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칩은 비록 실패했지만 값진 경험이었습니다.”
알파칩 개발에 참여한 한 인사의 회고다. 삼성전자는 1997년 시스템LSI사업부를 발족한 직후 컴퓨터용 마이크로프로세서 시장에 뛰어들었다. 인텔과 동일 시장에서 경쟁, 성과를 내겠다는 포부였다.
그 당시 삼성전자는 미국 DEC와 기술 제휴를 맺었다. DEC는 인텔 펜티엄보다 성능이 우수한 알파칩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DEC는 설계 기술을 제공하고 삼성전자는 생산을 맡았다.
서광벽 상무를 팀장으로 마이크로프로세서 공정개발 태스크포스(TF)가 꾸려졌다. 이들은 각고의 노력 끝에 완벽하게 작동하는 시제품 생산에 성공했다. 세계 최고 속도인 488㎒ 작동 속도를 달성했다. 시스템LSI사업부는 칩 하나에 500달러를 받고 DEC에 공급하기 시작했다. 1㎓ 초고속 제품 양산도 성공했다. 세계 컴퓨터 업계가 삼성전자의 개발 성과에 관심을 내보였다.
그러나 곧 위기가 닥쳤다. 세계 최고속 칩을 만들었지만 시장은 도무지 커지지 않았다. 가장 큰 장애물은 운용체계(OS)였다. 알파칩은 마이크로소프트(MS) 윈도 OS를 지원하지 않았다. 삼성전자는 판로 개척을 목적으로 알파칩 판매를 위한 독립 법인 API를 미국에 세웠다. 그러나 윈도OS 없이 컴퓨터 생태계를 이끌어 나가기란 역부족이었다. DEC는 경영난에 허덕이다 결국 PC 업체 컴팩에 인수되고 말았다(컴팩은 다시 HP에 인수됐다). 이는 알파칩의 패배를 의미했다.
삼성전자도 API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었다. 여러 회사와 접촉한 끝에 2001년 AMD에 회사를 매각했다.
알파칩 프로젝트는 비록 실패로 끝이 났지만 고성능 마이크로프로세서 양산 경험은 시스템LSI사업부의 값진 자산으로 남았다. 이 자산으로 고성능 SoC 사업을 성공시킬 수 있게 된 것이다. OS 등 소프트웨어(SW) 지원 생태계의 중요성을 잘 알게 된 것도 이 같은 실패 경험에서 비롯됐다.
한주엽 반도체 전문기자 powerus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