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계좌를 개설하는 것뿐인데 직장 이름이나 전화번호는 물론이고 자금출처까지 왜 필요하죠.”
비대면 계좌개설 때 금융사가 직장정보나 자금출처까지 요구하는 사례가 늘면서 개인정보 공개를 놓고 소비자 불만이 늘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올해부터 비대면 계좌 개설 때 한층 강화된 고객확인제도(EDD:Enhanced Due Diligence)를 운영하면서 금융사가 개인 금융 정보를 요구하는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2일 자본시장업계에 따르면 일부 금융사는 비대면 계좌개설 때 소비자에게 개인정보를 요구한다. 실명 정보는 물론이고 직업, 직장, 자금출처 등을 묻는다. 금융거래가 아닌 단순 계좌개설이지만 올해부터 금융당국이 실명확인 절차를 강화했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이 올해부터 비대면 계좌 개설 고객에 EDD 적용을 일선 금융기업에 주문한 탓이다. 금융감독원 규정에 따르면 영업점을 방문한 고객이 계좌를 개설할 때는 계좌 개설에 필요한 개인 실명번호, 신분증, 사진 등을 요청한다. 이른바 고객확인의무(CDD:Customer Due Diligence)다. 계좌 개설이 끝난 후 위험도 평가가 이뤄지고 고위험군 평가 고객은 향후에 EDD 정보를 추가로 받도록 돼 있다. 계좌 개설 당시에는 CDD 정보만 입력하면 된다.
하지만 비대면 실명확인 계좌개설 때는 처음부터 EDD를 요구한다. 소비자는 금융사에 계좌개설 신청 당시부터 직업이나 개인사업자 업종, 거래 목적과 거래자금 원천 내역 등을 공개해야 한다. 더불어 금융기관이 자금세탁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한 사항은 추가로 요구한다.
금융 소비자는 단순 계좌 개설에 직장 전화번호와 자금출처까지 요구받는 것이 불편할 수밖에 없다. 특히 개인 금융정보가 다른 금융사나 기관 등에 노출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단순 비대면 계좌개설 소비자를 잠정적인 실명확인 위반자로 분류한다는 데도 불만을 제기한다. 한 금융소비자는 “비대면 거래를 하는 것만으로도 잠정 위험인물로 평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사도 혼란스럽긴 마찬가지다. 금융사마다 어느 수준으로 개인정보를 요구할지 판단하기가 어렵다는 게 일선 서비스 개발자의 고민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감독 당국은 EDD에 따라 고객 실명확인을 강화하라는 공문을 보냈지만 증권사마다 요구사항이 다르다”며 “비대면 계좌개설 서비스에 따른 규정 준수를 놓고도 내부에서조차 혼선이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당국이 금융권에 업계 자율을 강조하면서 책임을 금융사에게 떠넘긴다는 지적도 있다. 업계 다른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금융사에 자율을 보장한다고 하면서도 의무 사항을 늘려 위반 시에는 제재를 하겠다고 강조한다”며 “자율을 핑계로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아닌지 의문스럽다”고 말했다.
이경민 코스닥 전문기자 km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