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계 "국가 R&D 계획세울 때부터 대학 기초연구 기능에 역할 부여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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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연구사업의 과제수와 비중

국내 연구개발(R&D) 정책의 전면적인 진단과 개편, 기초연구 지원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최근 `연구자 주도 기초연구 지원 확대를 위한 청원서`에는 총 1458명의 과학자가 참여했고, 이 청원서는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심사에 회부됐다. 기초연구비는 대학 현장 연구자들에게 가장 뜨거운 이슈다.

박기영 순천대 교수는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기초 연구의 위기, 해결책은 없는가?` 포럼에서 “국가 차원에서 연구관리 정책을 체계화해야 한다”며 “미래 예측에 근거해 국가 비전을 수립하고 연구개발 장기계획을 수립할 때부터 기초연구의 역할을 부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정부 기획의 주문형 연구사업(하향식)과 연구자 중심의 연구사업(상향식)의 적절한 배분에 있어 사회적인 합의를 얻는 과정이 필요하다”며 “현재 대학에 지원되는 정부 연구개발비는 프로젝트 기반이 많아 정부 주문형 연구개발 목표에 따라 방향이 움직이므로 대학이 우왕좌왕하는 경우가 많고, 대학의 기능이 정착하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개인 연구사업의 과제수와 비중을 살펴보면 정부가 지원하는 연구개발 과제 중 5000만원~1억 미만이 전체의 80%를 차지하고 있다. 2013년 기준 5000만원 미만 과제는 1만1000개에 달한다. 그러나 이마저도 대학에 간접비를 20% 정도 납부해야 한다. 연구보조원인 학생들 인건비 지급, 소모품 구입 등에 쓰면 남는 것이 없다는 주장이다. 문제는 연구과제가 끝나면 다음을 기약할 수 없다는 점이다.

박 교수는 “연구자 중심형 자유공모연구과제 절대규모를 늘리고, 정부 연구개발비 배분 방식에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에 참여한 신진 연구자들은 현장의 열악한 상황을 강조했다. 송지준 KAIST 생명과학 교수는 “신진 연구자들이 자기가 원하는 연구를 하는 게 아니라 연구비 확보를 위해 대형 기획과제 참여할 수밖에 없다”며 “큰 연구비를 따온 교수들은 젊은 연구자에게 하청을 주고, 이들은 하청받은 연구를 하며 내 연구를 그만둘 것이냐 고민에 봉착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하청받은 하향식 과제가 자신의 연구방향과 맞으면 좋지만, 그런 경우는 많지 않다”며 “결국 기초연구비 지원이 부족해 정부 기획 연구에 참여하게 되고 자신의 연구는 때를 놓치게 된다”고 덧붙였다.

오지원 경북의대 교수는 “의과학자의 자존심 때문에 연구하청을 할 생각이 없지만 1년 정도 연구비 부재가 지속되면 하청에 응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지금도 주변에서 이런 프로젝트로 연구비를 크게 받았는데 같이 해보는 게 어떠하냐는 솔깃한 제안을 받은 것만 서너개 된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하청을 하는 순간부터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는 분야에 대한 아이디어는 사장되거나, 내 연구비를 딸 수 있는 시점에 가서야 연구를 한다면 과연 세계적인 승부를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축사를 하려고 참석한 안철수 전 국민의당 공동대표는 “현재 여러 부처로 흩어진 연구비를 하나의 부처가 배분하고 관리하도록 해야 하는 정부 조직 개편을 해야한다”며 “혁명적인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송혜영기자 hybrid@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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