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량(裁量)의 사전상의 정의는 `자신의 생각, 판단에 따라 일을 처리함`이다. 자유재량(自由裁量)과 동의어인 두 번째 정의는 `행정기관이 일정 범위에서 법에 구속되지 않고 독자 행위를 하거나 판단하는 것`이다. 어떤 정의든 자율성을 재량의 가장 큰 가치로 본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재량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감사원이 한 달 동안 공정위를 점검한 후 “불명확한 법적 근거와 과도한 재량 하에 과징금 산정·감액이 불합리하게 이뤄지거나 사건 조사·처리가 부실하게 이뤄졌다”고 발표했다. 언론은 `고무줄 과징금` 등의 표현을 동원, 감사 결과를 보도했다.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종종 일관성 없는 과징금 감경이 이뤄졌을 수 있다는 반성이다. 공정위는 감사원 지적을 `근거가 되는 법 규정을 좀 더 명확하게 개선하고 재량을 더욱더 구체화할 수 있으면 개선하라는 취지`로 해석했다. 표현 그대로 해석하면 적어도 법 규정을 좀 더 명확하게 개선할 필요성을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
자성보다 아쉬움의 목소리가 컸다. 공정위의 재량은 인정하되 자율성을 좁게 해석했기 때문이다. 공정위의 특성도 충분히 고려했다고 볼 수 없다. 감사원은 `합의제 준사법 기관`이라기보다 `국무총리실 소속 중앙행정 기관` 성격을 많이 반영하고 있다. 이 때문에 법원처럼 폭 넓은 재량을 인정하기보다 행정기관처럼 명확한 틀에 따라 과징금을 부과하는 게 옳다고 판단한 것이다.
공정위는 과징금 감경 일상화와 일관성 없는 과징금 조정을 경계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이유로 공정위의 재량을 지나치게 제한해서는 안 된다. 자율성을 담보하지 못하면 `합의제 준사법 기관`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적절한 과징금 조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이후 법원 판결에서 패소 요인이 되기도 한다. 감사원의 지적이 공정위가 손발을 스스로 묶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유선일 경제정책 기자 ys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