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합병(M&A) 심사에 착수한 지 174일이 지났다. 당초 산업계는 심사가 `4월 13일 총선을 넘기는지 여부`에 주목했지만 이후 한 달을 훌쩍 넘긴 지금까지도 공정위는 묵묵부답이다. “조만간 심사보고서가 나갈 것”이라는 정재찬 공정위원장 발언이 나온 지도 정확히 두 달 됐다. 심사가 늦어지면서 인수 관련 업체는 물론 관련 산업에도 사업과 투자에 차질을 빚을 것이라는 의견이 팽배하다. 이는 결국 소비자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공정위의 장고(長考)…심사기간 최장기록 경신
SK텔레콤은 지난해 12월 1일 공정위에 기업결합 심사를 신청했다. 공정위가 심사를 시작한 지 22일 현재 총 174일이 지났다. 역대 방송·통신 분야의 기업결합 최장 심사기간을 기록한 것은 SKT의 신세기통신 합병 건으로, 145일이 걸렸다. 이미 심사기간 최장기록을 경신한 것이다.
규정상 공정위는 기업결합 신고를 받으면 30일 이내에 심사를 마무리해야 한다. 필요 시 90일을 연장할 수 있다. 공정위 심사기간이 `120일`로 알려진 이유다. 기간에 제한을 둔 것은 심사가 지나치게 길어짐에 따라 기업의 경영 활동에 방해 요인으로 작용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120일을 넘길 수 있는 것은 자료보정 기간 때문이다. 공정위는 심사에 필요한 참고자료를 해당 기업에 요구할 수 있다. 이를 준비하는 기간은 심사기간에 포함되지 않는다. 공정위가 “아직 시간이 남았다”고 말하는 이유다.
규정을 어기지 않았을 뿐 과거 유사한 기업결합 심사에 소요된 기간을 고려하면 이번 건은 이례적으로 장기화되고 있다. SKT의 신세기통신 합병 심사가 145일 걸렸을 뿐 방송·통신 분야의 기업결합 심사는 대부분 한 달이나 두 달 사이에 마무리됐다. 2008년 SKT와 하나로텔레콤은 60일, 2009년 KT와 KTF는 35일, 2009년 LG 3사(LG텔레콤·데이콤·파워콤)는 47일이 각각 걸렸다.
공정위가 당장 심사보고서를 SKT에 발송한다 해도 최종 결정까지는 시간이 더 걸린다. 심사보고서는 실무자 판단을 담은 `잠정 결론`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심사보고서를 발송하면 해당 기업에 대한 검토를 거치고 나서 이후 공정위가 전원회의를 열어 최종 결론을 내린다. 공정위의 최종 결론을 바탕으로 미래창조과학부가 최종 승인 여부를 결정한다.
◇“더 검토해야 한다”는 공정위…업계·소비자 피해 우려도
공정위는 여전히 검토할 게 남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어떤 부분을 얼마나 검토해야 하는지는 함구하고 있다. 정 공정위원장은 3월 22일 한 언론사 인터뷰에서 “실무 부서에서 경쟁 제한성 검토를 어느 정도 마무리했다”면서 “조만간 심사보고서가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업계가 늦어도 4월에는 심사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한 이유다.
정 위원장은 이달 12일에는 “심사보고서가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다”면서 “자료보정 기간을 빼고 120일 이내에서 처리하도록 돼 있다”고 덧붙였다. “조만간 심사보고서가 나갈 것”이라던 두 달 전 입장보다 오히려 한 발 물러난 모습이었다.
공정위 심사가 오래 걸리는 표면적인 이유는 이번 기업결합이 통신, 케이블TV, IPTV 등 다양한 시장이 관계된 복잡한 건이기 때문이다. 심사 착수 당시 공정위 한 고위 관계자는 “시장 획정도 해야 하고 방송부터 통신까지 여러 가지가 걸려 있어 심사가 오래 걸릴 수 있다”고 해명했다.
통신업계의 관심을 끌던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의 `2015년 통신시장 경쟁상황 평가`가 3월 중순에야 나오고, 수차례 자료보정으로 검토할 자료가 늘어난 것도 심사가 장기화되는 이유로 꼽힌다.
이런 상황을 모두 고려해도 심사에 6개월이나 걸리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시각이 있다. `다른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배경`을 두고 다양한 추측이 제기되고 있다. 세계이동통신사업자협회(GSMA)는 “세계 이동통신 업계 M&A는 다른 산업보다 더딘 심사, 이중 심사로 사업이 1년 이상 위축되고 있다”면서 “차별성 규제는 경쟁을 왜곡하고 혁신을 억압해 소비자 복지를 침해한다”고 지적했다.
유선일 경제정책 기자 ys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