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34주년 특집2-人]배명훈 SF작가 “왜 위대한 작품을 꼭 인간이 써야하는가”

Photo Image
배명훈 SF작가

배명훈 작가는 현재 한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젊은 과학소설(SF)작가 가운데 한명이다. 1978년 부산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대학원 재학 중인 2005년 `Smart D`로 `과학기술창작문예` 단편 부문에 당선돼 작가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연작소설집 `타워` `가마틀 스타일`을 비롯해 `청혼` `신의 궤도` 등 다양한 중·장편소설을 내놨다. 2010년 `안녕, 인공존재!`로 제1회 `문학동네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배 작가를 통해 `SF작가가 바라보는 한국사회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들어봤다. 과학기술과 인문학의 융합으로써 SF장르는 우리에게 늘 새로운 영감과 문제의식의 원천이 됐다. 그는 뛰어난 인공지능(AI) 작가의 등장을 두고 “왜 위대한 작품을 꼭 인간이 써야 하는가”라고 반문하며, 인간과 또 다른 뛰어난 작가의 탄생이란 관점으로 바라봤다.

-SF를 쓰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인가.

▲SF마니아는 아니었다. 글쓰기는 원래 취미였지만, 직업 작가를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대학원 시절 쓴 소설이 당선되면서 등단하게 됐고, 지면이 생기면서 우연히 작가의 길을 걷게 됐다.

대학 전공은 국제정치학이었다. 국제정치학을 배우면 개인의 일에 무관심하게 된다. 거시적 관점에서 보면 미국 대통령 개인이 중요하지만, 생각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보게 된다.

SF는 새로운 세계를 상상하는 만큼 세계관이 중요하다. 스스로 본격적으로 SF를 쓴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SF로 읽힌 것 같다. 다른 SF작가와 비교해도 세계관 중심으로 글을 전개하는 경향이 강하다. 한국 문학을 읽어보면 인물 비중이 높기 때문에 다르게 보인 것 같다.

-이력을 보면 정보통신정책연구원 미래전략연구실 미래학 부문에서 일하다 전업작가로 나섰다.

▲미래학이라는 학문이 다른 학문처럼 공고히 자리잡은 것이 아니다. 미래학 분야에 사회학자들이 많이 일한다. 내가 있던 부서에서도 3~5년 뒤 예측을 하는데 사회학, 행정학 전공 박사가 많았다.

원래 계획에 대학원 석사까지 공부하자는 생각을 했다. 그 이후에 남들이 잘 모르는 일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중 하나가 정보통신정책연구원에서 일한 것이고, SF작가가 되는 것일 수도 있다. 처음에는 전업작가를 하다 취업을 해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타워`가 출간된 시기인데 반응이 괜찮았다. 첫 장편을 준비하면서 집중해서 글을 써야할 환경도 필요했다.

-이공계통도 아닌데, SF소설을 쓰는데 필요한 과학, 기술 지식은 어떻게 얻나.

▲기본 정보를 얻는 것은 인터넷, 위키피디아, 다큐멘터리 등 일반인과 비슷하다. SF작가가 되고 나니 과학자나 공학자들 프로젝트에 같이 하겠느냐는 연락을 많이 받았다. 융합 프로젝트에 많이 참여했다. 과학자만 있어서는 안 되겠다고 인문학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 불러준 사례도 많다.

대표적으로 포스텍에 있는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 한국천문연구원과 같이 소백산 천문대에서 2박 3일 동안 보낼 수 있는 자리가 있다. 이 자리에 몇년 동안 참석하면서 천문학자들과 친해지고 듣는 이야기가 많았다.

예를 들어 내 소설 `신의궤도`는 미래 행성이 배경이다. 소설 속에서 이 행성의 신은 행성 주위를 돌고 있다. 그 신의 궤도가 보일 때도 있었지만, 아닐 때도 있다. 소설 속 신학자의 모습은 당시 소백산 천문대에서 느낀 것을 가져온 것이 많다. 망원경을 대하는 천문학자들의 태도나 자연과 어우러진 어두운 공간 등이 매우 경건하고 성스러운 분위기라 인상적이었다.

Photo Image
배명훈 SF작가

-작품에서 미래사회 묘사가 많다. 작가로서 생각하는 미래사회는 어떤 모습인가.

▲최근 1~2년 사이에 미래예측에 관한 질문을 많이 받는다. 그때마다 대답하는 것은 지금은 분기점이 아니고 분기점을 지나온 시기라고 말한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날아다니는 자동차, 이동수단 중심이었는데, 지금은 압도적으로 통신수단 중심으로 발전하고 있다. 지금은 한창 달려가는 시점이라 예측하기 힘들다.

과거에는 거대구조물이나 로봇, 기계, 이동수단에 대한 상상을 많이 했다. 제조업이 발전하던 시기의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미래모습 상상 그리기 이야기를 종종 하는데, 그때 그렸던 미래 모습을 보면 날아다니는 자동차가 등장한다. 그런데 날아다니는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공중전화박스에서 전화를 하는 식이다. IT나 통신 분야 예측은 잘 못했던 것이다. SF작가가 예측하고 과학기술이 따라가는 것이 이미 1960년대에 역전됐다. 지금은 과학자나 기술자가 예측을 더 잘한다.

미래사회에 대한 내 생각은 긍정적이다. 굳이 디스토피아를 상상하라면, SF장르에서 주로 나오는 것을 보면 대기업이나 군대, 정부 이런 것에 의해 안 좋게 변한다. 사실 정보의 배분이 불공평하다거나 과학기술을 정부나 군대가 잘못 유용하지 않을까 하는 오래된 문제라 새롭지 않다.

개인적으로 `매드 사이언티스트` 같은 존재가 등장하는 것은 더 어렵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한 명의 천재가 굉장한 것을 개발하는 일은 잘 없다. 이제는 팀이나 글로벌로 작업해야 하는 시대다. 만약 너무 뛰어난 인공지능의 등장이 문제가 되려면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비약적으로 발전해야 한다. 지금은 그렇게 하기 힘든 것 같다.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다.

미래를 예측할 때 힘든 것은 마치 기업이나 정치는 아무것도 안 하는 것처럼 말하는 데 있다. 해외에서 개발된 신기술이 언제 도입되느냐의 문제에선 정부 역할도 크다. 우리가 기술 중심으로만 미래를 예측하면 잘못 예측할 수 있다. 사실 인구변화 문제도 매우 중요하지 않은가.

-최근 미래예측 중 인공지능의 등장이 중요한 이슈가 됐다. 일부에서는 인류 지능을 뛰어넘는 수준의 인공지능 등장을 우려하기도 한다.

▲SF에서 인공지능은 오랫동안 꾸준히 다룬 주제다. 기계가 인간성을 획득한 순간을 다룬 이야기가 많다. 가사일을 돕는 로봇이 인간성을 획득하는 이야기도 자주 등장한다.

SF계에서는 이것을 위협이 되느냐 아니냐보다 그렇게 자아를 가진 로봇은 무엇을 볼까라는 것을 더 궁금해 한다. 얼마나 경이로운 눈으로 세상을 볼까. SF장르가 주는 쾌감 중 하나가 경이감이다. 기계적 특성을 가진 로봇이 자아를 가지면서 인간이 가진 사고부터 넓고 깊게 사고할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하기도 한다.

영화 `매트릭스`처럼 인간을 지배하거나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이란 소설 속에서처럼 인간의 혁명을 돕는 로봇도 나올 수 있다. 디스토피아는 그 중 하나의 시나리오일 수 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Photo Image
배명훈 SF작가

만약 인공지능이 소설을 굉장한 작품으로 만들면 두렵기보다 작가로서 그 소설이 보고 싶다는 마음이 먼저다. 뛰어난 작품을 쓰는데, 꼭 그것을 쓰는 것이 인간이어야 하나. 미래는 인간과 다른 존재가 커뮤니티를 구성하는데, 그것이 로봇일 수도 있고 외계인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에서도 바둑을 아는 사람은 알파고의 뛰어남을 더 크게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바둑을 잘 몰라 그것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 아쉬었다.

로봇이 우리 사회 새로운 구성원이 되는 상상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새로운 사고를 연습해볼 수 있지 않겠는가.

-로봇은 좋은 소설을 쓰는 또 다른 작가일수도 있지만, 내 직업을 잃을 수 있지 않은가.

▲(로봇이 아니라) 누군가가 창작을 하는 것이다. 작가들 관점에서는 위대한 무엇인가가 중요하지 그것을 꼭 사람이 만들어야 하느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과학자들은 그게 진짜가 아니다 알고리듬의 결과물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작가가 창작하는 것과 로봇이 창작하는 것을 두고 이른바 자연산이냐, 인공물이냐라고 나눌 수도 있다.

하지만 로봇도 작가로서 자신의 바이오그라피, 자신의 이야기를 담는다면 문제는 복잡해진다. 예를 들어 일본의 문학상을 통과한 SF소설도 로봇이 인간성을 획득하는 이야기라고 들었다. 이것은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진짜`일 수 있다. 일종의 자서전이다. 이것을 알고리듬의 결과물로만 볼 수 있겠는가.

-작가가 그리는 미래사회 모습에는 권력과 정치 이야기가 중요하게 다뤄진다. 왜 그런가.

▲권력이나 정치적 관점에서 보면 한국 사회는 구식이다. 버전 자체로 구식이다. 근대국가 모델은 유럽에서는 몇백년 거쳐 전쟁을 통해 얻은 것이다. 국가 구조 자체가 전쟁을 지원하기 위해 세금을 걷고, 중앙은행을 만들고, 채권을 발행하고, 의회를 만든 식이었다. 이런 식의 근대국가 모델을 서양 제국주의 세력이 와서 힘들게 받아들였다. 그런데 이후에 서구사회는 다음 버전으로 업그레이드됐는데, 우리는 버전이 오래됐다. 과거 냉전체제에 머물러있다. 컴퓨터도 운영체제 자체가 업그레이드 안 되면 새로운 프로그램을 받을 수가 없다.

권력 자체보다 권력의 성격이 중요하다. 이 권력의 성격을 어떻게 바꿀 것이냐. 흔히 사업을 진행할 때 예산을 어떻게 확보할 것이냐라는 말을 많이 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예산을 확보하고 집행할 권력은 어떻게 확보할 것이냐라는 질문이다. 이 질문을 해야 할 때다.


김명희 기업/정책 전문기자 noprint@etnews.com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