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벤처 창업에 진정 필요한 것은

언젠가 한 스타트업을 만나 새 사무실을 구하는 것이 고민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스타트업을 위한 지원 공간에 입주해 있던 기업은 인원이 늘면서 새 사무실을 구해야 했다. 하지만 사업이 커지고 인원을 채용해 더 큰 공간을 찾는 것은 기뻐할 일인 데도 그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세련되게 꾸며진 최신 스타트업 공간에서 떠나는 것이 아쉬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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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스타트업 지원 공간은 선택받은 자의 공간이다. 치열한 창업경진대회를 뚫고 선정된 기업이나 까다로운 입주 심사를 통과한 기업만이 저렴한 임대료에 공간을 얻을 수 있다. 공간을 얻었다고 해서 무한정 이용할 수는 없다. 애초에 적은 인원의 기업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공간이기 때문에 인원이 늘어나면 이사해야 한다.

그런데 저렴한 임대료에 최적의 입지 조건을 누리던 스타트업이 인원을 늘려 사무실을 구해 나가면서 아쉬움을 토로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주차장과 오피스텔 등 좁은 공간에서 창업해 조금씩 공간을 확대해 가는 보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인건비나 사무실 임대비용이 `지원`이란 명분 아래 빠져 있다가 갑자기 등장하자 성장을 경영 부담으로 여기게 된다.

그 모습을 보면서 우리 기업의 성장 과정이 거꾸로 쓰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세계 최고 인터넷·소프트웨어(SW) 기업을 만들기 위해 그들 업무 공간을 흉내 내고 초기의 창업 공간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런 공간은 창업 한참 이후 성공과 함께 만들어진 공간임을 간과했다. 그들의 성공만을 흉내 냈지만 정작 필요한 기업 문화까지는 가져오지 못했다.

정부의 벤처창업 적극 지원 정책으로 하드웨어(HW) 인프라 지원 부문에서는 세계 최고라는 찬사도 손색이 없다. 하지만 창업의 SW라 할 만한 기업가 정신은 점점 더 찾아 보기 힘들어진다는 생각이 든다. 벤처 창업을 위한 HW 인프라는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다. 스타트업 기업의 성장을 도와 줄 진정한 창업 지원 정책을 다시 점검해 볼 때다.


김명희 기업/정책 전문기자 noprint@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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