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특허 유무효를 따지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특허심판원 심결을 임의 절차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법원 관계자는 특허심판원을 반드시 거치도록 한 `특허심판 필수 전치주의` 폐지의 영향을 분석하는 연구용역을 발주했다고 밝혔다. 실제 특허심판원 단계가 임의절차로 바뀌면 심판원 역할이 약화되는 것은 물론, 관련 업무를 대리하는 특허업계에 미칠 영향도 클 것으로 예상된다. 특허청에도 반가운 소식은 아니다.
◇법원 `특허심판원 임의절차 전환` 검토
대법원이 지난주 `특허 등 산업재산권 행정심판 의무적 전치주의 개선`에 관한 연구용역을 발주한 것으로 확인됐다. 법원 관계자는 “이번 연구용역에서 특허심판원 단계를 임의절차로 바꿀 때 나타나는 장단점과 문제점 등을 종합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현행 행정소송법에 따르면 특허 유무효성을 따지거나, 특허등록을 거절한 특허청 결정이 적법한지 확인하려면 심판원 심결을 거친 뒤 심결취소소송을 특허법원에 제기해야 한다. 기술전문성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특허분쟁은 3심 재판에서 예외적으로 취급돼 법원은 항소심·상고심만 맡는다. 민사재판인 특허침해소송도 특허 유무효를 가리려면 사실상 심판원 심결을 기다려야 한다. 침해소송에서 활용하는 `무효의 항변`은 상대방과의 분쟁에만 제한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법조계 일각에서는 심판원을 반드시 거치는 현행 제도가 국민이 법관에 의해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한다고 주장해왔다. 이들은 “행정심판은 행정청 결정을 스스로 시정하는 배려 차원의 제도로 사법 기능은 아니”라며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를 보호하는 측면에서 행정심판 전치주의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난 8월 특허소송제도 개선 관련 공청회에서 한 판사는 “특허침해소송 접수 후 무효확인소송으로 반소 제기가 가능하도록 제도를 정비하면 `원스톱 분쟁 해결`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전문적이면서 신속하게 특허분쟁을 해결하고자 지난 1998년 도입한 특허심판원 심결 없이도 조속한 분쟁 해결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필수 전치주의가 폐지되면 심판원 단계는 임의절차로 바뀌고 법원이 행정처분취소소송 등을 접수하는 방안 등이 예상된다.
◇`일격` 당한 특허청
특허심판원 기능 약화가 포함된 연구용역 발주가 특허청에 반가운 소식은 아니다.
`행정심판 전치주의` 문제는 그간 법원 안팎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된 문제지만, 최근 특허청이 법원 단계의 심결취소소송에서는 새로운 증거 제출을 제한(제한설)해야 한다는 등 특허심판원 기능 강화를 추진해왔기 때문이다.
현재 특허청은 무효심판·소송에서 법원이 심판원에 제출되지 않은 증거를 받아 심리하면 심판원 심결의 위법성을 따지는 `심결취소소송`이 아니라 사실상 `새로운 사건`이 되기 때문에 법원 단계에서 새로운 증거 제출을 제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법원 소송에서 심판원 심결이 뒤집히면 분쟁이 장기화되고 자금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에 불리해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밝혀 왔다. 지난 2012년 특허법을 개정해 심판원에 모든 증거를 제출하도록 만든 미국처럼 법을 바꿔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 특허청은 기술전문성에서 특허심판원 심판관이 판사보다 낫기 때문에 심판원 역할 강화가 특허분쟁 해결에 도움이 된다고 본다.
특허청은 이 때문에 지난 5월과 9월 `무효심판·소송 제도 조화`라는 주제로 국제 콘퍼런스를 두 차례 개최하며 제한설 도입을 강하게 추진해왔다. 지난 8월에는 홍의락 무소속 의원 등과 특허소송 제도 개선 관련 공청회를 열기도 했다. 필수 전치주의가 폐지되면 특허청이 대법원 등과 불편한 관계를 감수하며 그간 들인 노력이 모두 수포로 돌아간다.
◇변리업계도 `희비`
특허심판 임의절차 전환 검토 소식에 시장에서도 희비가 갈렸다.
심판시장을 주도하는 변리사 업계는 일거리 감소를 우려하는 분위기다. 오규환 대한변리사회장은 “특허심판 전치주의 폐지는 변리사 업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법원은 특허심판 전치주의 유지와 폐지 중 무엇이 법률소비자에게 유리한지 판단해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대로 변호사 업계는 환영 입장이다. 김한규 서울지방변호사회장은 “특허심판원은 독립성과 공정성이 보장되지 않아 행정심판 전치주의를 강제하는 현행법 구조는 위헌 여지가 있다”며 “국민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는 차원에서도 폐지가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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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종 IP노믹스 기자 gjg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