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이 만난 생각의 리더]<47>미래를 상상하는 미래학자 서용석 박사(한국행정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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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용석 박사는 “미래는 불확실해서 다양한 가정 아래 대비하는 게 최선”이라며 “국가가 사이보그와 공존하는 시대에 유전자 정보 유출과 해킹 같은 어두운 미래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윤성혁기자 shyoon@etnews.com

미래학자 서용석 박사는 세계 미래학 대부(代父)로 불리는 짐 데이터 미국 하와이대 교수의 한국인 1호 제자다. 정치학 박사이자 미래학자로서 2004년 짐 데이터 교수와 공동으로 한류(韓流) 관련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짐 데이터 교수는 “꿈과 상상이 지배하는 미래의 드림 소사이어티(Dream society)를 한국이 이끌 것”이라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말했다. 서 박사는 현재 한국행정연구원 연구위원, KAIST문술미래전략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서 박사를 2월 16일 오전 10시 서울 강남의 한 호텔 커피숍에서 만났다. 미래를 알고 싶은 건 인간 본능이다. 현실로 등장한 저출산과 고령화, 직업 변화, 미래 삶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서 박사는 “미래학은 하나가 아닌 복수의 새로운 대안(代案)을 찾는 것”이라며 “다양한 가정(假定) 아래 어두운 미래 불확실성을 줄여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구가 계속 줄면 한국이 지구상에서 소멸할 수도 있나.

▲출산율이 지금과 같이 낮다면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추세라는 것은 언제나 변한다. 세월이 흐르면 출산율이 높아질 수 있다. 인구구조 변화는 ‘성비(性比)’와 ‘연령대별 구성비’ 같은 점에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자정(自淨)작용을 한다. 인간이 자정능력을 다하지 못하면 자연이 인간을 대신해 그런 일을 한다.

-한국의 인구 변화 추세는.

▲현재는 출생자가 사망자보다 많다. 2027년까지는 출생자와 사망자가 균형을 이루고 이후부터는 사망자가 출생자보다 더 많은 저출산, 다사망(多死亡)시대가 등장한다. 2030년부터는 매년 78만여명이 자연사(自然死)할 것이다. 2010년에는 85세 이상이 37만명이었다. 2060년이면 450여만명으로 늘어난다. 65세 이상은 전체 인구의 40%에 달한다. 2명 중 한 명은 지하철을 무료로 타는 세상이다. 소수 젊은 층이 다수 노인을 부양하는 시대다. 한국은 저출산과 고령화가 가장 빠른 나라다. 2003년 출산율 1.18명에서 2015년 1.20명으로 0.02명 증가했다. 정부는 이 기간에 66조원을 투입했다. 인구 대체율 2.1명에 크게 밑도는 수준이다. 인구구조는 불가역성이 강해 한 번 추락하면 회복하기 어렵다. 보통 60년 지체 효과가 있다.

-노인이 시대를 주도하나.

▲고령화시대에는 노인 지지를 못 받으면 집권(執權)도 못한다. 정치권은 노인 이익 대변에 적극 나설 것이다. 노인을 위한, 노인에 의한, 노인의 정치가 현실로 등장한다. 세대 간 불균형은 불가피하다. 일본은 고령화에 따라 젊은 층에 가중치를 줘야 한다는 정책 제안까지 나왔다.

-100세 시대가 멀지 않았는데.

▲100세 시대가 축복이긴 하지만 준비가 안 된 100세 시대는 재앙이다. 고령화로 삶의 질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어떻게 삶을 마감할지 이른바 ‘죽음의 질’에 관한 관심이 높다. 정부나 개인이 답을 찾아야 하는데 쉽지 않다. 고령화시대는 장의사나 장례 지도사, 호스피스, 죽음 설계사 같은 실버산업이 늘어날 것으로 예측한다.

-인구 감소로 인해 어떤 문제가 있나.

▲인구가 줄면 경제 규모도 줄어든다. 대신 연금, 보험 같은 사회복지 지출은 증가한다. 우리가 보듯이 청년고용이나 정년연장, 일자리를 둘러싼 세대 간 갈등이 심해질 수 있다. 고령화 시대에 고령자들이 더 많은 경제활동을 해야 하지만 청년도 일자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과연 고령자에게 일할 자리가 있을지 의문이다. 인류가 해결해야 할 난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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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윤성혁기자 shyoon@etnews.com

-불확실한 미래를 어떻게 준비하나.

▲미국 경제학자 앨버트 허시먼은 ‘엑시트, 보이스, 로열티(exit, voice and loyalty)’라는 저서에서 구성원의 선택지는 셋이라고 했다. 탈출하거나 목소리를 내거나 충성하는 것이다. 요즘 헬 조선이란 말이 유행이다. 과거에는 청년들이 목소리를 냈다. 요즘은 그런 게 없다. 청년들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 미래는 복수로 표현한다. 미래는 불확실해서 구체적으로 단언(斷言)할 수 없다. 예측하는 순간 굴절한다. 다양한 가능성을 갖고 미래 불확실성을 줄여 나가야 한다.

-현재 지구상에 직업은 몇 종류나 되나.

▲미국은 약 3만개, 일본은 2만개, 한국은 1만개가 조금 넘는다. 직업 종류가 많다고 좋은 건 아니다. 문제는 양질(良質)의 일자리다. 직업이 없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게 아니다. 대우 좋고 안정적인 일자리 구하기가 어렵다는 게 문제다. 미국은 소매업 종사자가 가장 많다. 우리도 비슷한 상황이라고 본다. 하지만 미래에 가장 먼저 사라질 직업이다.

-국내 직업 변화 추이는.

▲우리 직업은 산업 변화와 함께 변했다. 농업사회, 산업사회, 정보화시대를 거치면서 경공업, 중공업, 정보통신기술산업 분야 직업이 늘었다. 다음 세대인 후기정보화시대에는 산업화나 정보화 시대와 달리 대량 고용시대가 오지 않을 것이다. 이건 다수 미래학자들의 전망이다.

-사라지는 직업은.

▲단순 반복 업무를 하는 직업이다. 소매점 점원이나 전화 상담원, 약사, 변호사, 세무사 같은 직업이다. 택시나 버스 운전자도 자율차 등장으로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앞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직업도 기계가 대체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게 판사(判事)다.

-그게 가능한가.

▲지난해 7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세계미래학회 콘퍼런스에 참석했다. 미국 판결시스템은 2~3년 걸리는데 빅데이터를 이용해 인공지능이 판결하면 3~4분 안에 끝낸다고 한다. 미국 판사와 변호사들이 한 이야기인데 기계 판결을 더 신뢰한다고 한다.

-로봇이 인간의 노동시장을 얼마나 대체할 것으로 보나.

▲단순반복 업무는 물론 인간만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던 일을 로봇과 같은 기계가 대체할 수 있다. 경제학자 프랭크 레비와 리처드 머네인은 2004년 ‘노동의 새로운 분류’라는 저서에서 기계가 할 수 있는 일과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을 분류한 바 있다. 당시 자동차 운전은 당분간 기계가 대체할 수 없다고 단정했다. 그러나 10여년도 안 돼 구글은 자율자동차 운행에 성공했다. IBM의 슈퍼컴퓨터 왓슨은 퀴즈에서 사람을 이겼다. 진화한 왓슨은 조만간 의사나 변호사를 대체할 수 있다. 수년 전만 해도 이 일은 기계 영역이 아니었다.

-일자리를 기계에 빼앗기면 인간은 뭘 하나.

▲인간의 본질은 “유희(遊戱), 즉 노는 것”이라고 네덜란드 철학자 요한 하위징아가 저서 ‘호모 루덴스’에서 말했다. 미래 인간은 일은 기계에 맡기고 풍요를 누리면서 예술이나 문화 활동만 하면 된다. 고대 로마에서 귀족은 노예에게 일을 시키고 자신들은 시나 짓고 예술을 하며 놀았다. 그 당시 예술은 ‘유희’로부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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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윤성혁기자 shyoon@etnews.com

-인간이 할 수 있는 영역은.

▲그동안 창작은 인간 영역이라고 생각했다. 이도 인공지능으로 알고리즘을 응용해 창작을 할 수 있다. 창작이란 것도 기존을 변형하거나 응용하는 일이다. 기계가 인간을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은 감수성이나 감성을 활용하는 분야다. 심리상담사 같은 직업이다.

-인간이 근육이나 지능을 기계에 의지할 경우 기능이 퇴화하지 않나.

▲우리가 스마트폰을 사용하다 보니 전화번호를 잘 기억하지 못한다. 미디어미래학자 마셜 매클루언은 “문자와 미디어 기술 발전이 인간이 본래 갖고 있던 기능을 퇴화시켰다”고 주장했다. 시각과 청각 중심으로 미디어가 발전하면서 인간의 고유 기능인 촉각이 퇴화했다는 것이다. 근육이나 지능을 기계에 의지할 경우 인간 기능이 퇴화한다. 과학기술 분야 연구개발(R&D)을 우리는 산업이나 경제에 치중한다. 미국은 줄기세포나 인공장기 개발 같은 윤리문제도 연구한다. 우리도 윤리문제를 연구해야 한다.

-미래의 개인정보 유출이나 해킹 같은 역기능은 어떻게 막아야 하나.

▲게놈 지도 같은 의료 유전자 정보를 해킹할 수 있다. 심각한 문제다. 역기능 방지를 위한 대비를 해야 한다. 1995년 일본에서 ‘공각기동대’라는 SF애니메이션 만화가 나와 전 세계에 충격을 줬다. 인기도 대단했다. 인간의 뇌가 통신 네트워크 일부로 작용하는 어두운 미래사회에서 다른 사람의 기억이나 생각을 조작하고 변경하는 범죄를 막고 해결하는 정보기관의 활동상을 그린 만화다. 국가가 어두운 미래에 적극 대비해야 한다.

-좌우명과 취미는.

▲좌우명이라고 할 게 없다. 취미는 상상화 그리기다. 그림 대회에서 대상을 비롯해 상을 받아 전시도 했다. 다소 엉뚱해서 그림 주제가 걸어 다니는 나무, 땅속의 개미 모습이었다. 새로운 대상을 찾아다니는 걸 좋아했다.

서 박사는 고교시절 미국으로 건너가 대학에서 동양사를 전공하고 일본에서 국제정치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하와이대에서 ‘후기 정보사회’라는 논문으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곳에서 앨빈 토플러와 더불어 세계 미래학 대부로 불리는 짐 데이터 교수를 지도교수로 만나 ‘화성정착’이란 과목을 수강하면서 미래학을 공부했다. 한국인 제자 1호로, 2004년에는 짐 데이터 교수와 공동으로 한류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다. 2006년에 KT경제경영연구소 미래사회연구센터 창립 멤버로 출발했다. 2008년에 한국행정연구원으로 자리를 옮겨 현재 연구위원이자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겸임교수, 기획재정부 중장기전략위원, 서울시 미래준비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3년부터는 에티오피아를 비롯한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행정발전 컨설팅과 교육을 하고 있다.


이현덕 대기자 hd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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