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바이오]`제2 게놈` 마이크로바이옴, 항생제 내성 난제 `구원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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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내구균을 확대한 모습 <월스트리트저널 제공>

현대의학 난제인 항생제 내성을 해결하는 열쇠로 마이크로바이옴(미생물군 유전체)이 주목받는다. 우리 몸속 미생물이 병원성 세균에 대항할 무기로 부상하면서 선진국에서도 관련 연구가 활발하다. 우리나라는 연구 출발점인 미생물 확보는 물론 전문가 양성도 걸음마 수준이어서, 선진국과 격차가 우려된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은 6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제103회 한림원탁토론회를 개최하고 마이크로바이옴 관련 논의를 진행했다. 전문가들은 바이오 분야 핫 이슈인 마이크로바이옴 연구 동향을 공유하는 한편 정부 차원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마이크로바이옴은 인간 몸속에 공존하는 미생물 유전정보를 뜻한다. `제2 게놈`으로 평가받으며 생체대사 조절 및 소화능력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알레르기, 비염, 아토피 등 각종 대사·면역질환과 장염, 심장병, 우울증, 자폐증, 치매까지 우리 몸속 미생물로 질병을 호전시킬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마이크로바이옴을 연구하는 분야는 장내, 표피, 구강, 기관지, 생식기 등 다섯 영역이다. 해당 장기에 있는 미생물을 건강하게 하거나, 건강한 미생물을 이식해 면역력을 높이는 게 핵심이다. 특히 우리 몸이 항생제에 내성이 생기면서, 병원균에 대항하는 미생물을 투여하자는 논의가 심도 있게 진행 중이다. 미생물 숙주방어체계를 활성화해 병원성 세균을 억제한다. 현대의학 난제인 항생제 내성을 해결할 구원투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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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물을 이용한 병원성 세균 억제 모식도<자료: 김건우 서강대 교수 제공>

미생물 유전체를 분석하는 것이 관건이다. 미생물 정보 획득은 물론 배양에 반드시 필요하다. 장 내에만 100조개가 넘는 미생물이 산다. 종의 진화과정을 연구하는 계통발생(phylogeny)과 염기서열 분석 기술이 발전하면서 마이크로바이옴 연구도 급물살을 탄다.

미국, 유럽, 일본 등에서 정부 주도 연구가 한창이다. 미국은 2008년 휴먼 마이크로바이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2012년부터 2014년간 2784개 과제에 9억2200만달러(약 1조661억원)을 투입했다. 지난 5월에는 오바마 2기 정부 마지막 과학연구 프로젝트로 `국가 마이크로바이옴 계획`을 발표하고, 2년간 1억2100만달러(약 1400억원)를 투입할 계획이다.

우리 정부는 2014년부터 마이크로바이옴 연구에 착수했다. 과제는 2~3개에 불과하고 연구비도 10억원 안팎이다.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연구 핵심인 미생물도 거의 확보하지 못했다. 미생물 유전체를 분석할 생물정보 전문가도 부족하다.

중국은 2008년부터 유럽, 일본과 함께 글로벌 마이크로바이옴 프로젝트에 참여했으며, 올해도 다국적 바이오 기업, 연구기관과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일본도 우리나라보다 2~3년가량 앞선 것으로 분석된다. 동양인을 대상으로 한 미생물 연구에 주도권을 놓칠 우려도 제기된다.

김건수 서강대 생명과학과 교수는 “우리 몸속 미생물은 국가, 인종, 성별, 환경 등에 따라 다르게 분포하는데, 동양인에 대한 미생물 연구는 많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최근 중국이 정부주도로 관련 연구에 엄청난 자원을 투입하고 있는데, 자칫 동양권 미생물 연구 주도권을 뺏길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차세대 바이오 영역 주도권 확보를 위해 중소기업이 제한적으로 진행하는 연구를 정부주도 프로젝트로 키울 필요가 있다. 미생물 확보를 위해 생물자원은행을 구축하고, 기초과학부터 차근차근 연구가 진행돼야 한다. 이를 기반으로 한국인 마이크로바이옴 표준 모델을 적립해 중국 등 아시아로 확산해야 한다.

김 교수는 “미국은 마이크로바이옴 프로젝트에 투입한 예산 중 절반 이상을 기초과학 분야에 집중해 기초부터 연구를 진행한다”며 “응용분야에만 관심을 가지는 우리나라 연구 기조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미생물에 대한 법제도적 논의도 필요하다. 장내 미생물 제제를 처방하기 위한 법적 문제와 임상 단계에 대한 논의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미국은 미생물을 임상이 필요한 약물이 아닌 조직으로 규정하는 것을 논의 중이다. 산업화를 신속하게 이루기 위해서다.

배진우 경희대 생물학과 교수는 “한국인이 어떤 장 내 미생물을 보유하는지 분석해 이를 확보하는 게 선행돼야 한다”며 “미생물을 많은 연구소가 공유하도록 생물자원은행을 구축하고, 처방을 위한 법제화가 요구된다”고 주장했다.


정용철 의료/SW 전문기자 jungyc@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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