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View | 방송] 요즘 드라마가 ‘불륜·바람·양다리’를 다루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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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SBS 제공

[엔터온뉴스 이소희 기자] 드라마계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막장’이라고 쉬쉬하며 부정적인 소재로 취급 받던 소재들이 최근 브라운관을 거침없이 휘젓고 다닌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막장 드라마들은 시청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굳이 필요하지 않은 혹은 현실성 없는 요소들을 곳곳에 배치한다. 하지만 요즘의 드라마들은 오히려 불륜, 바람, 양다리 등을 중심으로 현실적인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소재를 다루는 방식 또한 달라졌다. 이전의 작품들은 단순히 자극적인 장면을 만들려고 막장요소를 ‘사용’했다면, 최근 작품들은 삶의 메시지를 던지기 위해, 감정을 좀 더 세밀하게 묘사하고 다양한 관계를 보여주기 위해 막장요소를 ‘활용’한다.

◇ 양다리 연애는 ‘질투’ 부르고

SBS 수목드라마 ‘질투의 화신’ 속 표나리(공효진 분)의 양다리 연애는 주인공들이 사랑을 깨달으며 느끼는 다양한 감정을 보여주는 돋보기 역할을 한다.

극중 나리는 이화신(조정석 분)을 3년간 짝사랑하다 마음을 접었고, 화신이 소개해준 고정원(고경표 분)과 만남을 시작했다. 화신은 나리가 정원과 사귀자 자신도 몰랐던 마음을 깨닫는다. 화신에게는 나리를 향한 사랑을 뒤늦게 알아차린 후회와 답답함, 친구의 애인이라는 죄책감, 그러면서도 분노와 슬픔과 애틋함이 공존한다.

나리는 자기 입으로 사랑을 받고, 하는 법을 모른다고 할 정도로 ‘사랑’이라는 감정에 미숙한 어른이다. 오랜 짝사랑에 실패했고, 막상 연애를 시작했더니 편안하지가 않다. 이런 여자 주인공이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 사랑해주는 사람의 마음을 한몸에 받으니 혼란스러운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나리의 마음은 왔다갔다 저울질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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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KBS 제공

이처럼 ‘질투의 화신’은 ‘질투’라는 원초적인 감정을 가장 효과적으로 드러낼 방법으로 삼각관계라는 장치를 마련했다. 양다리 연애의 전후 과정을 보여주며 사람과 사람 관계를 중점적으로 그려냈고, 그 속에서 변화하는 감정에 집중했다.

◇ ‘공항 가는 길’, 불륜 미화?...위로·공감 스토리

불륜을 다루고 있는 KBS2 수목드라마 ‘공항 가는 길’은 방영 전부터 설전이 벌어졌던 작품이다. 지난해 간통법이 폐지됐지만, 여전히 대다수의 대중들의 인식은 불륜은 불법이자 일어날 수 없는 사태다. 그래서 사람들은 ‘공항 가는 길’이 불륜을 미화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했다.

극중 최수아(김하늘 분)와 서도우(이상윤 분)는 각각 결혼해 삶을 살고 있지만, 배우자와 정신적으로, 감정적으로 잘 맞지 않아 힘들어 한다. 이들은 계속된 우연으로 마주치며 결국 서로에게 마음을 기대게 된다. 두 사람은 말하지 않아도 공감했고, 위로가 필요할 때 운명처럼 다가가 서로의 마음을 어루만져줬다.

작품은 회차가 거듭될수록 시청자들이 유대감, 공감, 위로, 배려 등 따뜻한 감정과 감수성에 몰입하게 만든다. 김철규 PD는 드라마 제작발표회 당시 “요즘의 모호한 관계들을 섬세하고 감성적으로 표현해보고자 했다”며 불륜 여부를 따지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고 했다.

애매한 사이에 대한 시선은 극중에서도 계속 드러난다. 수아는 계속해서 도우에게 ‘우리는 무슨 관계냐’ ‘이제 뭘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으며 불안해한다. 도우는 그런 수아에게 자신의 진심과 애잔한 마음에 대한 확신을 보여주고, 그제야 수아는 관계를 받아들인다.

‘공항 가는 길’은 주인공들의 관계에 ‘불륜’이라는 정의를 내리는 대신, ‘인생의 두 번째 사춘기를 겪는 어른들의 진정한 사랑’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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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JTBC 제공

◇ 결국 모두 관계의 고찰...‘이아바’도 합류

‘공항 가는 길’ 김철규 PD가 작품 속 불륜을 골치 아프게 생각하지 않았듯, 종합편성채널 JTBC 금토드라마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이하 ‘이아바’)의 김석윤 PD 또한 같은 생각이다.

‘이아바’는 슈퍼워킹맘 아내(송지효 분)의 바람을 안 애처가 남편(이선균 분)과 익명 댓글러들의 부부갱생프로젝트를 다루는 코미디다. 이선균-송지효를 비롯한 세 커플의 이야기를 통해 다양한 관계를 보여준다.

제작발표회 당시, 김석윤 PD는 대체 어디까지가 불륜의 기준인지 의문점을 제시했다. 연락만 해도 불륜인지, 손을 잡고 데이트를 하면 불륜인지 등 관계에 대한 폭이 넓다고 짚었다. 오히려 김석윤 PD는 “‘부부사이는 언제든 실수를 할 수 있는, 잠재적으로 위험한 사이가 아닐까?‘하는 의문점에 집중했다”고 제작의도를 밝혔다.

‘이아바’는 ‘익숙한 것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자’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다. 8년차 부부를 주인공으로 삼은 것도, ‘안심’은 오히려 인간의 가장 가까운 적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코믹한 연기와 유쾌한 톤 앤 매너로 극이 분위기를 조성해, ‘아내의 바람’이 너무 무겁게 느껴지지 않도록 그리고 관계에 공감하고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했다.

결국엔 모두 ‘관계’의 문제다. 주변 환경들이 변화하고 사람 간 거리와 기준이 복잡 미묘해지면서, 정의할 수 없는 관계들이 늘어나고 있는 시대다. 드라마들도 이에 맞춰 관계에 대해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며 다시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고자 하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전자신문 엔터온뉴스 이소희 기자 lshsh324@entero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