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극한기술로 태어나는 한국형발사체 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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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와 과학기술 교류가 시작되면서 철저히 철의 장막에 가려져 있던 로켓엔진 시험설비를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 당시 우주발사체 개발을 시작하지 않은 우리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특히 그곳에서 만난 백발노인은 평생 동안 엔진 시험만을 하면서 경험과 기술을 축적해 왔다. 러시아 엔진을 세계 최고로 만든 전문가이자 권위자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마침내 우리나라도 액체로켓엔진 시험설비가 갖춰졌다. 무척 늦었지만 우리가 개발하는 로켓엔진에 얼마든지 불을 붙여 가며 엔진 개발을 마음 놓고 할 수 있게 됐다. 국내에는 그동안 이런 시험설비가 없어서 우리가 만든 엔진 부품을 들고 나가 다른 나라 시험설비에서 제한된 시험만을 해야 했다. 그 묘한 설움은 마치 봅슬레이 선수가 다른 나라의 경기장에서 눈치를 봐 가며 훈련하는 상황과 같았다.

지금 나로우주센터에 갖춰진 로켓엔진 시험설비에서는 로켓엔진 연소시험이 한창이다. 한국형발사체에는 75톤급 액체엔진과 7톤급 액체엔진이 사용된다. 최근 들어 75톤급 액체엔진은 140초 목표연소시간 대비 75초 연소시험, 7톤급 액체엔진은 500초 목표연소시간 대비 100초 연소시험을 각각 진행했다. 앞으로 목표연소시간에 도달해야 하는 것은 물론 약 200회 이상의 지속된 시험을 통해 엔진의 신뢰성을 확보하는 긴 여정이 남아 있다.

액체로켓엔진 시험 과정은 살얼음판 걷듯 진행되고 있다. 로켓엔진은 극한 기술의 결정체로, 기술상의 많은 어려움이 나타난다. 우선 극한의 온도와 높은 압력, 폭발성 높은 유체를 안정적으로 제어해야 한다. 한국형발사체의 액체로켓 엔진은 등유(케로신)와 영하 180도의 액체산소가 반응해 연소하며 추진력을 낸다. 연소가 시작되면 엔진 연소실 내부는 섭씨 3000도까지 치솟는다. 엔진이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 영하 180도에서 영상 3000도의 극한 온도차 유체가 운용돼야 한다.

액체로켓 엔진은 시동을 거는 것조차 무척 어려운 일이다. 1초가 채 안 되는 극히 짧은 시간 안에 연료와 산화제를 공급하는 여러 밸브와 부품이 정밀하게 정해진 순서대로 정확히 작동해야만 한다. 한국형발사체의 75톤급 액체로켓 엔진은 초당 255㎏ 연료와 산화제를 연소시키는데 시동 순서가 조금만 어긋나도 곧바로 폭발로 이어질 수 있다. 가정에서 사용하는 가스레인지를 켤 때 스파크가 조금만 늦게 일어도 한순간 폭발성 점화가 일어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무엇보다 어려운 것은 연소불안정 현상이다. 연소불안정은 엔진 개발에서 고질병과 같고, 이론상으로 해결할 방법이 없다. 막대한 양의 추진제가 급속하게 연소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주파수와 연소실의 고유한 음향장이 공진을 일으켜 불안정한 연소가 나타나는 현상으로, 순식간에 엄청난 폭발을 야기할 수 있다.

로켓 선진국들 역시 새로운 로켓 엔진 개발 때 종종 이 현상 때문에 엔진 개발이 지연되곤 한다. 미국의 유인 달 탐사 우주선 아폴로 발사 때의 로켓인 `새턴`에 사용된 F-1엔진이 연소불안정 현상을 해결하지 못해 상당 기간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은 로켓 공학 분야에서 유명한 일화다. 연소불안정 현상은 1930년대 발견됐지만 과학기술이 크게 발달한 지금까지도 정답이라 할 만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한국형발사체에 사용될 75톤급 엔진도 연소불안정 현상이 발생, 이를 해결하는데 무려 1년이 넘게 걸렸다. 일단 연소불안정이 발생하면 설계를 수정하고 시험을 반복해 가며 안정화시켜 가는 방법밖에 없다. 지금은 연소불안전성을 극복하고 시험을 본격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고, 갈 길 또한 바쁘다. 올 하반기부터는 로켓의 실제 비행 조건을 가정해 어려운 상황에서 연소시험을 해야 하는 이른바 `탈설계점 시험`을 앞두고 있다. 이 과정에서 엔진 폭발과 같은 위험성은 더욱 높아진다. 엔진시험 과정에서 실패는 반드시 생기겠지만 그것은 오히려 약이 된다. 20년 전에 만난 러시아 백발노인의 수많은 실패와 성공 경험이 세계 최고 엔진을 만들어 냈듯 나로호를 개발한 30대의 젊은 연구원들이 지금 40대에도 엔진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로켓엔진 기술 확보는 멀지 않았다. 서두르기보다는 탄탄한 엔진 기술을 가지는데 집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중국이 러시아 로켓엔진을 가져와 무려 15년 동안이나 걸려가며 엔진 개발을 완성한 것도 중요하게 바라봐야 할 것이다.

김진한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발사체엔진개발단장, jhkim@kar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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