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출연연구기관의 연구개발 생산성이 낮은 원인이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소형 단기 과제 과다`를 첫손으로 꼽고 있다. 여기에 시류에 편승해 자주 변하는 연구개발 정책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3년 미만 소형과제 99% 수행 기관도
일부 출연연은 3년 미만 소형 단기과제가 99%나 된다. 연간 수행과제수를 인원수로 나누면 정규직 3명에 1개 꼴이다. 과제가 만들어져 결과물이 나오기까지 과정을 들여다보면, 연구성과가 저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알 수 있다.
3년 과제는 대부분 3월 1일자로 시작한다. 5~6월 사업을 협약한다. 9월이 되면 대부분 과제세팅이 완료된다. 세팅된 지 2개월이 지난 11월이 되면 관리기관으로부터 현장실사(점검)를 받아야 한다. 다음 해 1~2월에는 보고서 형태의 연차평가를 받는다. 다시 3~4월 연차평가 결과가 나오면 그때부터 2차연도 연구를 진행한다. 그래봐야 다시 9월까지다. 연간 6개월 연구하는 것이다. 나머지 시간은 보고서와 수주를 위한 발표자료를 만드느라 허송세월한다.
후속과제 기획에도 시간이 허비된다. 후속과제 기획은 인건비 보전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따지 못하면 해당부서 해체까지도 감수해야 한다.
이 같은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전전년도부터 기획을 할 수밖에 없다. 보통 투입인력 40%정도는 기획업무에 매달린다. 제대로 된 수행과제는 고작 60% 인원이 맡는 구조다.
여기엔 함정이 또 있다. 기획인력이 연말 평가에서는 우수평가를 받기가 쉽다는 것이다. 연구인력은 연구하느라 고생은 고생대로 하면서 평가가 덜 우수하게 되어 수행인력의 공분을 사게 된다. 차기과제에 집중하지 않을 수 없는 구조다.
◇3년 연구결과물은 연구시제품
3년 과제 결과물을 출연연에서는 통상 연구시제품이라고 부른다. 시장에서 제품화되는 상용화의 의미와는 다르다. 반면 기업은 제품에 바로 반영되는 기술을 원한다.
이 간극을 줄이기 위한 제도가 없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것이 중기청 중기지원사업이다. 대부분 1년에 2억~3억원의 예산을 지원한다. 출연연 한 관계자는 “중기지원사업 제도가 있지만 이 과제를 수행할 연구원은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3년간 올인해야 하는데, 그 예산으로는 당장 먹고사는 문제 해결도 어렵다”고 토로했다.
◇시류 편승한 개발 정책도 문제
2009년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만든 영화 `아바타`가 인기를 끌면서 한때 3D붐이 일었다.
정부와 출연연은 콘텐츠산업발전전략을 부처별로 세워 예산을 지원하고 과제를 만들었다. 7년이 지난 지금 관련 과제나 성과는 어디에서도 볼 수 없다.
이세돌과 알파고 대결로 전 세계 관심을 끈 인공지능(AI)도 비슷한 전철을 밟을까 우려하는 사람도 많다.
IITP 관계자는 “사실 ETRI는 이미 인공지능 연구를 수십 년 전부터 진행해 왔는데, 유행을 타야 알려지고 관심을 갖는 게 더 큰 문제”라며 “기술을 일관성 있게 끌고 가며 키워주는 정책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대전=박희범 과학기술 전문기자 hb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