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온뉴스 최민영 기자] 유지태는 팔색조 같은 배우다.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의 로맨틱한 연기부터 ‘올드보이’와 ‘심야의 FM’에서의 악역, KBS2 드라마 ‘힐러’에서의 정의로운 언론인 역할까지 그는 다양한 작품에서 수많은 성격의 캐릭터들을 자유자재로 연기했다.
최근 종영한 tvN 금토드라마 ‘굿와이프’에서는 능력 있지만 본인의 야망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검사 이태준 역할을 맡았다.
드라마를 보지 않았다면 유지태가 악독한 역할을 연기하는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극 중 그의 캐릭터는 완전히 사악한 인물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좋은 인물이라고도 말하기 힘든 입체적인 역할이었다.
“극 중 이태준이 가족을 집착하면 할수록 인물이 입체적으로 보일 거라 생각했어요. 연기를 할 때 단순하게 하고 싶지 않았고, 이 사람이 가진 야망의 폭들을 이용해서 연기하려고 했었죠. 예를 들면 서중원(윤계상 분)과 대화를 할 때 ‘당신이 내 아내와 불륜을 저질렀으니까 난 당신을 해쳐야겠어!’가 아니라 ‘당신이 내 아내와 불륜에 빠졌지만 난 당신 배후에 있는 사람들을 이용해서 널 잡아들일 거야’ 이런 뉘앙스로 연기를 하면 이태준의 욕망과 야망의 크기가 달라지거든요. 매 신마다 어떻게 하면 이태준의 야망을 깊이 있게 보일 수 있을까 연구를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유지태는 ‘굿와이프’의 결말을 기존 드라마의 정형성에서 탈피했다고 평가했을 만큼 만족감을 표시했다. 하지만 대본이 늦게 나와 제대로 연기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아쉬운 마음을 털어놓기도 했다.
“왜 이렇게 대본이 안나오나했어요. 촬영해야 될 시간은 다가오는데 굉장히 불안했었죠. 그러다가 마지막 촬영 이틀 전에 대본을 받았는데 옛날에는 촬영 들어가기 20분 전에 대본을 받은 적도 있어요. 차라리 그렇게 ‘쪽 대본’이면 그나마 괜찮아요. 그냥 대사만 급하게 외워 촬영하면 되는데 ‘통 대본’으로 이틀밖에 시간을 안 주면 굉장히 괴로워요. 시간은 한정되고 촬영은 소화해야 하는데 대본을 연구할 시간도 없고 외워야 할 시간밖에 남지 않아요. 이런 경우 전달만 급급해지는데 감정을 살리기 힘들죠. 이런 경우만큼 힘들 때가 없어요.”
제작 기간 동안 여유 있게 촬영할 수 있는 영화와 달리 드라마는 사전 제작이 아닌 이상 마치 생방송처럼 촬영이 진행된다. 그렇기 때문에 유지태도 드라마보다 영화를 선호할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대답했다.
“저는 영화 전공을 했기 때문에 예전에는 영화에만 집중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영화와 드라마의 구분이 쓸데없는 경계라는 생각이 들었고, 잘하는 배우는 영화, 드라마 둘 다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서른 중후반부터 드라마에서도 좀 더 잘해보고 싶은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대본을 소화하는 양도 많기 때문에 연기하는 데 좋은 훈련이 될 수 있고, 여러 배우들을 만나기 때문에 저 또한 배워지는 부분도 많아요. 앞으로도 좋은 작품에 좋은 역할이 있다면 계속해서 꾸준히 드라마에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유지태는 작가가 본인에게 써준 대사를 바꾸는 유형이 아니다. 작가의 대본을 그대로 잘 표현하는 게 좋은 배우라고 강조한 그는 촬영 도중 한 번 스스로 대사를 바꾼 적 있었다.
“극 중 아들에게 스캔들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장면이 있는데 원래 대사는 ‘나중에 얘기하자’였어요. 그런데 ‘네가 조금 더 크면 아빠가 얘기해줄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어? 이렇게 바꿨죠. 원래 작가님들과 소통을 많이 할 시간도 없고, 배우들의 말을 하나하나 다 들어주고 나면 드라마가 산으로 간다는 걸 알기 때문에 거의 그러는 편이 아닌데 제가 실제로 아들이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이태준이 명예만큼이나 가족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걸 시청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었어요. 작가님도 흔쾌히 오케이 해주셨어요.”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긴 후부터 유지태는 악역을 자제하려고 했었다. 악역으로부터 생긴 부정적인 이미지가 자칫 가족에게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런 유지태를 ‘굿와이프’ 이태준으로 만드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람은 아내 김효진이다.
“이 역할을 제의 받고 걱정이 됐어요. 스캔들 장면도 있고, 드라마에서 노출 연기를 대중에게 보여주는 게 부담되기도 했죠. 그래서 아내에게 대본을 보여줬는데 멋질 것 같다고 얘기해줬어요. 방송 후에도 제가 이태준 연기를 멋지게 해냈다고 말해주더라고요. 집에 TV가 없어서 아마 클립 영상으로 모니터했을 거예요.”
김효진은 유지태와 결혼한 후 연기 활동을 하지 않고, 육아에 전념 중이다. 그가 브라운관이나 스크린으로 복귀할 계획은 없는 걸까.
“효진이에게 좋은 작품이 있으면 활동하라고 독려도 해요. 그런데 본인이 아이가 세 살 되기 전까지는 아이와 함께 있고 싶다고 말하더라고요. 좋은 엄마가 되고 싶어하는 것 같아요. 저는 제 아내의 선택을 존중하고, 아내의 꿈을 응원하고 지원하려고 해요. 그 전까지는 제가 두 배로 뛰고 있죠.(웃음)”
유지태는 가장 애착이 가는 본인의 작품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올드보이’와 ‘봄날은 간다’를 꼽았다. 특히 ‘봄날은 간다’에서 상대 배우 이영애의 대사였던 ‘라면 먹고 갈래요?’는 예능에서 자주 쓰이는 유행어가 됐다.
“저한테 들어오는 시나리오 가운데 ‘라면먹고 갈래?’라는 대사를 이용한 작품들이 여럿 있었는데 모두 거절했어요. ‘봄날은 간다’의 좋았던 기억과 이미지를 지키고 싶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런데 앞으로 개봉할 ‘스플릿’이라는 영화에 또 그런 대사가 나와요. 이번에도 별로 하고 싶지 않았지만 예전보다 좀 더 유연해지고, 융통성도 생긴 것 같아 제가 패러디를 하게 됐죠.”
앞으로 세계적인 배우가 돼서 아이들에게 자랑스러운 아빠로 기억됐으면 좋겠다고 밝힌 유지태는 자신의 포부와 목표에 대해 설명했다.
“앞으로 20~30년이 흘러도 사람들에게 지치지 않는 배우의 열정을 계속 보여주고 싶어요. 연기하는 게 좋아서 그렇게 살아왔고, 연기가 제 인생의 지침이 됐는데 환경이 유복해졌다고 포기하고 싶지 않아요. 현장 욕심도 많아서 촬영장에 오래 남아 배우, 제작진들과 호흡하고 싶어요. 더욱 스펙트럼이 넓은 배우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전자신문 엔터온뉴스 최민영 기자 meanzerochoi@entero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