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MB) 정부 시절 방송통신위원회가 만들어졌다. 2008년이다. 방송위원회와 정보통신부를 합쳐 진흥과 규제를 아우르는 대통령 직속위원회 형태로 출범했다. 이명박 정부의 후광을 입은 `힘센` 부처답게 선진 정책도 많이 쏟아냈다. 인터넷TV(IPTV) 출범, 신규 통신사업자 선정, 통신료 인하, 알뜰폰 개시 등이 대표 정책이다. 최대 역작은 역시 `종합편성채널사업자(종편)` 선정이었다. 따져보면 지금 빛을 보고 있는 방송통신 정책의 밑그림이 대부분 그때 그려졌다.
그럼에도 방통위를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았다. 지나치게 정치권의 눈치를 본다는 이유에서였다. 실제로 `대통령 멘토`라 불린 최시중 초대위원장과 오버랩되면서 5년 내내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정치계의 입김에 휘말리면서 원래 내세운 설립 명분은 갈수록 퇴색해 갔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서 운명을 다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기사회생했다. 정권이 바뀌었지만 간판은 내리지 않았다. 일부 업무와 인력이 새로 출범한 미래창조과학부로 넘어갔을 뿐이었다. 위상과 역할은 축소됐지만 순수 규제 기관으로 재출범했다. 이명박 정권 때가 `구(옛) 방통위`였다면 `신 방통위` 시대가 열린 것이다. 사실 방통위는 박근혜 정부의 아이콘격인 미래부에 밀려 존재감이 흐릿했다.
방통위가 최근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고 있다. 중심을 잃고 갈팡질팡하는 모양새 때문이다. 최대 역작으로 꼽히던 단말기 지원금 상한제와 관련한 논란이 대표 사례다. 수시로 말을 바꿈으로써 산업계와 소비자의 혼란을 부채질했다. 여론은 요동치지만 아직도 명확한 입장 표명이 없다. `확정이 아닌 단순 검토, 폐지가 아닌 개선`이라는 식의 말장난뿐이다.
정당한 위법 사실 조사조차도 기업으로부터 거부당하면서 자존심에도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방통위 내부 상임위원끼리 얼굴을 붉히는 일까지 발생했다. 일련의 사태가 가감 없이 중계됐지만 반성은커녕 내부 수습도 안 된다. 시장 질서를 바로잡아야 하는 위치지만 오히려 여론 눈치 보기와 불필요한 내부 갈등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만큼 정책 신뢰성에도 금이 갈 데로 간 상태다.
방통위의 설립 목적은 분명하다. 설립 근거인 `방송통신위원회의 운영 및 설치에 관한 법률(방통위법)`에 잘 나와 있다. `방송과 통신의 융합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여 방송의 자유와 공공성 및 공익성을 높이고 방송통신위원회의 독립적 운영을 보장함으로써 국민의 권익보호와 공공복리의 증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총칙 1장1조)`고 명시돼 있다.
방통위는 국민의 권익 보호와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만들어졌다. 이를 위한 절대 전제 조건이 독립성이다. 오죽하면 근거 법에서 직무상 독립을 철저히 보장하고, 해당 위원은 직무를 수행함에 외부의 부당한 지시나 간섭을 받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만큼 독립성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임명권자나 추천위원 구성 등을 들어 방통위의 태생적 한계라고 변명할 수 있다.
그러나 규제 기관이 국민이 아닌 정치권을 먼저 바라본다면 이미 책임을 방기한 것이다.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외부의 입김에 우왕좌왕한다면 구 방통위처럼 친 정권 기관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쓸 수밖에 없다. 이에 따른 모든 책임은 고스란히 지금 방통위에서 져야 한다. 신 방통위는 구 방통위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정치적 독립성과 투명성, 공정성을 잃은 규제 기관은 더 이상 존재의 의미가 없다.
강병준 통신방송부 데스크 bj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