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이 만난 생각의 리더]<46>제2의 반도체혁명 리더 장준연 KIST 차세대반도체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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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연 소장은 “새로운 개념, 새로운 방식의 차세대반도체를 개발해 국가 경제성장에 기여하겠다”며 “연구기관에 연구비가 없으면 기술개발이나 인력양성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사진=윤성혁기자 shyoon@etnews.com

장준연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차세대반도체연구소장을 2월 5일 오전에 만났다. 중국 반도체 굴기 선언으로 위기 경고등이 켜진 한국 반도체산업 대응책이 궁금했다. 장 소장은 1990년부터 반도체 외길만 걸었다. 국내외 반도체산업의 겉과 속을 손바닥 보듯 샅샅이 안다. 2009년 세계 최초로 스핀트로닉스 소자를 개발한 주역이다.

KIST는 정문부터 보안관리가 엄격했다. 한국과학 기술의 메카로서 1급 국가보안 시설인 까닭이다. 정문 앞 사무실에서 직원이 방문 목적을 듣고 전화로 담당자에게 사실 여부를 확인했다. 그다음 신분증을 맡기고 출입카드를 받았다. 정문 차량 차단기도 출입카드를 단말기에 입력해야 올라갔다. 연구소 곳곳에는 CCTV를 설치했으며, 사무실 출입도 출입카드 없이는 불가능했다.

KIST 본관은 1960년대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한국건축의 대표 양식이다. 본관 앞에는 창립50주년 기념식을 알리는 대형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제2의 반도체 기술혁명을 주도하는 차세대반도체연구소는 반도체공장 축소판이었다. 설 연휴로 일반 기업들은 파장 분위기였지만 KIST는 그런 분위기를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오히려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장 소장 안내로 내부시설을 돌아봤다. 방마다 반도체장비를 설치해 연구원들이 신기술 개발에 열중했다. 유리로 밀폐한 클린룸에서는 방진복을 입은 연구원이 부산하게 움직였다. 반도체 장비 가운데 클러스터 MBE시스템은 세계에서 단 하나뿐이라고 한다. 반도체 소자를 제작하는 이 장치는 한국산 1개, 프랑스산 3개, 미국산 1개인 박막 제작용 MB를 5개 연결한 제품이다. 10년 전 당시로는 싼 가격인 20억원에 구입했다고 설명했다.

장 소장은 “기술혁신을 못하면 우리 주력 제품인 메모리반도체 주도권이 중국에 넘어갈 수 있다”며 “최대 단일 효자 품목인 메모리반도체 기술은 중국과의 격차가 1년 정도로 국가 장래가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장 소장은 “공공연구기관에 연구비를 지원해 차세대 혹은 차차세대 반도체 개발로 제2의 반도체 기술혁명을 이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반도체산업 위기의 본질은 무엇이라고 보나.

▲우리는 그동안 메모리 반도체에 주력했다. 로직 쪽은 손을 대지 못했다. 휴대폰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도 칩 설계는 애플이 한다. 국내 기업은 공정만 한다. 실리콘반도체 집적도를 높이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높이 쌓는 것과 작게 만드는 것이다. 이 기술은 새로운 게 아니라 기존의 기술을 최적화하는 방식이다. 10나노미터가 한계라고 본다. 7나노미터는 실리콘으로 만들 수 없다. 실리콘을 이용한 반도체기술은 이제 한계에 도달했다. 실리콘반도체 기술의 끝이 왔고, 위기 시작이다.

-반도체 업계가 이런 점을 모르나.

▲안다. 알지만 기업들은 당장 돈 버는 일만 연구한다. 장기 연구보다는 1~2년이 고작이다. 새로운 패러다임이니 새로운 소재, 롱타임(long time) 연구는 기업에서 절대 못한다.

-해법은 무엇인가.

▲실리콘반도체와 다른 미래기술을 연구해야 한다. 실리콘반도체는 4족 원소이지만 3족과 5족 원소를 결합한 차세대화합물 반도체는 물성(物性)이 좋다. 빛을 전기로, 전기를 빛으로 바꾼다. 이 제품은 장점이 많지만 제조원가가 비싼 게 단점이다. 양산 시 수율이 낮다. 싸게 만드는 기술이 없다. 기존 라인 하나를 바꾸는데 10조원이 필요하다. 만약 10개 라인을 교체한다면 100조원을 투입해야 한다. 기술발전은 돈과 사람에 비례한다. 기술발전 주기(週期)는 갈수록 빨라진다. 중국은 반도체 굴기를 선언했다. 중국이 반도체를 자급자족한다면 우리에게는 엄청난 타격이다. 인텔도 메모리사업에 뛰어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와 기업이 역할 분담을 해야 한다. 산업체는 실리콘반도체 집적도를 높이고 반도체연구소나 학계는 차세대 혹은 차차세대 반도체를 개발해야 한다.

-세계 반도체 시장 규모는 얼마로 보나.

▲세계 시장은 3000억달러 정도로 본다. 그 가운데 우리 기업이 1, 2위를 차지하는 메모리반도체 시장은 전체의 25%인 700억달러 정도다. 삼성이 시장점유율 45%로 세계 선두를 달리고, 2위는 SK하이닉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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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윤성혁기자 shyoon@etnews.com

-중국이 왜 메모리반도체를 적극 육성하나.

▲메모리반도체 최대 소비 시장이 중국이다. 세계 생산량의 60% 정도를 중국이 소비한다. 중국 입장에서는 당연히 기술과 자본을 투입해 자체 생산하려고 할 것이다.

-중국과 한국의 기술 격차는 얼마로 보나.

▲메모리반도체의 경우 1년 정도다. 중국은 세계 3위 D램 업체인 미국 마이크론을 인수하려고 했지만 미국이 전략산업이라며 승인하지 않았다. 만약 중국이 마이크론을 인수했다면 기술 격차는 1년 이내로 줄어들었을 것이다. 중국은 상당한 기술을 축적했다. 중국은 로켓에 들어가는 칩도 생산한다. 이 칩은 외국에는 절대 안 판다. 기술 유출을 우려해서다.

-중국은 얼마를 투자하나.

▲100조원 이상을 투자한다. 우리와 비교할 수 없다. 해외에서 기술 인력도 적극 유치한다.

-KIST가 차세대반도체연구소를 설립한 이유는.

▲국가 미래의 신성장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다. 과거 KIST는 반도체기술을 연구했다. 연구소에서 개발한 D램을 기업체에 넘겨 메모리반도체 강국을 이룩했다. 1978년에 당시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가 반도체기술 시연을 보기 위해 이곳을 방문한 바 있다. KIST에 미래 신성장산업 육성을 위해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논의한 결과 지난해 1월 차세대반도체연구소를 발족했다. 연구소는 융합 연구를 통해 정보처리 속도는 10배, 전력 소모는 10분의 1로 줄여서 현재보다 100배 우수한 차세대반도체를 개발하는 것이 목표다. 기업이 하는 실리콘반도체는 연구를 안 한다. 현재 가격이 싼 실리콘반도체 위에 화합물반도체를 올리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내년 말께 완성할 예정이다. 남과 차별화한 독창적 기술 개발로 차세대반도체 시장에서 기술 주도권을 확보할 계획이다. 반도체 재료를 바꿔도 괜찮다는 유인(誘引)기술이다. 우리가 세계 최초로 기술을 개발하면 로열티도 받을 수 있다. 우리가 한 해 애플에 내는 로열티가 1조원을 웃돈다.

-반도체연구소의 미래 연구 과제는.

▲KIST 창립 50주년을 맞아 2066년까지의 모토를 ‘MIRACLE(기적)’로 정했다. MIRACLE은 현재 KIST가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분야의 앞 글자를 딴 것이다. 차세대 반도체(Material), 양자컴퓨팅과 나노 신경망 모사(模寫)(Information), 인공지능 로봇(Robotics), 스마트 팜과 천연물을 포함한 미래농업혁명(Agriculture), 신재생에너지와 에너지 네트워크(Carbon), 치매 진단과 바이오닉스(Life), 녹색도시 구현(Environment)이다. 이 가운데 차세대 반도체, 양자컴퓨팅과 나노 신경망 모사 2개 부문 기술 개발을 반도체연구소가 담당한다. 양자컴퓨터는 미래첨단 컴퓨터다. 지금의 제품과 성능이나 역할을 비교할 수 없다. 신경망 모사 기술 개발을 위해 60%는 외부 인력과 드림팀을 구성한다. 이 기술은 선진국도 진입하지 못한 미지의 영역에 속한다. 반도체연구소는 전자재료연구단, 스핀융합연구단, 광전자소재연구단, 양자정보연구단으로 구성했다.

-정부에 바라는 점은.

▲정부가 반도체에 관해 착시 현상에 빠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메모리반도체 시장에서 우리 기업이 계속 잘한다고 믿는다면 착시다. 지금 상태라면 위기 경고등이 켜진 상황이다.

정말 심각한 것은 반도체 연구기관에 연구비가 없다는 사실이다. 정부가 지금까지 배정하던 예산을 삭감했다. 차세대반도체연구소의 경우 학생이 200여명이다. 연구비와 과제가 없으면 연구는 물론 인력도 양성할 수 없다. 반도체는 국내총생산(GNP)의 14%를 차지한다. 단일로는 최대 효자 품목이다. 공공기관이나 대학의 반도체연구소를 파악해 보니 KIST와 서울대 두 곳뿐이다. 서울대도 구인난에 시달리고 있다. 정부가 공공 연구소에 연구비를 적극 지원해야 한다. 메모리 반도체 분야 성장이 기울기 시작했다. 돈과 사람이 없으면 미래 기술을 개발할 수 없고, 국가 미래도 잿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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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윤성혁기자 shyoon@etnews.com

-반도체 인력과 기술 유출 방지책은 있나.

▲법과 제도가 있지만 근절이 어렵다. 모든 인력을 기업에서 채용하지 않는 한 중국이 좋은 대우를 하면서 스카우트하는 걸 어떻게 막겠나. 과거에 우리도 일본 기술자를 데려왔다. 설계도는 머릿속에 있으니 유출을 막기가 어렵다.

-좌우명과 취미는.

▲좌우명은 ‘하면 된다’다. 연구소 내부에서 어떤 일에 부딪히면 “일단 해보자”고 설득한다.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은 생전에 “이봐, 해 봤어”라고 했다고 한다. 불굴의 도전정신을 일깨우는 사례라고 생각한다. 취미는 축구, 농구, 테니스를 포함해 모든 운동을 다 좋아한다. 매일 오전 6시에 출근해 2시간 헬스를 한다. 한때 사진작가가 희망이었다.

장 소장은 연세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0년부터 KIST 연구원으로 출발해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UCLA) 반도체 재료연구실 박사후 연구과정을 거쳐 KIST 스핀트로닉연구팀장으로서 세계 최초로 스핀트로닉스 소자를 개발했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 파견돼 KIST-MIT 현지랩 책임자, KIST 스핀융합연구센터장을 역임했다. 기초기술연구회 대상, 과학기술진흥 대통령포장, 미래 100대 기술주역, 이달의 과학기술자상, 21세기 대상 기술부문대상을 비롯한 각종 상을 받았다. 세계 3대 인명사전인 마르퀴즈 후즈후, ABI, IBC에 이름을 올렸다. 논문 150편은 세계 최고 권위지인 사이언스, 네이처, ACS나노 등에 실렸다.

인터뷰를 끝내고 KIST를 나오면서 차세대반도체연구소가 어떤 반도체산업의 기술혁명을 국민 앞에 선보일지 미래상이 궁금해졌다.


이현덕 대기자 hd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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