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식률을 획기적으로 높인 유전자분석기술 SNP(단일염기다형성) 마커가 유골발굴과 유가족 인계사업에서 각광받을 전망이다. 식별률이 기존 대비 수만 배 뛰어나 유골 발굴과 유가족 인계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것으로 기대된다.
8일 정부와 관련업계에 따르면 개인 식별을 위한 유전자 분석은 친자확인, 범죄자 데이터베이스(DB) 구축 등에 주로 활용됐다. 정부가 2000년부터 6·25 전사자 유해 발굴 작업을 시작하면서, 유가족을 찾기 위한 수단으로 활발히 활용됐다. 제주 4·3 사건 유해 발굴, 이산가족 상봉, 미아 찾기 사업 등에도 적용됐다.
정부가 6·25 전사자 유해 발굴 작업을 시작한 이후 작년 말까지 발굴한 유골은 1만314구다. 유골에서 채취한 DNA와 실종자 가족 DNA를 대조해 친족관계를 증명한다. 유전자 분석으로 신원이 확인된 국군 전사자는 115명이다. 1% 수준이다. 유해가 60년 넘게 방치돼 DNA 훼손이 심하다. 전사자 부모는 물론 자손도 고령화돼 친자, 친부 수가 급격히 감소한다. 아직도 13만구에 달하는 전사자 유골이 땅속에서 가족을 기다린다.
보편적으로 활용되는 기술은 한 사람이 고유하게 가지는 17개 DNA쌍을 분석한 STR마커 분석법이다. 범죄현장 등에 널리 사용되며 표준화 과정을 거쳐 개인 식별법으로 정착됐다. 높은 식별률과 분석 능력을 갖췄지만 돌연변이율이 높아 가족관계 확인 시 오판 가능성이 있다. 편모, 편부 등 가족이 제한적일 경우 변별력 문제가 있다. 훼손된 DNA는 판독률이 현격히 떨어진다.
대안으로 나온 게 SNP 마커다. SNP는 인간이 가진 약 30억개 염기서열 중 개인 편차를 보이는 염기 변이를 뜻한다. 인간은 1000개 염기서열마다 한 개꼴로 개인 차이를 보이는데 이를 활용해 개인식별을 한다. 특히 훼손된 DNA에서도 뛰어난 식별력을 보인다. 오래된 유골이나 지진, 쓰나미 등 자연재해, 화재, 테러에 훼손된 DNA도 분석할 수 있다. 친부, 친모 이상 3촌 친족도 식별한다. 기존 분석법보다 10에 70승만큼 식별률이 높다.
국내에서는 유전자 분석 업체 디엔에이링크가 2013년 상용화했다. 정부 사업에도 적용했다. 제주 4·3 사건 희생자나 6·25 전사자 유해 발굴 사업이 대표적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범죄자 DB 사업, 통일부 이산가족 유전자 DB 사업에도 적용했다. 제주 4·3 사건 유해 유가족 찾기 사업은 SNP 마커 기술을 활용해 21구 중 16구 유해를 유가족 품으로 돌려보냈다.
디엔에이링크 관계자는 “기존 STR 마커는 유전자를 증폭해 분석해야 하지만, 전사자 유골은 세월이 많이 흐르고 훼손이 심해 증폭이 어렵다”며 “SNP 마커는 염기서열 하나만 봐서 깨진 DNA도 완전 해독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새로운 기술에 대한 배타적 태도와 예산 부족이 걸림돌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유해 유전자 분석 사업은 기술보다는 가격에 초점을 맞춘다. SNP 마커와 같은 신기술이 등장해도 저렴한 가격을 제안한 업체가 유리하다. 제주 4·3 사건 희생자 유해 발굴 사업은 예산 부족으로 307구가 땅 속에 방치됐다. 시간이 더 흐르면 유해 훼손 정도가 심하고, 친족 생존 확률이 떨어진다. 산발적인 유전자 분석보다는 전사자, 유가족 DNA DB를 구축해 체계적인 인계 사업 필요성도 제기된다.
이숭덕 서울대 의대 법의학교실 교수는 “일반적인 친자감정이 아닌 전사자 발굴은 정부가 책임을 지고 유해를 가족 품에 돌려보내야 한다”며 “하지만 정부는 새로운 기술 도입을 주저하는데다 사업예산마저 축소하는 등 사업 가치를 낮게 평가해 아쉽다”고 지적했다.
정용철 의료/SW 전문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