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슈미트 구글 알파벳 회장이 인공지능(AI) 프로그램 알파고와 이세돌 9단 대국을 ‘인류의 승리’로 평가했다. 전승을 장담하던 이 9단은 이전과 달리 한 발 물러서면서도 “바둑의 아름다움과 인간의 가치는 떨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슈미트 구글 알파벳 회장은 8일 광화문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경기 결과와 상관없이 이번 대국은 인류의 승리가 될 것”이라면서 “AI와 머신러닝 기술이 발전할 때마다 인간은 더욱 똑똑해지고 유능해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슈미트 회장은 머신러닝 등 기술 발전으로 암흑기를 겪고 있던 AI 분야가 새로운 인류 발전 가능성으로 떠올랐다는 감회를 전했다. 빠른 컴퓨팅과 새로운 알고리즘 덕분에 AI의 발전은 가속됐다. 수백 가지 언어로 자동 번역이 가능하고 구글포토로 사진을 자동 분류하는 점을 사례로 들었다.
슈미트 회장은 “평생 컴퓨터 과학자로 살았다. 1960년대에 AI의 기대감이 컸지만 그 뒤 30년 동안 ‘겨울’을 보내야 했다”면서 “평생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오늘날 AI 기술이 매일 다양한 영역에서 이용된다”고 소회를 밝혔다.
알파고 개발사 딥마인드가 AI 분야에서 거둔 성과도 격려했다. 슈미트 회장은 “친구 세 명이 세운 딥마인드가 강화학습이라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했다”면서 “이로써 불가능한 게 가능해졌고, 세계 최고 바둑챔피언에게 도전장을 내게 됐다”고 덧붙였다.
이세돌 9단은 다소 긴장된 모습을 보였다. 지난 기자간담회에서 자신한 5대0 완승이 어려울 수 있다며 조심스러워했다. 알파고 실력이 예상외로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이 9단은 “여전히 자신감은 있다”면서 “그러나 알파고가 어느 정도 직관 모방이 가능해져서 크게 차이가 나지 않게 됐다. 5대0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인간이 생각하는 수는 최대 1000수다. 컴퓨터는 100만, 1000만수를 생각한다. 여기에 알파고가 요즘 생각의 폭을 상당히 줄여서 (대국 상황이) 험난하다”고 토로했다.
이 9단은 승패 예상을 묻는 질문에 “결국 언젠가는 인간이 패하겠지만 바둑의 가치가 떨어지진 않을 것”이라면서 “좋은 바둑, 아름다운 바둑으로 보답하겠다”고 웃어 보였다. 그는 “기계(인공지능)가 바둑과 인간의 아름다움을 이해하고 두는 것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데미스 하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최고경영자(CEO)는 바둑을 인간이 만든 최고 게임으로 평가하면서 대국에 자신감을 보였다.
하사비스 CEO는 “바둑은 우아한 최고의 직관 게임”이라면서 “딥마인드가 관심을 두는 것은 경우의 수가 10의 170승에 이르는 바둑의 복잡성을 해결하기 위해 계산력과 직관력이 중요하다는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알파고는 지치지 않고 겁먹지 않는다”면서 “학습을 통한 알파고의 능력 향상에서 한계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힘주어 말했다.
알파고가 인류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나타냈다. 범용 알고리즘을 개발, 난제로 여겨지는 여러 영역에도 적용이 가능하다. 빅데이터 분석으로 인간이 발견하기 어려운 법칙 발견과 예측도 가능하다. 의료·보건 분야에서는 1차 관심사다.
하사비스 CEO는 “알파고가 아주 강력하면서도 유연한 학습 알고리즘으로 난제 해결에 기여한다는 점을 세계에 알리고 싶다”면서 “알파고는 인간이 만든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창의성을 증명하는 길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대국은 9일 오후 1시부터 시작된다. 11일과 14일을 제외하고 9일부터 15일까지 총 5회에 걸쳐 진행된다.
이호준 SW/콘텐츠 전문기자 newlevel@etnews.com, 오대석기자 od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