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의 집적도가 2년마다 두 배씩 증가한다는 인텔 창업자 고든 무어의 이론은 이미 폐기됐다. 세계 각국 산학연이 모여 만들어오던 국제반도체기술로드맵(ITRS:International Technology Roadmap for Semiconductors)은 올 상반기 2021년이면 회로 선폭을 줄이는 것이 더 이상 힘들다는 내용을 골자로 `ITRS 2.0` 로드맵을 발표했다. ITRS는 이번 발표를 마지막으로 활동을 끝냈다. 2021년 이후 로드맵이 없다는 의미다. 반도체 산업의 향후 발전 방향을 최리노 인하대학교 신소재공학과 교수에게 들어봤다. 최 교수는 미국반도체 연구컨소시엄 세마텍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고 2011년부터 2014년까지 한국산업기술평가원 반도체 공정 PD로 활동한 이력이 있는 관련 분야 최고 전문가다.
-무어의 이론은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
▲무어가 제시한 이론은 지난 50년간 반도체 산업의 발전을 이끌어왔다. 산업계와 학계가 이 이론을 착실하게 지켜온 결과 반도체는 더 빨라졌다. 전력도 덜 먹게 됐다. 무엇보다 더 저렴하게 만들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이론은 이제 더 이상 지속되지 않는다. 무어의 이론을 지속시킬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선폭을 축소해서 얻을 수 있는 `경제성`이 적어졌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오히려 더 많은 비용이 들게 된다. 누군가 억지로 하려 한다면 무어의 이론을 지속시킬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누가 그 일을 할까. 값을 낮출 수 없는 회로 선폭 축소는 의미가 없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무어의 이론으로 컴퓨팅 파워가 높아지면서, 그 주변 산업이 엄청나게 발전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속도가 더뎌지고 있으며 종국에는 `스톱`될 것으로 전망한다. 컴퓨팅 파워를 높일 수 있는 길이 막혔다면,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 근본적인 방법 자체가 달라져야 한다는 얘기다.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이 있을까.
▲지금까지 우리는 0과 1에 기반을 둔 CMOS(Complementary Metal-Oxide Semiconductor) 소자 공정을 발전시키에는 데에만 초점을 맞춰왔다. 이것을 대체할 새로운 반도체의 구조를 찾아야 한다. 양자컴퓨팅 기술, 최근 인공지능(AI) 바람을 타고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뉴로모픽(Neuromorphic)이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실리콘을 대체할 새로운 물질도 찾아야 한다. 생산비용을 낮추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앞으로의 핵심은 저전력이 될 것이다. 전력 줄일 수 있는 가능한 모든 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칩 속에 집어넣어야 한다. 태양광 셀로도 장기간 움직일 수 있는 그런 칩을 개발해야 한다는 얘기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미국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얼마 전 미국 백악관은 국가전략컴퓨팅계획(NSCI:National Strategic Computing Initiative)에 무어의 이론을 지속시키기 위한 종합적인 계획을 수립했다. 무어의 이론을 뛰어넘어 향후 15년간 재료, 공정, 소자, 시스템 등 컴퓨팅 파워를 높일 수 있는 매우 광범위한 계획이 담겨 있다. 한국도 미국처럼 하루 빨리 이런 분야의 연구개발(R&D)을 시작해야 한다. 크게 보고 가야한다.
-이런 것을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한국 산업에서 반도체가 차지하고 있는 위상이 매우 높다. 수출 1위 품목 아닌가. 산업의 쌀이라고 불리는 품목이다. 이 품목에 대한 발전이 없으면 다른 분야에서 앞서나가기 힘들다. 지금까지 우리가 잘했던 것은 높을 수율로 대량 생산을 하는 것이었다. 남들과 똑같은 것을 만들면서 수율 싸움으로 돈을 벌었다. 앞으로는 이러한 것들을 중국이 가져갈 것이다. 한국의 장점이 아닌 중국의 장점이 될 것이란 의미다. 이제는 남들이 못하는 것, 쉽게 따라오기 힘든 것을 시작해야 한다. 혼란기에 자리를 잡으면 분명 남들보다 몇 발자국은 앞서나갈 수 있다.
한주엽 반도체 전문기자 powerus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