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이 만난 생각의 리더]<50> 한국 최장수 CEO 안경수 노루페인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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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수 회장은 “참된 CEO는 조직능력과 리더십 발휘, 정도경영을 실천해야 한다”며“CEO가 미래를 개척하지 않고 딴짓 하면 기업이 망한다”고 강조했다.사진=윤성혁기자 shyoon@etnews.com

안경수 노루페인트 회장은 이 시대의 흔치 않은 글로벌 경영인이다.

오너가 아닌데도 임원 경력만 32년째이고, 이 가운데 사장과 회장으로 23년째 일하고 있는 국내 최장수 최고경영자(CEO)다. 한국인으로서 일본 정보기술(IT) 대기업의 등기임원에 오른 사람으로는 그가 유일하다. 한국과 일본 기업, IT와 비IT 기업을 넘나들었다. CEO로 일한 기업마다 엄청난 경영 성과를 내 `경영 구루(Guru)` `숨은 경영의 신(神)`으로 불린다.

그는 경기고와 서울대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퍼드대 대학원에서 재료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4년 대우전자 이사로서 컴퓨터사업본부장을 맡았다. 이후 다우기술 대표이사로 일하다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스카우트로 삼성그룹 회장비서실 정보통신 자회사 담당이사, 운영2팀장으로 일했다. 삼호물산 사장, 효성그룹 종합조정실 부사장, 한국 후지쯔 사장과 회장, 일본 후지쯔 경영집행역과 한국 후지쯔 회장을 역임했다. 한국인으로서 후지쯔 경영집행역을 맡은 이로는 그가 처음이다. 소니코리아 회장 겸 소니 기업간전자상거래(B2B) 솔루션 무선사업본부장을 역임했고, 2010년 7월부터 노루페인트 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현재 한국공학한림원 정회원이다.

안 회장을 3월 8일 오후 3시 경기 안양시 노루페인트 회장 접견실에서 만났다.

-CEO의 리더십이란 무엇인가.

▲조직 능력과 리더십 발휘, 정도(正道)경영을 실천하는 리더십이다. CEO가 미래를 개척하지 않고 딴 짓을 하거나 약삭빠른 짓을 하면 기업이 망한다. CEO는 현장경영을 해야 한다.

-최장수 CEO의 비결이 있나.

▲월급 노예가 되지 않는 것이다. 주위 사람들에게 “절대로 월급의 노예가 되지 마라”고 말한다. 다른 기업에서 “돈을 더 줄 테니 오라”고 해도 가지 않았다. 사표를 낼 때도 어떤 일을 했고 무엇 때문에 그만둔다고 명확히 했다. 정치인이 정치철학을 지녀야 하듯 샐러리맨도 경영철학과 경영관을 지녀야 한다. 그게 자산(資産)이 돼 다음 자리, 또 다음 자리가 생겼다. 직장인은 조직에 기여하지 못한다면 항상 떠날 준비를 해야 한다.

-대기업 임원 자리는 왜 그만뒀나.

▲1983년 여름 대우그룹에 부장으로 들어가 이듬해 1월 이사로 승진해 대우전자 컴퓨터사업본부장으로 일했다. 3명이 컴퓨터 사업을 시작했다. 교육용PC를 팔던 시절이었다. 3~4년 열심히 했더니 대우통신보다 매출이 더 많았다. 어느 날 김우중 회장이 컴퓨터 사업을 가지고 대우통신으로 가라고 지시했다. 김 회장에게 “앞으로 디지털시대가 온다. 디지털을 하는 컴퓨터사업부를 통신으로 옮기면 대우의 미래가 어둡다”며 반대했다. 김 회장이 거듭 젊은 이사에게 간곡히 부탁하는데도 “못한다”고 했다. 그래서 사표를 냈다.

-그 뒤 어디로 갔나.

▲1989년 이건희 삼성 회장의 스카우트로 그룹회장실 정보통신기획담당 이사로 갔다. 당시 이 회장은 “21세기는 정보통신시대”라며 이 분야를 적극 육성했다. 이듬해 상무로 승진했다. 1년여 동안 열심히 노력해 `정보통신을 중심으로 한 삼성21세기 플랜`을 만들었다. 이 회장이 “당신이 계획을 세웠으니 경영도 하라”고 지시해 회장실 운영2팀장으로서 그룹 내 7개 IT회사를 코디네이션(Coordination)했다. 삼성그룹에서 일하면서 많은 걸 배웠다. 경영은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다. 종합경영이 중요하다는 걸 절감했다. 거스 히딩크의 축구 원리를 보면 이해가 쉽다. 축구는 11명이 뛰는데 만약 우리 팀이 22명이라면 이길 확률이 높다. 11명이 상대보다 2배로 뛰면 승리할 수 있다. 삼성에는 이 회장이 말한 `업(業)의 개념`이란 게 있다. 정보컴퓨터사업본부장으로 있을 때 전무 승진을 앞두고 그만뒀다. 쉬고 있는데 삼호물산에서 연락이 왔다. 당시 삼호물산은 법정관리 상태였다. 2년간 사장으로 일하면서 적자를 흑자로 만들었다. 법정관리의 모범사례로 인정받았다. 그 후 효성그룹과 한국후지쯔로 가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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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윤성혁기자 shyoon@etnews.com

-늘 소신에 충실했나.

▲후지쯔를 그만둘 때 나는 해외총괄이었다. 사장이 주주총회에서 해외 매출 비중을 3년 후 50대 50으로 늘리겠다는 비전을 발표했다. 당시 매출 비중은 국내 70, 해외 30이었다. 일본은 주총 참석자가 수천명이다. 구체적인 방안을 준비해 사장에게 보고하면서 “주주들과 한 약속을 못 지키면 경영자로서의 자질이 없다. 1년 안에 승부를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장의 태도가 모호했다. 이듬해 3월 구체안을 다시 보고했다. 사장이 적당히 넘기려 했다. 주총에 불참하고서 사표를 냈다.

-소니는 어떻게 갔나.

▲그 일이 일본에서 큰 화제가 됐다. 당시 소니 회장이 미국인인데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그룹 B2B사업의 책임을 맡아 달라고 해서 갔다.

-글로벌 기업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기술과 경영, 고객 관계를 축적하지 못하면 히든 챔피언(Hidden champion)이 될 수 없다. 일본 교세라는 부품업체지만 세트업체를 리드한다. 우리는 세트업체에 종속된 슬레이브(Slave) 모델이다. 이런 식이면 수십년을 해도 안 된다. 무언가 축적해 새롭게 진화해야 한다.

-한국과 일본 기업의 차이점은.

▲일본은 인사 제도로 인해 리더십이 약하다. 일본은 수직 계열이고 순혈주의다. 사장은 자기 사람을 발탁해 영역(나와바리)을 형성한다. 새로운 일은 안하고 하던 일만 답습한다. 한국은 리더십이 강하다. 근성도 있다. 인사도 일본과 다르다. 삼성의 경우 상호 보완하기 위해 본부장이 상경계 출신이면 부본부장은 이공계 출신을 배치한다. 하지만 내공이 부족하다.

-수출은 늘어도 일자리는 안 늘어나는데.

▲그럴 수밖에 없다. 지난해 A전자 스마트폰 생산량은 4억2000만대 정도였다. 그 가운데 국내 생산량은 4000만대 정도다. 스마트폰 조립 부품을 해외 공장에 보내면 모두 수출로 잡힌다. 수출은 늘어도 국내 일자리는 안 는다. 이른바 고용 없는 성장이다.

-대·중소기업의 동반 성장은 가능한가.

▲동반 성장과 관련해 에코 시스템(Eco system)을 강조한다. 국가가 생태계를 잘 만들어야 한다. 지역 창조경제혁신센터는 에코 시스템(Eco system)을 만드는 일이다. 혁신센터의 운영 주체는 대기업이다. 대기업이 잘못하면 관련 기업들이 어렵게 된다. 영속성 있게 주체들이 잘 운영해야 한다. 정부가 생태계를 잘 만들어도 대기업이 투자를 하지 않거나 능력 없는 농부(기업)가 농사를 지으려고 한다면 이런 모순도 없다.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모두 공존공영의 정신을 지녀야 한다. 과거에는 혼자만 잘하면 1등을 했다. 지금은 내 것과 남의 것을 합쳐야 살아남는다. 다만 강요한 생태계는 일시적이다.

-정부가 벤처 활성화에 주력하는데.

▲벤처는 고수익·고위험 사업이다. 성공률이 아주 낮다. 우리는 창업을 너무 쉽게 생각한다. 취직이 안 되니 벤처를 한다는데 그렇게 하면 다 망한다. 미국이라면 어림없는 일이다. 미국은 세계 아이디어 집합소다. 한국은 우리만의 기술로 도전한다. 미국은 A로 실패하면 A+B 또는 변형시킨 새 모델로 재도전한다. 아니면 흡수 합병하는 시스템이다. 미국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투자를 받는데 한국의 은행에서 융자받기보다 더 까다롭고 엄격하다. 미국에서 실패한 사람은 패자부활 대상이 아니다. 벤처 교육과 패자부활, 대기업과 중소기업 관계를 복합 개념으로 이해하지 않고 단편 개념으로 정책을 추진하면 성공은 요원하다. 척박한 땅에 벼를 심어 농사를 망쳤는데 농협에서 대출받아 농사를 지으라고 하면 어떻게 되겠나. 정책이 철학적이고 모호하면 안 된다. 벤처만능주의를 경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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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윤성혁기자 shyoon@etnews.com

-제조업은 쇠퇴기인가.

▲제조업은 인간이 있는 한 존재한다. 제조업 강국인 독일의 이웃이 스위스다. 스위스는 시계로 유명하다. 스위스는 시계를 창조 개념으로 만든다. 제조업은 `업(業) 개념`을 어떻게 재정리할지에 몰두해야 한다. 원시시대에는 니드(Need) 베이스였지만 지금은 원트(Want) 베이스다. 사용자의 편의성을 극대화한 유저 인터페이스(UI) 영업을 해야 한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국은 화이트칼라 생산성이 미국의 절반 수준이다. 화이트칼라의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시설투자의 경우 정부나 기업에서 지표를 정해 가동률을 발표한다. 하지만 정보통신기술(ICT) 투자 가동률에는 누구도 관심이 없다. 국가 차원에서 ICT 투자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규제 완화에 대한 의견은.

▲미국은 직업이 3만개, 일본은 2만개, 한국은 1만4000여개다. 우리는 규제가 많아서 직업 수가 적다. 인터넷은 공유경제다. 한계 비용이 들어가지 않는다. 시대에 맞지 않는 불합리한 규제가 많다. 대표적인 게 우버다. 시대가 변하면 규제도 변해야 한다. 앞으로 규제는 포지티브(Positive)에서 네거티브(negative) 시스템으로 개선해야 한다.

-좌우명과 취미는.

▲좌우명이라면 `올바르게 노력하자`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노력 않고 좋은 점심을 먹으려고 하면 안 된다. 누구나 수신(修身)을 잘해야 한다. 고교와 대학시절에 야구선수로 뛰었다. 취미는 책을 통해 새로운 세상과 만나는 것이다. 분야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잡독(雜讀)을 한다. 한 달에 10권 이상 읽는다. 집무실은 경영서와 인문학 서적들로 꽉 찼고, 탁자 위에도 책이 수북이 쌓여 있다.

그는 노루페인트에 회장으로 취임해 매출을 대폭 늘렸다. 노루페인트는 매년 무교섭 임금 협상을 하고, 12년 연속으로 국가품질경쟁력 우수기업에 뽑혔다. 2013년에는 명예의 전당에 헌정됐다. 직원과 자주 어울려서 한 달에 소주 500잔 이상은 마신다고 한다. 안 회장은 주위의 만류에도 6월 말로 물러날 계획이다.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나 창조경제 구현에 기여하고 싶다고 했다. 인터뷰가 길어지자 메모가 들어왔다. 그의 지혜와 글로벌 경륜이 국가와 국민 이익 증대에 크게 기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인터뷰를 끝냈다. 그는 어떤 선택을 할까.


이현덕기자 hd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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