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온뉴스 최민영 기자] 전도연은 전도연이었다. 제작발표회 당시 11년 만의 드라마 출연이라 걱정된다던 그의 말은 모두 엄살이었다.
전도연은 최근 종영한 tvN 금토드라마 ‘굿와이프’에서 여주인공 김혜경 역을 맡아 대한민국 대표 여배우다운 안정적인 연기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촬영기간 내내 힘들어서 도망치고 싶었다던 그는 막상 드라마가 끝나고 나니 시원섭섭한 마음을 털어놨다.
“김혜경이라는 인물로 굉장히 오래 살아온 것 같아서 여전히 전도연보다 김혜경이 익숙한 것 같아요. 시청자분들이 정말 좋아해주셨고, 극 중에서도 등장인물들에게 사랑을 많이 받았었죠. 드라마 끝나고 난 후 상실감이나 공허함이 큰 것 같아요.”
‘굿와이프’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신은 극 중에서 딸 서현(박시은 분)과 대화하는 장면이다. 전도연은 이 이야기를 하면서 여러 번 눈시울을 붉혔다.
“촬영할 때 서현이가 ‘엄마를 믿는다. 행복했으면 좋겠다’라는 대사를 하면서 울먹거렸어요. 왜 그런가 했더니 자기 엄마가 생각났다면서 ‘우리 엄마도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듣는데 저도 갑자기 눈물이 났어요. 대부분의 부모들은 아이를 위해 많은 희생을 하는데 그 신을 찍으면서 아이들도 어느 순간에는 부모가 행복하기를 바랄 거라고 느꼈어요.”
전도연은 극 중 까마득한 후배 나나와 남다른 호흡을 선보이며, 워맨스(여성끼리의 로맨스) 커플이라는 이야기까지 들었다. 나나는 연기 경험이 거의 없었지만 대선배 앞에서도 위축되지 않고 자연스러운 연기를 펼쳐 호평을 받았다. 전도연 또한 나나의 활약에 박수를 보냈다.
“나나는 원래 연기를 하던 친구가 아니었고, 방송 전에 그렇게 비난받을지 처음에는 전혀 상상도 못했어요. 오디션 할 때 처음 봤었는데 그 친구가 가진 에너지가 되게 좋았었고, 연기도 나쁘지 않았어요. 생각했던 것보다 모든 면에서 뛰어났던 친구였죠. 그리고 나나가 눈빛이 정말 좋아요. 극 중 김혜경도 중원(윤계상 분)에게 위로를 받은 게 아니라 진짜 위로는 김단(나나 분)에게 받았다고 생각해요. 촬영 현장에서도 나나가 연기를 너무 훌륭하게 소화해서 가끔씩 깜짝 놀랄 때도 있었어요. 나나 본인도 많이 괴로웠을 텐데 스스로가 대중의 편견과 선입견을 깼기 때문에 박수쳐주고 싶고 응원해주고 싶어요.”
드라마 촬영은 27년차 배우 전도연에게도 무척 힘든 일이었다. 타이트한 촬영 스케줄과 방대한 분량의 대사를 소화하기 위해 체력 관리에도 노력을 기울였다. 11년 만에 드라마에 출연한 전도연을 브라운관에서 다시 보려면 또 11년 이상을 기다려야 하는 건 아닐까.
“제가 16부까지 잘 버틸 수 있을지 걱정할 정도로 촬영이 힘들었어요. 약을 잘 챙겨먹는 스타일이 아닌데 남들이 좋다는 건 다 챙겨 먹었던 것 같아요. 어떻게라도 에너지를 얻고 싶어서 홍삼도 챙겨 먹어보고, 계상 씨가 비타민C를 줘서 먹어보기도 했었다. 나중에는 똑같이 힘든 것도 덜 힘들게 느껴지더라고요. 약기운 때문에 버티는 건지 체력적으로 적응이 된 건지 모르겠지만 뭐든 죽으라는 법은 없는 것 같아요. 드라마 제의가 또 들어오면 저는 우아하게 영화배우라고 말하면서 거절할 거라고 다짐했는데 드라마만의 중독성이 있는 것 같아요. 힘들다고 마냥 안 하기에는 드라마를 통해 제가 얻은 것도 굉장히 많았거든요. 당분간이 될지 언제가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드라마 출연 가능성은 항상 열어두고 있어요.”
미국 CBS 드라마 ‘굿와이프(The Good Wife)’를 리메이크한 ‘굿와이프’는 원작을 충실하게 반영하면서도 현지 정서를 한국적으로 풀기 위해 공을 많이 들였다. 전도연도 본인이 맡은 캐릭터를 한국 시청자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도록 원작을 참고하는 대신 대본에만 몰두했다.
“미국적인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한국적인 정서를 가지고 갔다는 점에서 외줄타기를 잘했어요. 제가 맡은 역할과 원작 여주인공 캐릭터가 많이 달라서 가능할지 걱정도 됐었죠. 저도 원작을 두 편 정도 보기는 했는데 정서적으로 많이 다르더라고요. 그래도 저는 대본대로 충실히 연기했을 뿐, 원작까지 생각해가면서 연기하지는 않았어요.”
오래전부터 톱 배우 위치를 지키고 있는 전도연이기에 굳이 힘들고 어려운 작품을 선택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좋은 작품이라는 판단이 그를 ‘굿와이프’ 촬영장으로 이끌었다.
“주변 사람들이 제가 ‘굿와이프’를 선택했던 결정에 많이 의아해했던 것 같아요. 제 매니저를 오래했던 분이 ‘너는 편하게 촬영하려면 충분히 편하게 할 수 있는데 오랜만에 하는 드라마도 왜 그렇게 힘든 걸 하느냐’고 물어봤어요. 제가 앞으로 어떤 작품을 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저를 힘들게 하느냐 아니냐는 선택 기준이 아니에요. 제가 이렇게 많은 배우를 만나고 많은 연기를 해본 것도 처음인데 그분들에게서 받는 에너지가 굉장히 컸기 때문에 끝까지 김혜경 역할을 잘 해낼 수 있었습니다.”
‘칸의 여왕’, ‘국가대표 여배우’ 등 전도연의 클래스를 증명하는 수식어는 셀 수 없이 많다. 그러나 본인에게 쏟아지는 기대와 주목도가 오히려 부담으로 다가오지는 않을까.
“부담은 당연히 있지만 그 부담 때문에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단지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고,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걸 잘해야겠다는 마인드에요. 제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하지 못하는 일은 포기도 빠른 것 같아요. 저답게 마음가는대로 사는 게 가장 속 편하고요. 저는 제가 마음이 불편한 걸 모르겠어요. 그렇다고 남한테 칭찬 받기 위해서 사는 것도 아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스스로가 뭘 하고 싶은지 항상 자신에게 물어봐요. 피곤하게 사는 방법이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에요. 피곤해도 제 마음이 편한 일을 선택해요.”
전도연은 끝으로 팬들에게 마지막 메시지를 남겼다.
“앞으로도 어떤 작품으로 찾아뵐지는 모르겠지만 전도연다운 선택을 응원해주시고 믿고 지켜봐주셨으면 합니다. 정말 열심히 살려고 하니까 많이 응원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전자신문 엔터온뉴스 최민영 기자 meanzerochoi@entero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