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발전과 소비자 요구가 전력 시장 민간 참여를 촉발시킬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굳이 정책과 제도상으로 전력 시장을 바꾸려 하지 않아도 신재생에너지, 에너지저장장치(ESS), 전기자동차와 같은 에너지 신산업과 에너지프로슈머 등장으로 전력 시장 변화를 이끌고 있다는 분석이다. 올해 정부가 에너지 공기업 개편과 관련해 `민간 참여` 의사를 밝힌 가운데 나온 국내외 석학들의 전망이어서 의미가 남다르다.
전력거래소는 27일 서울 리츠칼튼호텔에서 `2016 서울국제전력시장 콘퍼런스(SICEM 2016)`를 개최했다. 이날 행사는 산업통상자원부, 전력그룹사, 국내외 전력 산·학·연 전문가 2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에너지신산업 활성화를 위한 전력시장의 발전방향`을 주제로 향후 시장 변화를 예측하는 자리였다. 올해 12회째를 맞는 SICEM은 그동안 전력 시장 구조 개편, 정전 대응, 전력 시장 거래 방안, 에너지믹스, 전기요금 등 국내 전력 시장의 핵심 사안에 대한 해법을 제시해 왔다.
유상희 전력거래소 이사장은 “신기후 체제에 대응해 전력 시장이 나아가야 할 방향 설정을 위해 콘퍼런스를 개최하게 됐다”면서 “에너지 수요 증가를 환경 친화형으로 대응하기 위한 전력 시장 역할을 논의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논의의 핵심은 전력 시장에서 달라진 소비자 위상이었다. 패널들은 한목소리로 지난날 전기를 소비만 하다가 이제 생산에까지 참여하고 있는 에너지프로슈머 등장을 중요하게 언급했다. 정보기술(IT) 분야에서 `집단지성`이 변화 물결을 몰고 왔다면 에너지 분야에선 `집단전기`가 전력 시장의 롱테일 문화를 이끄는 셈이다
에너지프로슈머 시장 역시 일시 현상이 아닌 계속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김희집 에너지신산업추진협의회 민간위원장은 국제유가와 가스가격이 저가 기조를 보이는 상황에서도 신재생에너지 시장이 계속 성장하고 있는 현상에 주목했다. 브루스 해밀턴 미국 에너지환경 컨설팅 ADICA 사장은 해외 신재생에너지 시장 확대와 전기 생산 단가가 석탄화력과 같아지는 그리드패리티 시기의 임박을 언급하며 에너지프로슈머 확대를 예상했다.
프로슈머 등장의 배경으로는 기술 발전을 꼽았다. 신재생에너지 가격 하락과 전통 에너지 산업의 통신 기술 융합, 디지털화와 자동화에 따른 에너지 효율 소비 요구 증대가 전기 소비자를 생산자로 나서게 했다는 분석이다. 이들의 영향력이 전기 판매 시장을 넘어 발전과 계통 운영에도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봤다. 대형 발전사업자에 의지해 온 전기 생산이 다수의 소규모 소비자도 가능해지면서 발전원과 계통의 분산, 이에 따른 전력 수급 부담 효과가 있을 것이란 설명이다. 프로슈머 간 전력 거래도 시장 초기에는 소비자와 소비자, 가구와 가구 규모에서 진행되지만 앞으로는 도시 간 거래도 가능해질 전망이다.
전통 에너지 기업과의 갈등도 예상됐다. 플레이어가 많아진 만큼 기존 시장 파이 쪼개기 현상이 발생할 것이란 관측이다. 대형 발전사업자와 계통운영사업자 수익은 점점 줄 것이고, 프로슈머와 이들을 컨설팅하는 수요관리사업자, 중개사업자들이 그 빈 공간을 채우는 셈이다. 이와 관련해 손성용 가천대 교수는 정책과 제도 역할을 언급했다. 프로슈머라는 새로운 시장이 열리면서 기존 전력 업계와 일부 충돌이 예상되는 만큼 정책과 제도가 이들 사이에 균형 있는 조율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시장을 바꿀 기술로는 전기차와 ESS가 거론됐다. 전기차와 ESS 보급이 전기를 쌀 때 저장하고 비쌀 때 파는 시간대별 차등 요금 정착을 가져오고, 시장 전체 수급 체계를 뒤바꾼다는 전망이다.
지금까지 전기차와 ESS에 대한 논의가 전기 저장과 방전을 이용한 비즈니스 모델을 얘기했다면 이제는 실제 이들이 전력망에 연동됐을 때 계통 안정성 및 호환성과 같은 기술 쟁점도 고려해야 할 시점이다. 전기차와 ESS가 전력사용량 급증 시 방전을 통해 수급 안정성에 기여하는 측면은 얘기가 많이 됐지만 평시 이들이 충전을 위해 전기를 소비하는 부분에 대한 논의는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패널들은 프로슈머, 전기차, ESS 확대를 위한 전제 조건으로 에너지기술과 정보통신기술(ICT)의 융합을 꼽았다. 지금도 스마트팩토리, 스마트빌딩 등에서 `에너지+융합`이 진행되고 있지만 일반 가정에까지 적용 사례가 더 넓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미래 가정은 지금 사용하고 있는 전기 기기에 더해 신재생에너지, 전기차, ESS, 스마트미터 등 다양한 에너지 기기가 도입되고 이들 기기 간 실시간 에너지 운영이 필요해진다. 에너지 운영시스템, 스마트 애플리케이션(앱), 에너지 포털과 같은 새로운 산업과 서비스의 등장도 기대되는 부분이다.
박종근 산업통상자원부 전기위원회 위원장은 “에너지 신산업은 신기술을 활용해 당면한 에너지 분야 주요 현안을 효과 높게 대응하는 21세기형 `문제 해결형 사업`”이라면서 “정부는 이러한 변화를 에너지 분야 미래로 보고 에너지 신산업 확산을 위한 정책을 다각도로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정형 에너지 전문기자 jeni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