하면 살아남지 못한다”면서 “이 수석을 보호하기 위해 그랬는데 내 의도를 몰라 준다”고 했다고 한다. 이 계획에 따라 서울 청계천 복원과 여의도공원 조성 사업을 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정통부가 해체됐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인수위를 세 번 찾아가서 정통부를 없애면 절대 안 된다고 이야기했다. 인수위원장과 부위원장, 당시 박재완 인수위 팀장을 만났다. 최종 결정은 이 대통령이 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정보화전략위원장으로 일했다.

▲2009년 12월 위원장 위촉을 받았다. 당시 해당 부처에서 몇 번 다른 사람을 위원장으로 추천했는데 이 대통령이 반려했다고 한다. 이 대통령이 위촉장을 주면서 “정통부를 없애고 보니 정보화 총괄 기구가 없어서 전략적 정책 추진이 어렵다. 위원회가 정보화를 총괄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위원회는 예산이나 검사권, 인사권이 없어서 어려움이 많았다. 정보화 패러다임을 바꾸기 위해 스마트워크, 스마트교육, 스마트의료, 빅데이터 등을 적극 추진했다. ICT 인프라를 활용, 시간과 장소에 얽매이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일하는 체제가 스마트워크다. 스마트교육은 스마트교실과 디지털교과서를 만들어서 교육 클라우드를 통해 학생들의 적성과 희망에 따라 필요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시스템이다. 2012년 5월 경북 경주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교육정상화 회의의 주제가 스마트교육이었다. 빅데이터를 재난, 재해, 구제역 예방 등에 활용하면 국가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ICT 추진 체계에 대한 입장은.

▲이제는 4차 산업혁명 시대다. 앞으로 정부 조직을 협치가 가능한 방향으로 개편해야 한다. 창조경제 정책을 추진하면서 지금처럼 예산권이 없으면 미래창조과학부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ICT와 과학기술을 결합한 새로운 지식 산업을 창출해야 한다.

-좌우명과 취미는.

▲`나는 무엇인가`가 좌우명이다. 늘 그런 생각을 한다. 취미는 고전음악 감상과 참선이다. 2011년부터 주말이면 아내와 선원에서 참선을 한다.

이각범 원장은 경기고와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빌레펠트대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교수를 거쳐 김영삼 정부에서 청와대 정책기획수석과 이명박 정부에서 국가정보화전략위원장으로 일했다. 현재 한국미래연구원장과 KAIST 명예교수, 사단법인 한미관계21포럼회장, 새로운 한국을 위한 국민운동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저서로 `퓨처 코드`(공저), `2030년, 미래전략을 말한다`(공저), `하이트렌드`(공저) 등이 있다.


이현덕기자 hd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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