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우의 성공경제]<46>선발주자 그들은 누구인가(4), 일본 도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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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레이는 탄소섬유 산업에서 세계 시장 점유율 40%로 1위 지위를 독보하고 있다. 이 회사는 현재 보잉과 BMW에 탄소섬유 관련 소재를 독점 공급하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선발 주자 위치에 올라서기 위해서는 40여년에 걸친 끈질긴 인내와 기다림이 필요했다.

도레이는 1926년 미쓰이물산 면화부서가 독립해 탄생했다. 도레이는 동양의 레이온이라는 뜻이다. 인류 최초의 화학섬유인 레이온은 1884년 특허로 등록되고 1910년 아메리칸 비스코스사에 의해 상용화됐다. 도레이는 후발 주자로서 나일론, 폴리에스테르, 아크릴 등 개발을 지속하며 일본 대표 기업으로 성장했다.

화학섬유 회사로서 도레이는 1970년대 들어와 전략상 중대한 전환기를 맞이한다. 후발 주자인 한국과 대만 업체들이 기존 시장에 무섭게 진입하자 주력 업종을 탄소섬유로 바꾼 것이다. 하지만 당시 서구 기업들도 탄소섬유에 진출했지만 2~3년 안에 모두 철수했다. 변변한 시장 수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도레이는 이후 30년 동안 적자를 보면서도 끈기 있게 연구개발(R&D)에 투자, 드디어 2011년 보잉사 납품에 이르렀다. 개발로부터 무려 40년이 걸린 셈이다.

무엇이 이러한 인내와 끈기를 가능하게 한 것일까. 첫째는 명확한 전략 선택이다. 위기는 종종 전략 전환을 요구하며 새로운 선택의 기회를 준다. 도레이는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택했다. 위기 순간에 시류(時流)에 영합하는 판단보다는 핵심 기술에 집중하고, 사업 내용을 미래에 맞게 고도화한 것이다. 예를 들면 `주요 수입원이 될 것이냐`보다는 `세상에 필요한 소재인가`를 먼저 고려했다.

둘째 생존 라인을 확보했다. 탄소섬유 상용화를 1971년부터 시작했지만 항공기 소재를 납품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경제 상황 공백을 메꿀 전략이 필요했다. 도레이는 탄소섬유를 낚싯대, 골프클럽, 테니스 라켓 같이 신소재를 받아들이기 쉬운 스포츠용품부터 시작했다. 혼마 골프채에도 적용했지만 유니클로의 히트텍과 같은 의류용 신소재에도 응용했다. 진입하기 쉬운 부문에 들어가 수익을 올리면서 기술을 갈고 닦은 것이다.

셋째 일본 특유의 장인 정신으로 오랜 기간 R&D에 투자, 핵심 기술을 축적했다. 도레이는 경기 불황에도 R&D 투자를 줄이지 않는 회사로 유명하다. 그 결과 탄소섬유에서 50년 이상, 수처리막에서 40년 이상 축적된 기술을 갖추고 있다.

이와 같은 도레이의 전략 전환은 특유의 조직 문화와 경영 시스템이 뒷받침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첫째로는 기존 기술력의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극한 추구`의 기업 문화 지속이다. 이 회사는 창업 이후 모든 사업 분야에서 극한 추구를 진행해 왔다. 탄소섬유 개발 과정도 기술력의 한계를 뛰어넘겠다는 노력의 결과다. 둘째로는 기본과 현장 중시 경영이다. 시장의 요구에 휘둘리기보다는 기본을 충실히 다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재무제표에 나오는 숫자보다는 현장에서의 경험과 실제 상황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경영을 한다.

마지막으로 주목할 것은 전문경영인 체제 구축이다. 현재 최고경영자(CEO)인 사카키바라 사다유키 회장은 2002년 입사한 이래 35년 만에 CEO 자리에 오른 신화적 인물이다. 그는 CEO로 재직한 10여년 동안 탄소섬유 등 고부가가치 상품의 세계 시장 공략에 전력을 다했다. 그 결과 영업이익은 5배 증가했다. 특히 그는 1999년 글로벌 생산 거점인 도레이첨단소재의 한국 설립을 주도하기도 했다.

이장우 경북대 교수·전자부품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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